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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생략한 디자인, 물건의 외양 아닌 가치를 담다

이젤을 연상시키는 선반 위에 전시된 재스퍼 모리슨의 디자인 제품들. [사진 글린트]

이젤을 연상시키는 선반 위에 전시된 재스퍼 모리슨의 디자인 제품들. [사진 글린트]

디자인이라는 것이 단지 눈에 띄도록만 하는 마케팅 도구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의 말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자. 영국의 산업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59)은 “외양에 조금만 덜 신경 써도 우리는 물건이 가진 다른 가치들을 더 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형태의 창조가 아니라, 때와 장소에 적합하도록 형태를 적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물건이 가진 본질적 가치를 드러내는 일에서 디자인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오래 쓰이고 살아남은 것들의 가치
 
서울 회현동 남산 자락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피크닉(Piknic)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국내 첫 회고전 ‘재스퍼 모리슨: THINGNESS’(2019년 3월 24일까지)는 이 같은 그의 철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비트라(Vitra)·무인양품(Muji)·삼성전자·알레시(Alessi)·카펠리니(Capellini)·마루니(Maruni)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과 같이 만들어낸 제품들이 간결한 자태로 관람객을 맞는다.
 
“바우하우스를 공부하다가 미니멀리즘을 우리에게 친숙하게 만든 그의 디자인에 반했습니다.”
 
무지 브랜드로 나온 ‘벽시계’(2008) 및 문구류(左), 쿠션이 없는 앤티크 의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생각하는 사람의 의자’(1986·右). [사진 글린트]

무지 브랜드로 나온 ‘벽시계’(2008) 및 문구류(左), 쿠션이 없는 앤티크 의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생각하는 사람의 의자’(1986·右). [사진 글린트]

벨기에에서 시작돼 스위스와 독일로 이어진 전시를 한국에 가져온 글린트의 김범상 대표는 전시장 입구에 그려진, 의자를 아홉 조각의 나무 토막으로 분리한 그림에 모리슨의 디자인 정신이 압축돼 있다고 말한다.
 
첫 섹션은 ‘언어가 없는 세계(A World without Words)’. 1988년 첫 강연에서 화제를 모은 15분 짜리 슬라이드 영상이 한창 상영중이다. 당시 그는 무대에 올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에게 인상 깊었던 인물과 물건과 풍광을 찍은 사진들이 담긴 이 영상만 틀어놓았다. “나는 펍에 가있을 테니 질문이 있으면 오라”는 말만 남긴 채. 덕분에 관람객들은 디자이너와 영감의 원천을 공유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스를 주입해 만든 플라스틱 튜브로 만든 ‘에어체어’(1999). 의자 바닥에 뚫은 다용도 구멍이 포인트다, 와인병 코르크 제작 공정에서 버려지는 압축 코르크로 만든 테이블 ‘코르크 패밀리’(2004), 잡다한 물건을 정리할 수 있는 ‘로터리 트레이’(2014). 위쪽 선반이 돌아간다(왼쪽부터).

가스를 주입해 만든 플라스틱 튜브로 만든 ‘에어체어’(1999). 의자 바닥에 뚫은 다용도 구멍이 포인트다, 와인병 코르크 제작 공정에서 버려지는 압축 코르크로 만든 테이블 ‘코르크 패밀리’(2004), 잡다한 물건을 정리할 수 있는 ‘로터리 트레이’(2014). 위쪽 선반이 돌아간다(왼쪽부터).

모리슨은 2006년 일본의 저명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深澤直人·62)와 함께 ‘슈퍼 노멀(Super Normal)’ 전시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들이 공감한 슈퍼 노멀이란 기능적 요건과 미적 요건을 모두 갖춰 외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극도로 완성된 디자인이다. 모리슨의 “디자인을 아예 생략해버리는 디자인이 점점 더 바람직해 보인다는 느낌”은 2층 전시장에서 두 번째 섹션 ‘사물들(THINGNESS)’을 통해 관람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재스퍼 모리슨. ⓒElena Mahugo

재스퍼 모리슨. ⓒElena Mahugo

이탈리아 플로스(Flos)사의 의뢰로 만든 전등 ‘글로볼(Glo-Ball·1999)’은 구체를 살짝 누른 둥근 호박 같은 형태다. 은은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이 유백색 유리 전등이 19년간 인기를 지속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모리슨은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사물을 배제하거나 압도하지 않으면서 힘 있고 기분 좋게 주변 분위기를 탈바꿈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 오이겐의 투박한 무쇠 주전자는 그의 손을 거치면서 세련된 감성을 입었고, 일본식 다다미로 깔창을 삼은 캠퍼의 슬리퍼는 더욱 고급스러워졌다.
 
문 손잡이를 만들어달라는 독일 FSB의 요청에 옛 마차의 손잡이 장식에서 힌트를 얻었다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쓰이고 살아남은 것들은 그만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3층 전시장  ‘좋은 삶(The Good Life)’은 그의 감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가 쏠쏠한 자리다. 일상적인 문제를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영리하게 해결하거나 물건을 기발하게 활용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짤막한 글과 함께 소개했다.
 
 
영감의 원천 담아낸 사진과 글 보는 재미도
 
4층 루프탑에 마련된 재스퍼 모리슨 체험 공간. [사진 글린트]

4층 루프탑에 마련된 재스퍼 모리슨 체험 공간. [사진 글린트]

물건이 담긴 상자의 전면을 잘라내고 쌓아올려 진열장으로 꾸민 바르셀로나의 구멍가게를 보면서는 이렇게 털어놓는다. “이 가게 주인은 게으른 것일까, 꾀가 많은 것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이런 방법을 써서 자신이 누구보다도 구두쇠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일까? 물건 하나를 팔아 얻는 이윤이 너무 적은 것에 진력나서 그 절망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일까?”
 
벽에 걸어놓고 고무호스 정리용으로 활용한 낡은 자동차 바퀴 휠, 야생화 화분으로 재탄생한 페트병, 잘린 통나무의 가운데를 파서 만든 화분, 엔진 오일과 자동차용 전지 등을 솜씨있게 배치한 포르투갈의 어느 주자창 진열대 등을 통해 디자이너는 “돈이 별로 없어도 잘 살고자 하는 인간의 수천 년 된 습관”을 읽어낸다. 이 섹션에 전시된 사진과 글은 동명의 사진 에세이집으로도 출간됐다.
 
남산과 서울 시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4층 루프탑으로 올라가면 재스퍼 모리슨이 디자인한 소파와 의자에 직접 앉아 그의 디자인 철학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성인 1만 5000원. 월요일 휴관.
 
빈 필하모닉 멤버 앙상블 신년음악회 가볼까
빈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매년 12월 31일과 1월 1일 정오에 오스트리아 비엔나 무지크페어라인에서 개최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는 새해를 맞이하는 세계적인 이벤트다. 이 이벤트를 마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현역 단원 13명(사진)이 곧바로 한국을 찾아 화제다. 내년 1월 4일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 멤버 앙상블’ 무대는 빈필의 신년 음악회를 국내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귀한 자리다.
 
2013년 창단한 빈 필하모닉 멤버 앙상블은 현악 파트 5명, 목관 파트 4명, 금관 파트 3명, 타악기 파트 1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빈필의 명품 연주를 고스란히 압축해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집시남작 서곡’을 비롯, 프란츠 레하르의 ‘금과 은의 왈츠 Op. 75’,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겨울의 즐거움-빠른 폴카’, 레오 들리브의 ‘피치카토 폴카’, 요하네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17번과 1번’,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비엔나풍의 작은 행진곡’ 등 빈필의 신년 음악회 레퍼토리를 똑같이 들려준다. 관람료 R석 14만원. 문의 02-782-7015
  
정형모 문화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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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