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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 메이퀸 장영자, 돈에 '0' 더 붙인 다른 세계 사람"

2000년 5월 오후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장영자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법 서부지원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2000년 5월 오후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장영자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법 서부지원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2년 전에 전화가 왔어요, 한번 보고 싶다고, 또 사기로 구속됐어요? 안타깝네, 안타까워."
 
바른미래당 박주선(69) 의원에게 21일 장영자(74)씨의 구속 소식을 전하자 "안타깝다"는 대답이 먼저 돌아왔다. 박 의원은 1982년 전두환 정권을 흔들었던 '장영자·이철희 어음 사기' 사건의 담당 검사였다. 그에게 왜 안타깝냐고 물으니 "장씨의 머리는 정말 뛰어났다, 사기범으로 인생을 끝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삼촌인 고(故) 이규광씨의 처제 장영자씨가 6억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38세의 나이였던 1982년, 중앙정보부 차장이었던 남편 고(故) 이철희씨와 함께 6400억원대의 부부 어음 사기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은 이후 네번째 구속이다. 
 
장씨는 2015년 1월 출소한 뒤 지인들에게 세차례에 걸쳐 6억 2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남편 명의로 재단을 만드는데 현금이 필요하다거나, 브루나이 사업 투자 등을 미끼로 돈을 받았다고 한다. 
 
장씨는 1980년대 당시 전 전 대통령과 남편을 내세워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기업에 자금을 빌려준 뒤 몇배에 달하는 어음을 할인해 다시 유통하며 이득을 챙겼다. 그 규모가 총 7111억원, 이중 장씨는 6404억원을 할인해 사용했다. 돌려막던 어음은 결국 부도가 났고 당시 중견기업이던 공영토건과 일신제강이 무너지는 등 수많은 기업이 피해를 봤다. 
 
1990년대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워커힐호텔 뒷산에 위치했던 장영자씨의 별장. [중앙포토]

1990년대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워커힐호텔 뒷산에 위치했던 장영자씨의 별장. [중앙포토]

대통령의 친인척이 저지른 권력형 범죄였기에 정권이 흔들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79)씨는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조금씩 민심도 안정되고 경제도 생기를 되찾아 (남편이) 자신감을 얻고 있던 시점에 날벼락같이 찾아온 횡액과도 같은 사건’이라 회고했다.
 
당씨 장씨의 사건이 검찰에 미친 여파도 컸다. 초기 축소 수사 의혹으로 법무부 장관이 두 명이나 경질됐다.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 사건은 당시 중앙수사부로 이름을 바꿨던 대검 중수부의 첫번째 주요 수사였다.
 
검찰은 '최고의 칼잡이'를 찾았다. 사기 범죄의 규모와 구성, 기소 논리 구성 모두 만만한 것이 없었다. 이종남 부장검사(전 법무부 장관)를 중심으로 이명재 주임검사(전 검찰총장), 정홍원 검사(전 국무총리), 박주선 검사, 안대희 검사(전 대법관) 등이 투입됐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4년 장영자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이명재 전 총장이 공소장을 썼던 일화를 언급하며 이 총장에 대해 "'나도 언젠가 제대로 수사를 한번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들게 한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고 했다.
1994년 5월 이철희ㆍ장영자 부부 어음사기사건 전모를 발표하는 검찰. 오른쪽이 정홍원 전 검사. [중앙포토]

1994년 5월 이철희ㆍ장영자 부부 어음사기사건 전모를 발표하는 검찰. 오른쪽이 정홍원 전 검사. [중앙포토]

 
검찰은 당시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씨를 비롯해 32명을 구속했다. 법원은 장영자·이철희 부부에게는 사기 최고형인 15년형을 선고했다. 장씨는 당시 법정에서 '아직 유통 중인 어음이 있는데 어찌 내가 사기를 친 것이냐'며 "경제는 유통""나는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란 말을 남겼고 이 말은 유행어가 됐다. 장씨는 1992년 가석방됐지만 1994년 사기 범죄로 구속됐다. 4년 뒤인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온 후 2년 만에 또다시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자신의 회고록 『운명과 경주를 한 정홍원 스토리』에서 장씨에 대해 '내가 만난 장영자라는 여인은 마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다"고 썼다. 정 전 총리는 수사 중 장씨에게 "검사 월급(당시 50만원)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장씨가 "한 1000만원은 되지 않겠냐"고 말해 기가 찼다고 했다. 장씨는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금액에 최소 '0'하나는 더 붙였다고 한다. 
 
정 전 총리는 부장검사였던 1994년 다시 100억원대의 사기 혐의로 구속된 장씨의 수사를 담당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장영자 사건에 대해 "돈이 무엇이기에 남보다 많이 배우고 누리며 살아온 멀쩡한 사람들이 탐욕의 늪에 빠져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웠다"고 회고했다.
1994년 5월 장영자씨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수감장소인 서울 구치소로 가기위해 서울지검 여직원에 둘러싸여 검찰청사를 나서고 있다. 장씨는 검사가 구속을 통보하자 충격을 받아 한때 실신했었다. [중앙포토]

1994년 5월 장영자씨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수감장소인 서울 구치소로 가기위해 서울지검 여직원에 둘러싸여 검찰청사를 나서고 있다. 장씨는 검사가 구속을 통보하자 충격을 받아 한때 실신했었다. [중앙포토]

 
박주선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장영자씨가 제대로 진술을 하지 않았으면 유죄를 받아내기가 쉽지 않은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장씨가 혐의에 대해 너무나 솔직하고 거침없이 말해주어서 구속기소가 가능했다고 한다. 박 의원은 "장씨는 언론의 관심이 사라지면 대통령이 자신을 꺼내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며 "진술서를 쓰는데도 막힘이 없고 술술 풀어내서 머리가 참 좋은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숙명여대 교육학과를 다녔던 장씨는 재학 시절 미모와 재능, 언변이 뛰어난 학생만 받을 수 있는 5월의 여왕 '메이퀸'을 수상한 재원이었다. 박 의원은 "그런 명석한 머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회를 위해 썼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며 "보자고 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안타깝다, 정말 안타깝다"는 말을 반복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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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