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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우리는 IMF 사태를 정말 극복했나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1997년 외환위기를 다룬 영화가 화제에 올랐다. 2015년 광복 70주년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우리 민족이 1945년 이후 겪은 가장 큰 사건은 6·25 전쟁, 8·15 광복, IMF 사태 순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니 영화화도 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영화가 다 담지 못한 충격과 트라우마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당시 ‘국민의 정부’는 외채만 갚으면 IMF 사태가 극복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나 위기의 본질은 평생고용이 복지 역할도 겸하는 동아시아 자본주의 체제가 더 이상 글로벌 경쟁 환경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적합한 체제로의 이행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지향할 체제, 즉 복지는 어느 정도로 제공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어떻게 확보하며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로드맵을 만들어야 했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 핵심을 놓쳤다. 우리 사회는 분열됐고, 경제체제는 잡탕이 됐다.
 
한마음이 돼 금 모으기에 동참했던 선한 우리 국민은 이후 생존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갈려야 했다. 외환위기 이전엔 평생 일자리가 복지이자 안정적 삶의 발판이었다. 그러나 한참 일할 나이에 직장을 잃자 이 모든 것이 무너졌다. 더욱이 어느 정도의 복지 혜택을 누가 받을지, 언제 그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로드맵이 없었기 때문에 미래도 불안했다. 이 틈을 노려 정치인들은 복지를 선거 도구로 이용했다. 선거와 복지라는 위험하며 불안한 결탁이 여기서 생겼다.
 
생존한 자도 불안해졌다. 소득은 높아졌지만 삶의 불확실성은 급증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해고를 어렵게 만들고 진입 장벽을 쌓았다. 일자리를 대물림하려는 노조까지 생겼다. 전형적인 ‘인사이더·아웃사이더’ 모델이다. 인사이더인 정규직 취업자는 시장 임금보다 더 받고 해고도 어려운 반면 아웃사이더인 비정규직은 모든 면에서 차별을 받는다. 아웃사이더가 될 확률이 높은 청년층은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잃어가고 있다.
 
김병연칼럼

김병연칼럼

경제체제는 일관성을 상실했다. 자유무역협정(FTA)은 많이 맺었지만 노동시장은 경직된 것이 그 예다. IMF 사태 이후 한국은 FTA 체결 건수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세계 경제 변화가 한국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산업별 부침(浮沈)도 빨라졌다. 이에 따라 자원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FTA의 긍정적 효과가 생기지만 경직된 노동시장이 혈관을 막아버렸다. 반면에 글로벌 경제에 더 깊숙이 편입되면서 국민들 삶의 안정성은 떨어졌다. 복지가 사회 안전망 역할을 감당해야 했지만 선거와 맞물리면서 땜질식이 돼버려 무력하기만 했다.
 
분열과 잡탕은 비용으로 돌아온다. 각자도생의 사회, 불확실성이 높은 경제에서 선망하는 직장은 장기근속을 보장하는 곳이다. 2010년 세계가치관 조사에서 구직 시 최우선 조건을 물은 결과 한국인의 57%가 위험 없는 안정된 직장이라고 응답했다. 미국의 23%, 중국의 30%, 일본의 35%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공무원과 공기업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파이를 만들지 못하는 분야에 청년들이 몰려드는 나라의 장기 경제성장률 추세는 너무 뻔해 예측할 필요도 없다.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고 분열된 사회를 치료하는 것은 대통령의 책무다. 그러나 불행히도 역대 대통령들은 국내 정치판의 역학관계에 매몰돼 통합적 정치보다 정파적 정략을 폈다. 소통으로 가진 자의 동의를 구하고 함께 약자를 배려하자며 설득하는 리더십을 펴지 못했다. 어떤 대통령은 토목공사로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섰고 또는 행정부와 공공기관을 이전함으로써 ‘고비용·저효율’을 고착시키기도 했다. 분열된 사회에 불을 질렀고, 국민 마음은 더 허망해졌다.
 
왜곡된 사회·경제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문제의식은 뚜렷하다. 옳지만 매우 어렵다.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지향하는 경제체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소통과 협치, 그리고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약속한 협치는 지난 1년 반 동안 협소한 정치의 준말로 둔갑했다. 큰 장점이었던 소통도 하향곡선이다. 최저임금과 왜곡된 구조 사이의 인과관계를 거꾸로 이해하는 아마추어들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켰다.
 
IMF 사태 이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체제 이행 중이다.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우리 사회가 해체될 수도 있다. 우리 학계와 정부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성찰하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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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