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홍콩 배우들 사이에서 신(神)이라 불린 화가

 영화 포스터는 여러 프레임의 영화를 하나로 압축한 ‘작품’이다. 요즘은 예고편 영상이 3차, 4차까지 나와 각종 정보를 수집할 수 있지만, 포스터만이 유일한 마케터이자, 홍보물이었던 70~90년대는 그 영향력이 더 컸을 거다. 
 
여기, 영화배우들 사이에서 신(神)으로 불린 포스터 작가가 있다. 유엔타이융(阮大勇, Yuen Tai Yung), 그는 홍콩 영화 황금시대를 빛낸 무대 뒤의 전설이다. 동시대에 함께 일한 영화 관계자들은 그가 영화 포스터를 예술의 반열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한다.
유엔타이융(阮大勇, Yuen Tai Yung)

유엔타이융(阮大勇, Yuen Tai Yung)

“인물을 독특하게 그려요. 스타일과 표현법이 독창적이고 영화의 의도를 정확히 담아내죠.”-가수 종전타오(鍾鎭濤)
“속된 말로 영화 포스터에 눈이 딱 꽂혀야 해요. 보자마자 바로 중요한 메시지가 파악돼야죠, 유엔의 포스터가 딱 그래요”-Joe Cheng (홍콩 영화 감독 조합)
“예수를 가장 잘 그리는 건 다빈치, 이소룡을 가장 잘 그리는 건 유엔”
맹룡과강 포스터당시 홍콩 극장가, 유엔타이융의 포스터가 걸려있다
유엔은 1980년대 ‘사망유희’ 등 이소룡의 전성기 시절 영화 포스터 4편을 그렸다. 그는 이소룡의 근육을 ‘가죽(피부) 벗긴 개구리’처럼 묘사했다. 정확하면서도 재치가 있었다. 이소룡 외에도 성룡, 홍금보의 영화 포스터는 대부분 그가 그렸다. 1977년 오우삼의 코미디 ‘발전한’, 미스터 부-천재여백치, 최가박당2, 반근팔냥 포스터는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는 작품이다. 특히 반근팔냥은 전통적인 유화 스타일에서 벗어나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로 제작됐다. 당시 그의 작업물은 혁신이었다. 
반근팔냥 포스터

반근팔냥 포스터

쿵푸, 코미디, 흡혈귀 장르에선 유엔이 신(神)
그는 쿵푸, 코미디, 흡혈귀 장르에 특화됐다. 무엇보다 1970년대 홍콩 스타 배우를 잘 그려서 사람들은 길 건너에서도 출연진을 금방 알아봤다고 한다. 대형 스튜디오들은 너도나도 유엔을 고용하려 했다. 그가 포스터를 제작했던 영화는 흥행에도 모두 성공했기 때문이다. 예술성과 별도로, 유엔은 한 장의 포스터 만으로 제작사를 만족시키고 대중의 취향까지 꿰뚫어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독학으로 익힌 솜씨였다. 그림 이론 같은 것도 없지만 그는 숱한 대작을 그려냈다. 
일부 팬들은 전국으로 뿌려진 그의 포스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풀이 채 마르기 전에 떼 가거나, 포스터를 붙이는 인부에게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유엔의 포스터가 그 영화의 스타였다. 
정무문 포스터

정무문 포스터

영어 한마디 못하던 상하이 출신, 첫 영화 포스터는 허관문·허관걸 형제의 영화
유엔은 1975년 Z프로덕션(Z productions)에 입사했다. 이 회사는 3달 만에 문을 닫았지만 당시 그의 능력을 알아본 관계자의 소개로 유엔은 허관문·허관걸 형제의 새 영화 포스터 작업을 맡게 됐다. 그의 첫 영화 포스터였다. 그는 영화와 캐릭터의 핵심을 잘 포착했다. 그 포스터는 홍콩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그의 이름도 널리 알려졌다.  
당시 홍콩 극장가, 유엔타이융의 포스터가 걸려있다

당시 홍콩 극장가, 유엔타이융의 포스터가 걸려있다

72년부터 92년까지 포스터 200장 이상 제작, 홍콩영화산업 쇠퇴 이후 뉴질랜드 이민
1975년 Z프로덕션(Z productions)(3개월만에 폐업)  
1975-1981 JWT(J Walter Thompson Advertising)  
1981-1992 시네마 시티 & 필름
...
주성치와 곽부성의 영화 포스터를 마지막으로 그는 자취를 감췄다. 그는 72년부터 92년까지 200장 넘는 포스터를 그렸다. 그 후 가족과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그 사이 세상은 빠르게 바뀌었다. 2007년 아내와 사별했고그 해, 홍콩에 돌아왔다.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그때만해도 유엔은 직접 본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베일에 쌓인 인물이었다. 사무실에도 거의 출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두가 그의 행방을 모를 때, 우연히 연락이 닿은 삽화가가 그에게 SNS 계정을 만들어줬다. 마감시간에 맞춰 작업하느라 바빴던 그가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홍콩 자택에서, 유엔타이융

홍콩 자택에서, 유엔타이융

그는 지금 딸, 강아지 1마리와 함께 홍콩에 산다. 그리고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요즘엔 의뢰인이 따로 없어 다양한 기술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수채화 전문이던 그는 그림의 느낌이나 색감에 따라 색연필로 그리기도 하고, 종이가 아닌 직물(에코백)에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리곤 말한다. “그림에 규칙은 없다, 마음대로 그리면 된다.” 그는 심지어 책상이나 이젤 위가 아닌 철문에 종이를 대고 그림을 그린다. 유엔 영화 포스터의 황금기는 1975년에서 1992년까지였다. 그는 ‘상영 중’, ‘곧 개봉’이란 문구와 자신이 그린 포스터들이 다 같이 걸릴 때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그의 집 문에는 ‘삼퇴헌’이란 표지가 걸려있다. 현상, 행동, 생각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난다는 뜻이다. 황금기라 불린 시절은 지났지만, 그는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고 그동안 계속 발전해왔다.  
 
지금 그의 강연장에서 싸인을 받아가는 팬은 그 시대를 함께 향유한 사람들보다 젊은이가 더 많다. 일러스트레이터 레인보우 렁은 유엔의 작품을 보고 '영화에 대한 존중과 순수한 창의력이 요즘 디자인학교 출신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그래픽 작업으론 느낄 수 없는 인간의 온기와 그림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있는 그의 작품, 한국에서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차이나랩 임서영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