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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학대받던 서자는 증오만 느끼는 괴물로 성장

석영중의 맵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④ 얼어붙은 손가락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 아버지를 죽인 진짜 살인범은 서자이자 하인인 스메르자코프다. 친아버지는 서자를 방치했고 양육을 맡은 늙은 하인은 학대했다. “너는 사람도 아니야!” 동네 사람들과 배다른 형들은 아이를 무시했다. “쓰레기 같은 머슴 놈!”
 
그는 증오 이외에는 그 어떤 감정도 못 느끼는 무감각한 괴물로 성장한다. 그의 유일한 좌우명은 둘째 아들 이반에게서 귀동냥한 “모든 것이 허용된다”이다. 무감각이 절정에 이른 인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철학’이다. 그는 아버지를 증오하는 이반이 자신에게 암묵적으로 살인을 ‘위임’했다고 믿고 표도르를 살해한다.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도련님”이 등을 두드리며 ‘한 재산’ 떼어 주리라 기대했다.
 
아이들 고통의 결과에 대해서도 우려
 
도스토옙스키는 어린이의 고통을 다룬 동화를 두 편 남겼다. 그는 ’딛고 일어설 수 없는 고통은 인간을 무너뜨린다“고 우려했다. 그림은 우크라이나 화가 예브게니 트카첸코가 그린 ‘새해’(1959).

도스토옙스키는 어린이의 고통을 다룬 동화를 두 편 남겼다. 그는 ’딛고 일어설 수 없는 고통은 인간을 무너뜨린다“고 우려했다. 그림은 우크라이나 화가 예브게니 트카첸코가 그린 ‘새해’(1959).

그러나 포상과 칭찬 대신 이반의 추궁이 이어지자 폭발한다. “도련님이 살인의 주범이지요. 저는 다만 하수인에 불과했고요.” 스메르자코프는 범죄를 자백하는 대신 “내 자유 의지와 희망에 따라 목숨을 끊는다”는 애매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카라마조프가’는 완전히 붕괴된다. 아버지는 살해당하고 큰아들은 살인 누명을 쓴다. 둘째 아들은 심한 가책으로 정신분열증에 걸리고 살인범 서자는 자살하고 셋째 아들은 마을을 떠난다.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동안 고통을 성찰했다. 그에게 고통 중의 고통, 모든 고통들의 원형은 어린아이가 당하는 고통이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 아이들은 버림받고 모욕당하고 능욕당하고 병들고 굶주리고 죽어간다. “방어 불가능하고 의지할 데 없는 어린 아이”의 고통은 이유도 의미도 없다. 바로 이 무의미함 때문에 이반은 격렬하게 신을 탄핵한다. “난 어른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애들은, 그 애들은!” 아이들의 고통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면 천국행 티켓도 사절한다는 입장이다. “난 입장권을 되돌려 보내겠어.”“차라리 보상받지 못한 고통과 함께 남고 싶어. 해소되지 못한 분노와 함께 남을 거야.”
 
고통은 상대적이고 절대적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고통의 원인을 규탄하는 것 못지않게 심각하게 고통의 결과에 대해 우려했다. 어느 정도의 시련, 좌절, 불행은 인간의 갱생에 대한 토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딛고 일어설 수 없는 고통, 절대적인 고통은 인간을 무너뜨린다. 무너진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가장 두려운 특징을 도스토옙스키는 ‘무감각’이라 보았다. 고통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인간은 감각을 상실한다. 스메르자코프의 흉측한 성격 밑바닥에 깔린 무감각은 결국 살인과 자살로, 한 가정의 붕괴로 이어진다.
 
도스토옙스키는 1인 잡지 ‘작가일기’ 창간호인 1876년 1월호에 아이들의 고통과 관련한 두 편의 글을 나란히 발표했다. ‘손을 내미는 아이’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을 다룬 일종의 사회평론이다. 이어지는 ‘그리스도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은 꼬마’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얼어 죽은 꼬마가 천국에 간다는 내용의 동화다. 얼핏 안데르센의 ‘성낭팔이 소녀’를 연상시키지만 ‘크리스마스 동화’라 부르기에는 너무 무겁다.
 
어느 더러운 지하실에서 잠을 깬 대 여섯 살 난 아이는 춥고 배가 고파 옆에 누운 엄마를 흔들어 깨운다. ‘차갑게 식은’ 엄마는 미동도 없다. 아이는 혼자 밖으로 나간다. 지나가던 경찰관이 아이의 행색을 보고는 눈길을 돌린다.
 
“와, 정말 넓다!” 사방에 빛나는 대형 유리창이 있다. 첫 번째 유리창문 안에서는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예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웃고 장난치고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고 있었다.” 두 번째 유리창 안에서는 부인들이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테이블 위에 산더미 같이 쌓인 파이를 나눠주고 있다. 아이는 살며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인이 소리소리 지르며 달려와 아이에게 동전을 쥐여주고는 문밖으로 내쫓았다. 세 번째 유리창 너머에서는 인형극이 벌어지고 있다. 꼬마는 너무나 신기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갑자기 덩치 큰 아이가 다가오더니 장남 삼아 아이를 걷어찼다. 아이는 겁에 질려 달아나다가 어느 집 앞 장작더미 뒤에 웅크리고 앉았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찬란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인형 같은 아이들이 보였다. “이건 예수님의 크리스마스 파티야.” 아이들이 말했다. “이날이 되면 예수님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없는 아이들은 위해 파티를 열어주셔.”
 
모두 지상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가 축복을 해주고 있었고 한 쪽에는 아이들의 엄마들이 울면서 서 있었다. 다음날 아침 수위들은 장작더미 뒤에 숨어 있다가 얼어 죽은 아이를 발견했다.
 
이 스토리는 무감각을 육체적인 것이자 심리적인 것으로 묘사한다. 거리의 꼬마는 추위로 꽁꽁 얼어붙었다. “손가락은 완전히 빨갛게 되어 이제는 구부러지지도 않았다.” 카페 아주머니가 아이를 쫓아내면서 쥐여준 동전이 손에서 미끄러져 계단으로 굴러갈 때도 “아이의 빨갛게 언 손은 구부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동전을 집을 수가 없었다.” 꼬마의 “얼어붙은 손가락”은 따뜻한 옷을 입은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과 짝을 이룬다. 파티를 벌이는 아이들도, 지나가는 경찰관도, 파이를 파는 부인들도 아이의 고통에 무심하다. 유리창의 이미지는 절묘하다. 창문 안도 밖도 모두 제각각의 결빙을 보여준다.
 
한편 ‘손을 내미는 아이’는 “얼어붙은 손가락”의 다른 의미를 보여준다. “빨갛게 얼어서 딱딱해진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아이들은 공장으로 보내지기 전에 이미 도둑이 된다. “도둑질은 심지어 여덟 살 아이에게조차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속칭 ‘앵벌이’로 내몰린 아이들은 범죄에 대해, 선악에 대해, 양심에 대해 완벽하게 무감각한 범죄자로 성장한다. “이 야만스러운 존재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가 어디 사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신이 존재하는지, 군주가 존재하는지 따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마음이 얼어붙은 사회는 결국 무너져  
 
얼어붙은 손가락, 얼어붙은 마음, 그리고 도덕적인 무감각이 맞물릴 때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이 고리로 조여진 사회는 ‘카라마조프가’처럼 무너진다. 도스토옙스키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 감상주의를 가차없이 제거했다. 환상적인 천상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그리스도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진짜로 일어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장작더미 뒤에서, 지하실에서 일어난 일은 아마 실제로 일어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은 꼬마’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동화’로 읽힐 여지가 있다. 마지막의 한 장면 덕분이다. 천사가 된 작은 아이들은 울고 있는 “죄 많은 엄마들”에게 다가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여기는 너무 좋은 곳이니 이제는 울지 말라고 달래주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 탄생의 의미이자 핵심 아닌가 싶다.
 
석영중 고려대 노문과 교수
고려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수여받았으며, 제40회 백상번역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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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