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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문의 정석…모순된 현실, 모순 없는 글을 쓰라

김영민의 공부란 무엇인가
모순이나 긴장 없는 삶이 가능할까? 그럴 리가. 삶 속에는 서로 잘 화해하지 않는 에너지가 공존하곤 한다. 자신은 이미 결혼한 몸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결혼이라도 할라치면 배신감을 느끼는 팬. 피해를 주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사과하느라 고생했으니 자신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가해자. 자신의 잘못을 통감한다면서도 형량을 줄여달라는 범죄자. 가부장적 질서가 싫어서 가출했지만 결국 가부장이 되어버리고 마는 가장. 채식을 결심한 순간부터 한층 더 고기가 먹고 싶어지는 나.
 
완벽한 직선이란 실제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듯이, 완벽하게 일관되고 통합된 삶이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기 마련. 모순 혹은 긴장으로 가득한 자신의 존재를 그럭저럭 거두어 살아나가는 것이야말로 성인의 일이며, 자신의 모순이나 긴장을 빙자하여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시민의 덕성이다.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모순이나 긴장이 출구를 찾다가 간혹 눈부신 예술을 낳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러한 경우는 한 세대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드문 일. 관리되지 못한 개인의 모순이 무절제하게 사회에 분비될 때, 그것은 대개 민폐일 뿐이다.
 
모순이나 긴장 없는 사회가 가능할까? 한 개인이 자신이 가진 모순을 간신히 관리하여 멀쩡한 몰골로 살아가는 데 성공했다고 치자.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모순이나 긴장이 사회로부터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채식을 결심한 순간 한층 더 고기에 집착
 
’회전 스시(위 사진)는 스시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중앙포토]

’회전 스시(위 사진)는 스시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중앙포토]

어떤 외국인 채식주의자가 아시아의 한 식당에 들어와 채식을 주문한 적이 있었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달라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온 음식의 국물을 떠먹다 보니 난데없이 고기 조각이 씹히는 게 아닌가. 격분한 그는 당장 식당 지배인을 불러 항의를 했다. “고기 없는 음식을 달라고 했을 텐데!” 그러자 지배인은 적반하장격으로 천연덕스럽게 대꾸한다. “그거 ‘고기’(meat) 아니야. 당신이 씹은 건 ‘작은 고기’(little meat)야.”
 
작은 고기는 고기가 아니라는 주장에, 그 채식주의자는 어이가 없어지고 말았다. 어이가 없기는 식당 지배인도 마찬가지. 큰 고기도 아니고, 국물에 고기 조각 조금 들어간 거 가지고, 까탈스럽게 구는 외국인 같으니라고. 그 정도 작은 고기 들어간 거 가지고 이 난리를 치다니. 일관된 삶을 살겠다는 한 개인만의 결심만으로는, 채식과 고기에 대한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모순 없는 삶을 구현하기 어렵다.
 
고기 크기가 커진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 어느 여름날, 채식주의자이자 독실한 불교도인 친구와 함께 어느 공공기관 구내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한여름답게 그날 메뉴는 칡냉면이었다. 식권을 창구로 넘기면서, 배식하는 아주머니에게 친구는 분명히 말했다. “저 고기 안 먹거든요. 고기 빼주세요.” 그러나 아주머니가 넘겨준 칡냉면 위에는, 떡하니 실한 고기 한 점이 살집 좋은 불상처럼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가부좌를 튼 고기는 내 친구에게 타이르듯 말하는 것 같았다. 채식은 무슨 채식. 채식하겠다는 것도 다 집착의 일종이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하지 않았나. 자, 내 살점을 먹고 성불하게. 내가 잠시 이런 상념에 빠지는 동안, 친구는 불만 어린 표정으로 배식하는 아주머니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까탈스러운 손님을 달래려는 양 한마디 툭 던졌다. 반말로. “(고기를) 넣어 먹어야 맛있어. 먹어.” 지금도 귀에 선연하다, 그 해맑은 “넣어 먹어야 맛있어.”
 
고기가 아니라 생선의 경우는 어떤가. 역사가들에 따르면, 스시는 도쿠가와 시대(1603~1868)에만 해도 고급요리가 아니라 일종의 패스트푸드에 가까웠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스시는 고급 음식이 되어갔고, 고급요리로서 스시가 보여주는 정교한 맛을 느끼려는 사람도 점차 늘어났다.
 
언젠가 일본에서 도쿠가와 시대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 한 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오늘날의 관심을 과거의 사상에 시대착오적으로 투사하지 말고,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한껏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유명한 학자였다. 이를테면, 도쿠가와 시대 문헌에 스시 이야기가 나오면, 오늘날 스시의 이미지를 대입하지 말고 그 시대의 스시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읽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학자적 신념이다.
 
그러한 그가 나에게 일본에 와서 뭔가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었느냐고 묻길래, 스시를 먹었다고 대답했다. 어디에서 먹었냐고 재차 묻길래, 숙소 근처 회전 스시집에서 먹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다소 화난 표정을 지으며, 좀 전에 스시를 먹었다고 그러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그렇다고 하자, 대충 후다닥 만들어져서, 품위 없이 눈앞에서 뺑뺑 돌기나 하는 회전 스시는 스시가 아니며, 따라서 나는 일본에 도착한 이래 아직 스시를 먹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당신은 회전 스시를 먹은 것일 뿐, 스시를 먹은 것이 아니다.”
 
이어서 이런저런 공부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면서, 그는 나의 초라한 식도락을 다시 한번 확인사살했다. “당신은 아직 스시를 먹지 못했다. 진정한 스시를.”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기억하는가/ 우리가 처음 만나던 그 날/ 환희처럼 슬픔처럼/오래 큰물이 내리던 그 날/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최승자, 기억하는가)
 
나도 노래한다. “기억하는가/ 우리가 만났던 그 날/ 네가 회전 스시를 능욕한 그 날/네가 내 취향을 부정했으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고도 네가 스시를 사주겠다고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실로 그날 밤, 나는 여러 가지 질문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기억이 있다. 회전 스시는 과연 스시인가, 고래상어는 상어인가, 무표정은 표정인가, 무의미도 의미인가, 단절된 관계도 관계의 일종인가.
 
이 세상 속에서 산다는 것은 이러한 모순, 긴장, 혹은 혼란 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 세상을 주제로 논술문을 쓴다는 것은 그러한 모순과 긴장과 혼란을 직시하되, 그에 대해 가능한 한 모순 없는 문장을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논술문을 쓰기 위해서는 정교하게 정의한 개념과 분석적 논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외부세계에 대한 충분한 경험적 지식이 필요하다. 현실 사회 속에서 고기와 작은 고기가 빚는 혼란, 스시와 회전 스시가 일으키는 모순은 단순히 논리학을 통해 해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모순에 이르게 된 인간과 세계에 대해 일정한 경험적 지식이 있을 때, 비로소 그에 대해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스시를 좋아해”라고 말하지 않으려면, 중국 음식과 스시에 대한 경험적 지식이 필요하다.
 
 
개인의 모순, 무절제하게 분비 되면 민폐
 
독립운동과 친일을 동시에 한 모순적 인물은 무어라 불러야 하나. 사진은 그런 모순을 그린 영화 ‘밀정’의 한 장면.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독립운동과 친일을 동시에 한 모순적 인물은 무어라 불러야 하나. 사진은 그런 모순을 그린 영화 ‘밀정’의 한 장면.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세상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은 모순이나 긴장이나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완벽하게 흠결이 없는 혁명가, 오직 탐욕으로만 이루어진 자본가, 오직 순박함으로만 이루어진 농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은, 도덕적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던 혁명가, 너무 게을러서 탐욕스러워지는 데 실패하는 자본가, 섣불리 귀농했다가 야반도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을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야 비로소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독립운동가 혹은 친일파로 단정해 버렸을 때는 보이지 않던 시대의 문제가, 독립운동과 친일을 동시에 하던 모순적 인물임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진보나 보수로 단정해 버렸을 때는 보이지 않던 시대의 문제가, 진보적인 동시에 보수적인 인물임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공부하는 이가 할 일은, 이 모순된 현실을 모순이 없는 것처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모순을 직시하면서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다.
 
몇 달 전 어느 학술회의에서 누군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권력자를 연구하는 데 관심이 있나요? 아니면 하위주체(subaltern)를 연구하는 데 관심이 있나요? 나는 대답했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관심을 갖는 대상은 딱히 권력자나 하위주체가 아니라고. 그보다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대상에 관심이 있다고. 철저한 독립운동가나 친일파보다는 양쪽을 우왕좌왕했던 인간. 지주나 소작농보다는 그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야만 했던 마름. 여성이면서도 소위 “유교” 이념을 앞장서 추종해야만 했던 일부 여성들.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러한 이들에 대해 모순 없거나 적은 문장으로 서술할 수 있을 때, 나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희열을 느낀다고.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브린모어대학 교수를 지냈다. 영문저서로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2018)가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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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