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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통째 외워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시각장애인 한빛예술단의 꿈

12월 16일 서울 양재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생명 사랑 콘서트' 무대에 선 한빛오케스트라. [한빛예술단]

12월 16일 서울 양재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생명 사랑 콘서트' 무대에 선 한빛오케스트라. [한빛예술단]

“스톱! 색소폰 소리가 높아요, 트럼펫만 다시 가볼까요? 따다딴따다~.”

 
지휘봉 대신 바이올린을 들고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그리고 악보 보면대가 없는 단원들. 지난 18일 오후 5시 서울 양재동 한전아트센터 공연장엔 한빛 오케스트라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지휘자 겸 음악감독인 김종훈 바이올리니스트는 의자 밑 마이크를 더듬더듬 집어 지휘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연주하는 모습만 보면 보통 공연과 다르지 않지만 2명을 제외한 모든 단원이 시각장애인이다. 지휘자가 무대에 서지 않는 것도, 단원들이 악보를 통째로 외워 연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15년부터 한빛오케스트라에 합류한 김 감독은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 음대를 졸업하고 201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 협연을 했다. 그 역시 시각장애인이다. 김 감독은 “단원들에게 더 높은 예술적 지향점과 희망을 선보이고 싶어 3년째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오케스트라가 있는 한빛예술단은 시각장애인 교육과 복지에 힘써 온 사회복지법인한빛재단 소속이다. 2003년 한빛브라스앙상블으로 시작해 현재는 한빛오케스트라, 모던팝밴드 블루오션, 브라스 & 타악앙상블 세 팀을 갖추고 있다. 장애인 인식개선 콘서트 ‘사랑더하기’, 부산교도소에서 열린 ‘찾아가는 음악회’ 등 1년에 100여회 무대에 선다.  
 
단원들은 합주를 위해 사전에 템포와 음의 세기 등의 변화를 철저히 약속한다. 실제 공연 중엔 지휘자는 마이크를 통해 숨소리로 지휘 내용을 전달하고 단원은 청각수신기로 이를 듣고 연주한다. 한빛예술단의 음악은 예술성 면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일반 오케스트라가 지휘자의 곡 해석에 따라 정교하게 다듬어진 음악성을 뽐낸다면, 한빛오케스트라는 모든 연주자가 적극적으로 무대를 장악한다는 느낌이다. 김 감독은 “지휘자가 전면에 나서기보단 단원이 자유롭고 활발하게 참여하도록 이끈다”며 ‘장애를 가졌는데도 이 정도 했으면 잘했다’ 라는 평가에 멈추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빛오케스트라에서 트롬본 연주를 맡고 있는 박진혁(32)씨.

한빛오케스트라에서 트롬본 연주를 맡고 있는 박진혁(32)씨.

단원 중엔 한빛맹아학교를 다니며 악기를 배운 이들, 4년제 대학교 음대를 졸업한 이들도 있다. 모두 입단 테스트를 통해 선발돼 전문 연주자로 활약 중이다. 한빛예술단은 시각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범위를 넓혔다는 의미에서 특히 뜻깊다. 예술단 운영을 맡은 천성애 원장은 “한빛맹학교에서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자 음악을 가르쳤는데, 그 중 재능이 빼어난 학생들이 한빛예술단을 토대로 음악을 업으로 삼게 됐다”고 말했다.  
 
트롬본 박진혁(32)씨 역시 한빛맹아학교 고교 1학년 때 취미로 트롬본을 시작했다. 그는 2003년부터 한빛예술단과 함께해온 원년 멤버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갖게 된 박씨는 “비장애인 연주자만큼 빨리 실력이 늘지 않아 포기하고 싶던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관객의 환호성을 떠올리며 연습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올해 한빛오케스트라에서 함께 활동했던 단원과 결혼한 그는 “음악을 통해 직업과 사랑을 얻게 됐다”며 “음악이 삶의 버팀목이었다”고 덧붙였다. 밴드 블루오션의 보컬 이민석(30)씨 역시 “음악은 세상으로 향하게 해준 출구였다. 음악을 하는데 시각 장애가 큰 걸림돌이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그냥 가수가 아니라 ‘시각장애인 가수’로 불리는 현실이 아쉽다”며 “스티비 원더, 레이 찰스처럼 오롯이 예술성으로 인정받는 음악가를 꿈꾼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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