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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인구 1600명 섬나라 날아간 한국 대학생 셋의 무모한 도전

 

꿈 좇아 남과 다른 길 가는 대학생을 만났다 
니우에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25시간 걸려 니우에로 날아간 송재민, 조영훈, 백종민(왼쪽부터) 학생.

니우에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25시간 걸려 니우에로 날아간 송재민, 조영훈, 백종민(왼쪽부터) 학생.

지도상에서 이름조차 찾기 어려운 나라, 뉴질랜드 옆에 찍힌 점 하나가 전부인 나라, 서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면적(260㎢)에 바티칸공국(1000명, 0.44㎢)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뉴질랜드의 자유연합국가(외교·국방은 뉴질랜드 전담)인 '니우에' 얘기다. 비록 유엔 미가입국이지만 미국 CIA 국가 정보 웹사이트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2007년엔 중국과 수교까지 한 엄연한 국가다. 이 나라도 요즘 한국처럼 인구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젊은이들이 뉴질랜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면서 한때 5200명이던 국민이 1600명으로 뚝 떨어져서다. 인구유출로 존립 위기에 직면한 니우에를 구하겠다고 한국 대학생 3명이 나섰다. 그런데 어떻게? 아니 그보다 왜?   
 
니우에

니우에

처음엔 다들 객기 정도로 생각해 웃어 넘겼다. 하지만 지난 여름 니우에에 4주간 머물며 2008년부터 줄곧 국정을 책임져온 토케 탈라기 총리까지 만나 컨설팅 협약(MOU)을 맺기로 하고 돌아왔다. 반전의 해피엔딩이다.  
노력 끝에 토케 탈라기 총리(맨 오른쪽)까지 만나 협약 체결을 구두로 약속 받았다.

노력 끝에 토케 탈라기 총리(맨 오른쪽)까지 만나 협약 체결을 구두로 약속 받았다.

치솟는 청년실업 앞에 적잖은 대학생들이 꿈과 무관하게 공무원 같은 안정된 일자리를 찾겠다고 하루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스펙 좇기에만 열중한다. 소위 경쟁자들이 좇는 이런 눈앞의 보상 대신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선물같은 희망을 니우에에 심고 온 세 학생은 동아리에서 만난 조영훈(26·행정학과), 송재민(24·경영학과), 백종민(23·경영학과)씨다. 취업만 고려하자면 방학 때 컨설팅회사나 스타트업같은 곳에서 한 번이라도 더 인턴을 하는 게 유리했겠지만 이들은 좀 다른 생각을 했다. 공공(public) 영역에서 재밌게 일하면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보자며 학교에서 받은 지원금에 인턴과 아르바이트로 마련한 적잖은 사비를 털어 의기투합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직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안을 제안해도 무명의 대학생 말에 누가 귀 기울여주겠나. 해외로 우선 눈을 돌린 이유다. 심각한 사회문제를 안고 있고 변화에의 의지는 있지만 실행력이 부족한 나라, 이곳에서의 해결책을 다른 데 적용할 수 있는 확장성이 있는 나라, 그렇게 찾은 곳이 미지의 땅 니우에였다. 알고보니 니우에가 겪고 있는 인구 유출문제는 남태평양 다른 섬나라들이 겪는 공통 고민이었다. 

세 학생은 여름방학 전후 3주 동안 출근하듯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모여 정치·경제·문화 등 니우에를 공부했다. 외교부나 니우에 업무를 대행하는 주한피지대사관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지난 8월 인천에서 싱가포르, 오클랜드를 거쳐 니우에까지 장장 25시간을 꼬박 비행했다. 일주일에 딱 두 번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니우에가 그곳에 있었다.  

니우에의 4주는 '맨땅의 헤딩'의 연속이었다. 만나고 또 만났다.

니우에의 4주는 '맨땅의 헤딩'의 연속이었다. 만나고 또 만났다.

이때부터 '맨땅에 헤딩'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작은 나라지만 먼 나라에서 온 대학생들의 제안을 처음부터 진지하게 받아들일 리가 없다. 끈질기게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하고 방문하면서 점점 더 결정권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일단 누군가를 만날 기회를 잡으면 준비한 모든 걸 쏟아부었다. 조영훈씨는 "다들 처음엔 우리를 가볍게 대하다가 준비해간 프레젠테이션을 보고나면 태도가 변하더라"고 했다. 이렇게 하위직부터 고위직까지 공무원만 20명 가까이 만났다.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던 사람들도 이들이 준비해온 자료를 보고는 태도를 바꿨다.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던 사람들도 이들이 준비해온 자료를 보고는 태도를 바꿨다.

이들의 제안은 어찌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다. 흥미로운 관광 프로그램과 숙박 인프라 등을 갖춰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면 일자리 창출을 통해 인구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뻔한 얘기 같지만 실행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발로 뛰며 주민을 직접 만나 설득하며 '니우에 스테이' 등 프로그램 참여를 이끌었다. 무작정 아무 개인 집 문을 두들긴 후 취지를 설명하고 승낙을 받아냈다. 작은 섬나라가 어느 순간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 얘기로 들썩였다. 현지 언론에 났고, 역시 또 무작정 찾아간 총리 집무실 비서로부터 "너희를 알고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결국 떠나기 이틀 전 탈라기 총리를 만나 MOU 체결을 구두로 약속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정부 웹사이트와 연결한 사이트를 구축해 지속적으로 컨설팅에 나서며 비즈니스 모델을 계속 검증할 예정이다.  

워낙 작은 나라이다보니 저 멀리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 얘기는 현지 언론에까지 등장했다.

워낙 작은 나라이다보니 저 멀리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 얘기는 현지 언론에까지 등장했다.

그야말로 동화같은 해피 '엔딩'이다. 그런데 정작 궁금한 건 '엔딩'보다는 '시작'이다. 출신 고교는 물론 학번과 고향도 제각각인 세 사람이 취업에 필요한 스펙이기는커녕 학점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모한 도전을 왜 하기로 했을까. 답은, 다시 말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요즘 대학생들이 가장 부족하다는, '나'가 아닌 '남'에 대한 관심이었다.  

"행복하려면 뭘 하면 좋을까를 고민했어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남에게 좋은 영향을 줄 때 행복할 거란 생각에 이런 도전을 한 거죠. "(조영훈)

행정학과 친구들은 대부분 행정고시나 공기업 취직 준비를 하느라 도서관에 처박혀 지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유엔같은 국제기구 근무를 꿈꿨던 조씨는 다른 사람의 꿈을 내 것인양 좇지 않았다.  

니우에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송재민씨도 마찬가지다. 송씨는 요즘 대학생들의 필수라는 취업 스펙을 위한 자격증은 단 하나도 따지 않았다. 그 흔한 영어자격시험 점수 하나 없다. "남들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 가는 대신 내가 잘 하고 좋아하는 걸 찾고 싶다"는 이유였다. 놀면서 적당히 둘러대는 핑계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고교 때 그랬듯이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더 열심히 대학생활을 한 결과가 무(無)자격증이었다.  

송씨는 "당장은 취직도 해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빌 게이츠처럼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창업가가 되고 싶다"며 "중1부터 이런 목표를 세운 후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니 잔소리를 들일 일이 없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부모님한테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단다. 고교 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공부 자체가 목표라거나 학벌이라는 간판을 따기 위한 게 아니었고,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 자세가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연세대 고등교육혁신원 장용석 부원장은 "과거에도 이런 꿈을 꾸는 학생이 분명 있었겠지만 이런 생각을 나눌 사람도, 실현할 방법도 찾기 어려워 지레 포기하고 남들 가는 길을 그저 따라가기 일쑤였다"고 말한다. "대학이 점점 구시대적 주입식 강의에서 탈피해 이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을 연결하고 방향을 잡아주면서 이런 도전이 가능해졌다"는 얘기였다.  

'화이트 불스'팀은 쪽방촌 노인을 돕는 난방텐트를 만들었다. 기존보다 쉽고 가볍고 싸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했다.

'화이트 불스'팀은 쪽방촌 노인을 돕는 난방텐트를 만들었다. 기존보다 쉽고 가볍고 싸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했다.

과장이 아니다. 연세대는 올해 고등교육혁신원의 비교과 프로그램 워크스테이션을 통해 이처럼 스스로 발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내놓는 50여 개 팀에 인적·금전적 지원을 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반짝이는 도전적 아이디어로 주변을 놀래키고 있다. 스토리를 담은 동영상으로 도움을 이끌어내는 마이크로펀딩 사이트를 내놓은 '리듬 오브 오프', 쪽방촌 노인들을 돕는 초경량 단열텐트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화이트 불스' 등이다.  

천건혁(23·생명공학과)씨를 주축으로 한 '사춤'도 주목할만 하다. 사춤이란 담이나 벽 따위의 갈라진 틈을 메운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장애 등으로 인한 여러 격차를 없애주는 서비스를 내놓는 게 이 팀의 목표다. 장애없는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시각장애인도 본인 마음에 드는 옷을 직접 고르고 싶어한다는 점에 착안해 모바일 앱과 AI스피커를 활용한 옷 쇼핑 서비스를 내놓았다. 비단 장애인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활용이 가능하기에 비즈니스적 측면에서도 가능성이 크지만 정작 본인은 다른 얘기를 한다. "내 꿈은 죽을 때 과학기술을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든 사람이라는 이름을 남기는 거다. 사회를 발전적으로 바꾸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꿈이나 목표 없이 대학에 온 친구들은 길을 잃더라. 남들 가는 뻔한 길 말고 다양한 등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남과 다른 길을 가려는 용기를 낼 때 응원이 필요하다. 고맙게도 내가 받았던 것처럼. "

구체적인 관심사는 조금씩 달랐지만 들어보니 학생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놀랄만큼 닮아 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며 경쟁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바람 말이다. 공부가, 경쟁이, 그리고 혹자는 노력조차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말한다. 공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공부가 과정이 아닌 목표가 된 게 문제고, 경쟁이 문제가 아니라 적성과 재능과 무관하게 모두가 한 곳만 바라보는 게 문제고, 노력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노력 없이 편법으로 원하는 걸 얻겠다는 게 문제라고.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하고 노력하면 우리 사회는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요즘 장안의 화제를 모으는 드라마 'SKY 캐슬'이 보여주는 현실과 전혀 다른 얘기다. 드라마 속 부모는 아이들을 극한 입시경쟁에 내몰면서 이렇게 말한다. "친구는 적이고 학교는 전쟁터야. 선의의 경쟁이란 이기라는 얘기야. " 또 이런 말을 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이게 맞나 싶은데도 답이 없잖아. 우주엄마처럼 줏대도 없고 예서 엄마처럼 확신도 없고. 엄마가 미안해. "

다들 이 드라마가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다지만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여러 대학의 실험, 그리고 여기 참가한 학생들은 전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세대 김용학 총장은 이렇게 지적한다. "나이와 무관하게 자기 삶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사람은 변한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그걸 모르고 살게끔 만든다. 과거엔 그래도 적당히 살 수 있었지만 이젠 내가 누구인지 답할 수 있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인, 그런 스펙만을 좇는 의미 없는 경쟁을 하기보다 이젠 뛰는 방향을 살짝 바꿔야 할 때다. "

어쩌면 SKY캐슬이 아니라 저 멀리 학생들이 발견한 니우에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답이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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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