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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화요리는 '사자머리' 완자"

차이나 인사이트
대만 최고 미식가 량유샹이 말하는 중화요리
“한국인이 집 사는 데 돈을 쓴다면 중국인은 먹느라 돈을 없앤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의식주(衣食住)라 하지만 중국인은 식의주(食衣住)라 말한다. 춘추시대 정치가 관중(管仲)은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는 걸 하늘로 삼는다(王者以民爲天 民以食爲天)”고 했다. 중국에선 언제나 먹는 게 앞선다. 자연히 중국에서 일을 도모하려면 중화요리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얼마 전 방한한 대만 최고 미식가 량유샹(梁幼祥, 62)을 만나 중화요리에 담긴 중국의 모습을 살폈다.  
 

문 대통령 방중 때 먹은 유탸오
남송 충신 악비 죽인 진회 뜻해

중국요리 구분은 동쪽은 시고
서쪽 맵고 남쪽 달며 북쪽은 짜

마오쩌둥이 제육볶음 즐겼다면
시진핑은 양고기 좋아한다 소문

지난해 말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방중 이틀째 아침에 베이징의 한 서민 식당을 찾았다. 중국인의 일상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문 대통령이 주문한 아침 메뉴는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긴 꽈배기 모양의 유탸오(油條)와 두유인 떠우장(豆漿). 중국인은 유탸오를떠우장에 적셔 꼭꼭 씹어 먹는데 여기엔 역사적 이유가 있다.
 
악비(岳飛)는 금(金)나라와 싸워 몇 차례나 이긴 남송(南宋)의 명장. 그러나 금과의 굴욕적 화친을 주장한 진회(秦檜)의 모략에 걸려 30대 젊은 나이에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격분한 백성들은 유탸오 씹어먹는 걸 진회를 씹어먹는 것으로 여기며 분을 풀었다고 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화요리의 발전은.
“경제적 여유가 좌우한다.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쌀이 없으면 밥을 짓지 못한다(巧婦難爲無米之炊)’는 말이 있지 않나. 비교적 넉넉했던 광둥(廣東)과 쓰촨(四川) 등이 중화요리의 발전을 견인했다. 특히 ‘먹는 건 광저우(食在廣州)’라는 말이 있듯이 광둥성 역할이 컸다.”
 
중화요리는 어떻게 구분하는 게 좋나.
“지역별 분류가 편하다. ‘한 지방의 풍토는 그 지방의 사람을 키운다(一方水土養一方人)’는 말이 있다. 손쉽게 구분하기론 지역과 맛을 결부시키면 좋다. ‘동쪽은 시고 서쪽은 매우며 남쪽은 달고 북쪽은 짜다(東酸西辣南甜北鹹)’고 생각하면 된다.”
 
왜 지역마다 그런 맛이 발전하게 됐나.
“음식은 몸의 건강과 직결돼 있다(醫食同源). 동쪽 지역에서 식초를 먹는 건 면역력 강화를 위해서다. 서쪽은 산이 많고 안개가 늘 끼어 습한데 매운 걸 먹으면 몸속의 습기를 배출할 수 있다. 남쪽은 사탕수수가 많이 나는데 달게 먹는 것으로 부를 과시하는 측면이 있었다. 북쪽은 추운 곳이라 고기를 소금에 절여 먹곤 했다.”
 
음식으로 부(富)를 과시하나.
“요리만큼 부를 제대로 뽐낼 수 있는 게 없다. 비싼 옷이나 승용차는 돈 주고 사면 똑같다. 그러나 요리를 진정으로 음미할 줄 알려면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축적이 있어야 한다. ‘삼대 동안 부가 이어지지 않으면 먹고 입는 걸 알지 못한다(富不過三代不懂吃穿)’는 말도 있다. 과거 청나라 시기 부자인 소금상과 직물상이 사돈을 맺고 부를 겨룰 때 며느리가 과연 고급 생선 요리를 제대로 만들어낼 줄 아느냐로 따지곤 했다. 진짜 부자라면 고급 생선을 자주 먹었기에 요리를 잘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요리를 못 할 것으로 봤다.”
 
비싼 거 먹는 게 잘 먹는 거는 아닐 텐데.
“그렇다. 먹는 데도 법도가 있어야 한다. 이 방면에선 공자가 일인자다. 그는 ‘제철이 아니면 먹지 말고(時不正不食) 칼질이 제대로 된 게 아니면 먹지 말라(割不正不食)’ 등 잘 먹기 위한 여러 방법을 말했다. 공자는 먹는 것을 행위의 규범으로 삼아 사회 계층의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어른이 손대기 전에 아랫사람이 먼저 손대지 않는 게 그런 예다.”
 
중화요리의 첫째를 꼽는다면.
“‘사자머리(獅子頭)’ 완자를 들고 싶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요리라고 생각한다. 이는 사자머리로 만든 게 아니다. 사자머리란 이름은 당나라의 한 장군이 이 완자를 먹을 때 몇 마리 사자를 갖고 있었고 깃발로 사자머리를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 1000년 역사의 이 완자는 마르코 폴로가 유럽에 전파하기도 했다. 평범해 보이지만 엄청난 창의성이 녹아 있다. 만드는 법이 까다롭다. 고기는 살코기와 지방의 비율이 중요한데 살코기가 40%, 지방이 60%다. 고기 써는 법도 중요하다. 살코기는 크게 잘라서 잘게 썰고, 지방은 작게 잘라서 크게 썰어야 한다. 그래야 연한 육질을 느낄 수 있다.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이 국가 연회 때 이 요리를 내놓아 더 유명해졌다.”
 
중국 지도자들의 입맛은.
“마오쩌둥(毛澤東)은 소박했다. 제육볶음 정도면 만족했다. 또 후난(湖南)성이 고향이라 매운 걸 좋아해 ‘매운 걸 먹지 않는 사람은 혁명을 말할 수 없다’라고도 했다. 라이벌 장제스(蔣介石)는 명문가 출신임에도 식단은 단출해 토란과 생선을 즐겼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양고기를 즐긴다는 소문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고급 요리점이 철퇴를 맞았다는데.
“그럴만했다. 중국 경제가 나아지면서 사치스러운 요리가 횡행하기 시작했다. 시진핑 집권 이전엔 ‘상어 지느러미 요리가 없으면 제대로 된 식탁이 아니다(無翅不成席)’는 말이 유행하며, 샥스핀(翅), 전복(鮑), 해삼(蔘), 제비집(燕窩) 등 4대 요리를 수천만 원에 파는 호화 식당이 마구 생겼다. 시진핑의 반부패 정책으로 인해 비뚤어져 가던 중국요리 풍조가 바로잡힌 것이라 생각한다.”
 
중화요리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먼저 한(漢)을 세운 유방(劉邦)의 증손 유안(劉安)을 들겠다. 그가 두부를 만드는 바람에 일반 백성이 비싼 고기를 먹지 않아도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는 좋은 음식 재료를 갖게 됐다. 두 번째는 송대 정치가이자 문인인 소동파(蘇東坡). 그가 항저우(杭州) 백성들과 함께 먹은 동파육(東坡肉)은 애민(愛民) 정신이 듬뿍 담긴 요리로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다. 끝으로 명대의 의약학자인 이시진(李時珍). 그로 인해 차고 더운 음식 등 요리의 궁합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됐다.”
 
한국인이 중국 요리를 제대로 맛보려면.
“우선 대만에 오는 게 좋다. 중국의 8대 요리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의 유명 요리사는 음식점을 낸 게 아니라 대부분 고위층의 집에 있었는데 이들이 대륙이 공산화되며 대거 대만으로 이주했다. 먼저 타이베이(台北)에서 입문한 뒤 중국 본고장으로 가 더 깊은 맛을 느끼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대만 최고의 요리 대사는 중국 다롄(大連)에서 태어나 49년 대만으로 건너온 푸페이메이(傅培梅). 그는 중국 8대 요리 전통을 계승한 대륙 출신 요리사들을 찾아다니며 요리를 공부했다. 이후 40년 요리 강습을 통해 4000여 요리를 소개했다. 그의 며느리가 량유샹의 누나로 리안(李安) 감독의 영화 ‘음식남녀’의 요리를 설계했다. 량 또한 푸페이메이에게서 요리를 배웠다. 
 
유상철 논설위원 
*정리 도움=이림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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