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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유연성·사회안전망 동시에 갖춰야 일자리 늘어

권순원의 경제 안테나
지난 5일 글로벌 무역인력 채용 박람회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구직자들이 게시판을 살피고 있다. 충분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시스]

지난 5일 글로벌 무역인력 채용 박람회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구직자들이 게시판을 살피고 있다. 충분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시스]

우리 노동시장은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다. 꼬일 대로 꼬여 신중한 전략이 필요한데 급한 마음에 서둘러 매듭을 당기다보니 다른 쪽 마디가 더 단단해졌다. 새 정부 임기 1년 반을 달궜던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근로시간 단축 등의 문제가 모두 그렇다. 이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책적 노력에 진정성이 있다한들 문제 설정이 잘못되면 현실 개선은 어렵다.
 
당파의 좌우를 넘어 대부분 인정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노동시장 양극화다. 중심부 시장의 임금과 기업복지 그리고 사회보험 적용 수준은 세계 최고다. 안정적 고용지위에 기반한 기업 내부 노동시장의 거래규칙과 관행이 중심부내 기업들 사이에 호환되며 집단규율로 구조화됐다. 이 시장 비중은 전체 근로자의 12%이며 노조 조직률은 55%를 넘는다. 이들을 제외한 약 88%의 노동자들이 주변에 폭넓게 분산되어 있다. 중심부 사업을 불하받은 하도급 근로자, 그들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서비스 종사자들의 고용은 불안정하며 임금과 근로조건은 열악하다. 중심부 기업 대부분이 독과점 지위에 있다 보니 도급업체의 거래 역량과 교섭력은 제로에 가깝다. 독립 사업자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그들 대부분은 한계기업으로 근로시간 연장을 통해 얻는 ‘절대적 잉여가치’가 사업이익의 전부다. 이들 주변부의 노조 조직률은 3%를 넘지 못한다.
 
 
노동시장 개선해야 글로벌 투자 유치
 
격차 감소의 핵심전략으로 선택된 최저임금 인상은 주변 시장의 총소득을 부양하지 못했다. 주변부 기업들은 임금 비용을 외부화할 수단도, 생산성을 높여 ‘상대적 잉여’를 얻을 능력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사람을 줄였다. 유연성 없는 근로시간 단축도 주변 기업의 영업이익과 임금감소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곧 이익인 기업이기 때문이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분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상쇄되고 말았다.
 
우리 노동시장에 내재된 또 하나의 문제는 정책 불안정과 불신이다. 시장 운영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제도의 안정성이다. 정보는 의사결정과 거래를 위한 핵심이며 제도는 계약이행의 담보다. 제도의 감시와 법의 규율이 예측 가능해야 시장참여자의 합리적 선택이 가능하다. 이런 조건에서 보면 우리 노동시장의 제도 불신과 정책 불안정 수준은 매우 높다. 2017년 세계경제포럼(WEF)은 우리나라에서 사업하기 가장 어려운 이유로 ‘정책 불안정’을 꼽았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또한 같은 문제를 우리 경제의 위협요인으로 우려했다.
 
우리 시장에서 정책 불안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정권 교체 및 국회 의석 변화에 따라 시장 규율과 노동 정책이 단절적으로 변하며, 국회와 행정부 사이의 갈등으로 정책(행정)과 제도(입법)간 지체와 충돌이 빈번하고, 그 결과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갈등이 사법적 판단으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쟁점 해결 지침과 해석은 시장의 혼란을 부추겼고 결국 최종심급의 역할을 해야 할 법원이 노사관계 쟁점의 해결사로 되었다. 이로부터 파생하는 불확실성의 비용은 고스란히 시장으로 이전되고 있다.
 
노동력 고령화에 따른 인사관리의 부담 및 저출산으로 인한 잠재 노동력의 소진도 우리 노동시장의 큰 문제다. 우리의 고령화 속도는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14%를 넘었고, 2026년이면 20%에 달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합계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졌으니 속도는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초고속 고령화는 노동력의 생산성 감소와 기업의 인사관리비용 증가를 초래하며, 양질의 노동력 소실을 결과해 노동시장의 지반을 위태롭게 한다.
 
취약한 사회안전망 또한 중요한 이슈다. 우리의 사회복지 지출은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은 OECD 평균이 21% 수준인데 우리는 10.36%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하면 노동시장 개혁 및 정책 혁신의 선택지가 줄어들고 불가피한 개혁 비용이 노동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러면 시장개혁은 어렵다.
 
 
“손발 묶어놓고 뛰면 넘어질 수 밖에”
 
이러한 조건에서 투자를 유인해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시장을 활성화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국가가 직접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다. 둘째는 노사간 자율 조정으로 근로시간 및 임금과 일자리를 교환하는 전략이다. 셋째는 경제성장을 촉진해 기업의 노동력 수요를 확장하는 것이며, 마지막은 경직되고 불편한 제도를 혁신해 기업운용의 자유도를 높여주는 방법이다. 현 정부는 첫째 방법인 직접 고용 창출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지만 효과가 미미하다. ‘광주형 일자리’로 알려진 둘째 방법은 성공이 불투명하며, 셋째 방법인 경제성장은 저성장 균형의 시대에 기대하기 어렵다. 마지막 남은 수단이 노동시장 개혁이다. 이는 투자유인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남겨진 유일한 해법이다. 이로써 인사이더(취업)와 아웃사이더(실업)의 경계를 낮추고, 중심과 주변간 격차를 완화해 수요와 공급의 마찰을 줄이며, 기술 혁신에 따른 새로운 기회를 노동시장으로 포섭해 고용 여력을 확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시장 제도가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노동, 자본, 소비시장을 규율하는 제도는 글로벌 기업의 투자 유치 결정에 주요 변수이며, 그 가운데 노동시장 제도는 핵심으로 간주된다. 근로계약과 노사관계를 둘러싼 모든 제도들은 시장에서 평가받고 선택되는 대상이 됐다. 자본을 이동하지 않더라도 제도 비용이 높은 조건에서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노동시장 개혁이 불가피한 이유다.
 
양극화를 해소하고, 취약계층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노동시장 불확실성을 개선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장시간 근로 개선을 위해서는 법정 근로시간 단축과 더불어 산업과 업종 특성에 맞는 자율적 ‘시간 주권’의 보장이 긴요하다. 사회안전망의 획기적 보강도 필수적인 과제다. 최근 만난 대기업 임원의 호소는 절실하다. “손발 묶어 놓고 뛰라고 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 경직성으로 제품 개발 속도가 느려지면 중국에 먹히는 거다. 그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구조조정 말고 답이 없다.”
 
2019년이 노동시장 개혁의 시금석이 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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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