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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윤창호 대통령’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가능할 법도 했던 일은 이제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던 스물두 살 윤창호는 음주운전 차량에 스러졌다. 황망한 죽음을 본 친구들은 ‘윤창호법’을 만들었다. 지난 18일부터 시행된 법은 음주운전 사망 사고 가해자의 법정형을 ‘1년 이상 유기징역’에서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으로 강화했다. 창호 친구들의 호소는 정치부 기자들에게도 문자메시지 등으로 전해졌다. 말이 쉽지 법을 바꾸는 게 보통 일인가. ‘어떻게 해낸 거냐’는 뒤늦은 궁금증이 조심스러웠지만,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차분했다. 친구 예지희(22)의 답변은 이랬다.
 
“만약 내가 다쳤다면 창호는 벌써 국회로 달려갔을 거예요. 다른 친구들 생각도 비슷하더라고요.” 창호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새벽(2018년 9월 25일) 이후로 10명이 모였다. 고교(부산 신도고) 방송부 동기 6명, 중(해운대중)·고·대학(고려대) 동창 4명이다. 그들에게 창호는 ‘특별한 아이’였다. 고교 시험 때면 요점 정리를 해서 반 아이들에게 나눠 주고, 공부 안 하려는 친구를 도서관으로 끌고 갔다. “자기 혼자 잘해도 되는데 맨날 베풀고 가르쳐주고… 이번에 들어보니 대학 때도 그랬다는 거예요.”
 
창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청와대 로고였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는 그 자리에 검찰청 사진이 있었다. ‘검사가 돼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 ‘사람은 이름 석 자를 남겨야 한다’던 그의 다짐을 친구들은 기억하고 있다. 늘 목표를 이야기하고 그에 걸맞게 규칙을 지켰다. 친구들이 병원에서 쪽잠을 자며 청와대 국민청원을 내고 수십 개 웹사이트에 가입해서 윤창호법 지지를 부탁한 것도 ‘창호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떠올리며 한 일이었다. 지지자가 20만 명을 넘을 때 친구들은 처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리더였던 친구에게 뭔가 보답한 것 같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윤기현씨도 아들 친구들을 보며 다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일주일을 못 넘긴다던 창호는 한 달 이상(11월 9일 사망) 버텨줬다.
 
그렇게 국회를 통과(11월 29일)한 법은 지난 20일 대전현충원 고인의 영전에 놓였다. 봉투에 대표발의자인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과 친구 10명의 이름도 적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친구들은 모였다. 예씨는 “함께 놀면서 앞으로의 재판, 윤창호법 보완 문제를 얘기할 것 같다”고 했다. 그 슬픈 크리스마스 파티엔 지난 3개월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윤창호 대통령’이 함께했을 것이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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