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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따라다니던 수단 아이, 한국서 9년 만에 의사 됐다

의사가 된 이태석 신부 제자 토머스 타반 아콧(33)씨가 지난 1일 인제대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이태석 신부 흉상에 학사모를 씌우고 있다. [인제대 의과대학 제공]

의사가 된 이태석 신부 제자 토머스 타반 아콧(33)씨가 지난 1일 인제대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이태석 신부 흉상에 학사모를 씌우고 있다. [인제대 의과대학 제공]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인 톤즈에서 한 소년은 오랜 내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의사의 꿈을 꿨다.
 
마땅한 의료시설도, 전문의도 없는 이곳에서 이 소년의 꿈은 한국에서 온 한 신부를 만나면서 현실이 됐다.
 
남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암으로 2010년 선종한 ‘남수단의 슈바이처’ 고(故) 이태석 신부와 그의 도움으로 9년 전 한국에 와 의사가 된 토머스 타반 아콧(34)의 이야기다.
 
토머스는 올해 초 이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달 21일 2019년도 의사국가시험에 최종합격하면서 한국에서 의사가 될 자격을 얻었다. 그는 한평생 사랑과 베풂을 실천했던 이 신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고국으로 돌아가 봉사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의료봉사 도우며 친해져…친형 같았던 신부님”
토머스와 이 신부의 인연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당시 천주교 재단 중학교에 다녔던 토머스는 교육 및 의료 봉사를 위해 이곳 수단으로 건너온 이 신부를 처음 만났다.  
 
토머스는 이 신부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치던 순간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는 이 신부의 미사 집전 때 곁에서 돕는 복사단원(천주교에서 사제의 미사 집전을 돕는 평신도)이었는데, 주일마다 이 신부가 다니는 의료 봉사에 따라다니며 약 처방을 도와주거나 상처를 드레싱 할 때 환자를 잡는 등의 조수 역할도 했다. 이를 눈여겨본 이 신부는 2008년 귀국한 뒤 토머스에게 ‘한국에서 공부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했다.  
 
토머스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신부님에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신부님도 수단에 계시면서 나에게 (유학)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며 “같이 봉사 활동을 하던 그때의 제 모습을 좋게 봐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당시 수단어린이장학회를 꾸리고 후원자들에게 편지를 직접 보내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 아이들과 고 이태석 신부. 이 신부는 이곳에 손수 진료실과 학교를 지어 사람들을 치료하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 신부의 헌신적인 삶은 다큐멘터리 '울지 마 톤즈'로 국내에 처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중앙포토]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 아이들과 고 이태석 신부. 이 신부는 이곳에 손수 진료실과 학교를 지어 사람들을 치료하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 신부의 헌신적인 삶은 다큐멘터리 '울지 마 톤즈'로 국내에 처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중앙포토]

이태석 신부의 사진은 남수단 국정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사진 임세홍씨 제공]

이태석 신부의 사진은 남수단 국정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사진 임세홍씨 제공]

“기회 놓치지 말라“ 부모님 말씀에 한국행
토머스는 막상 이 신부의 제안을 받고도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결정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외국에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런데 한국이 될 줄은 몰랐다”며 “고민을 많이 했다. 언어 소통 문제가 가장 컸다. 그러다 ‘지금 놓치면 이런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냐고 기자가 묻자 토머스는 웃으며 “백 퍼센트”라고 답했다.

 
그렇게 토머스는 2009년 12월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남수단을 떠나기 전 한국 신부들이 ‘한국의 겨울은 정말 춥다’고 알려줬지만, 그는 “그때는 믿지 않았다”면서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남극에 온 것 같았다. 하필 눈도 많이 왔다”고 회상했다. 

 
이역만리 낯선 곳에서의 유학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언어가 가장 문제였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한국말을 하나도 할 줄 몰랐다는 토머스는 이듬해부터 연세대 어학당을 다니며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틈틈이 뉴스나 의학 드라마를 챙겨 보며 실력을 키웠다. 지금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막힘없이 말할 정도로 유창함을 자랑했다.  
 
특히 속담 공부에 흥미가 있었다는 토머스에게 가장 좋아하는 속담을 묻자 ‘고생 끝에 낙이 온다’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를 꼽았다. 토머스는 “나를 대변하는 말”이라며 지난해 치른 의사고시 실기시험에서 낙방한 때를 떠올렸다. 그는 “뭐든지 다 성공하는 게 아니라 실패할 수도 있다”며 “시험에 떨어진 첫날은 무척 힘들었지만, 이튿날 ‘한국 학생들도 떨어지는데’라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다시 힘을 냈다”고 말했다.

 
“임종 하루 전 만난 신부님…마지막 모습에 눈물만” 
그가 한국에 온 지 한 달이 됐을 무렵인 2010년 1월 14일 청천벽력같은 비보가 전해졌다. 대장암 투병을 하던 이 신부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토머스는 “신부님은 나에게 친형 같은 존재였다”며 “가슴이 무척 아팠다”고 말했다. 임종 하루 전, 그는 이 신부의 병실을 찾았다. 그는 “신부님이 (당시) 산소마스크를 하고 있었는데, 원래 알고 있던 신부님의 모습이 아니어서 충격을 받았다”며 “눈물만 계속 났다”고 말했다. 
 
토머스는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랐던 이 신부의 뜻에 따라 2012년 김해에 있는 인제대 의대에 진학했다. 의학 용어 중엔 한자도 많아 공부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농구나 헬스같이 땀을 흘리는 운동을 했다고 전했다. 개그콘서트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도 그에게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나는 노력파…포기하고 싶은 순간 없었다”
한국에 유학 와 의사국가고시에 최종합격한 토머스. [뉴스1]

한국에 유학 와 의사국가고시에 최종합격한 토머스. [뉴스1]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토머스는 단호하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목표가 있었다. 목표를 세우지 않고 무언가를 하면 ‘아,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며 “목표를 가지면 계속 무언가를 하게 된다.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나는 노력파”라고 덧붙였다. 
  
토머스는 한국에 온 지 9년 만에 이 신부의 후배가 됐다. 올해 1월 의사국가시험 필기시험에 합격한 데 이어 9월부터 지난달 28일까지 시행한 실기시험에서도 최종통과한 것이다. 합격 발표가 난 21일 그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꿈만 같다"며 들뜬 소감을 전했다. 
 
토머스는 내년 3월부터 인제대 부속 부산백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밟는다. 인턴 1년, 레지던트 3년 과정을 마친 뒤엔 남수단에 돌아갈 계획이다. 그는 수단에서 외과 전문의로서 이 신부의 뒤를 이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전념할 생각이다.     
 
레지던트 마친 뒤 외과 전문의 되어 고국 갈 예정
 
토머스는 ‘왜 외과인가’라는 질문에 “남수단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니까”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단에는 외과 의사가 많지 않다. 대부분이 내과”라며 “이태석 신부님의 정신과 토머스 정신을 합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봉사하겠다”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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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