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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들의 유산

김사과의 맨해튼 리얼리티
짜릿한 쿨에이드 마약 테스트

짜릿한 쿨에이드 마약 테스트

톰 울프의 논픽션 『짜릿한 쿨에이드 마약 테스트 (The Electric Kool-Aid Acid Test)』는 1960년대 미국 서부에서 태동한 히피 문화에 대한 책이다. 잭 니콜슨의 광기 어린 연기로 유명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원작자 켄 키지가 그 문화 운동의 중심부에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기묘한 약 LSD를 통한 환각체험을 한 켄 키지는 그 경험을 통해 글을 쓰고, 또 풋풋한 백인 중산층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반사회적 청년문화를 만들어냈다.
 
문명에 극렬히 저항했던 히피들의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은 LSD라는 독특한 환각제를 빼놓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가상현실과 인터넷 등 실리콘밸리의 탈현실적 이상주의도 이 환각제 문화에 크게 영향받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실리콘밸리는 스마트폰 속 반짝거리는 스크린 속에 인간들을 붙잡아두는 데 성공했다.
 
켄 키지보다 먼저 LSD를 접했던 유명인사는 『멋진 신세계』로 유명한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다. 과학과 이성, 계몽주의로 상징되는 지식인 집안 출신의 소설가는 새로운 화학물질이 안겨준 신기한 경험에 사로잡혀 이후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기도 한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환각제 LSD가 주는 경험은 정신의 개방과 지각의 확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신의 문을 열고 감각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 언뜻 근사한 비전처럼 보이지만 그 경험의 현실적 버전은 손바닥만 한 방에 처박혀 깨알만 한 화학물질에 취해 자신만의 망상에 빠져드는 것이고, 핸드폰 스크린에 취한 우리들은 헉슬리의 멋진 비전을 오늘도 실현한다.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

치렁치렁한 머리에 보헤미안풍 옷차림, 다 함께 손잡고 맨발로 숲속을 거니는 히피의 이미지는 사실 골방에 스스로를 가둔 고독한 중독자로서의 현대인의 리얼리티를 감추어주는 근사한 치장에 가깝다. 왜 그렇게 확신하느냐 하면 요즘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활기찬 맨해튼 중심가를 가득 채운 인간들은 근사하다.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환상적인 인스타그램 사진 속 꼭 그 모습들이다. 다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완벽하게 근사한 모습을 유지하는가? 그것은 그 근사한 인간들이 또 다른 근사한 타인들을 마주쳤을 때 가장 궁금한 것이기도 하다. 과연 저 모든 것을 감당할 만한 비용이 있는지, 혹시 완벽한 모래성이 아닌지, 사람들을 홀리려는 간사한 사기꾼인가… 아니면 정말로 이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참되고 진정한 부자인지!
 
참되고 진정한 부자라니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고급식당과 고급상점, 호텔 라운지와 와인바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한껏 있는 척하는 수상한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홀리는 살벌한 이미지 싸움. 그 싸움의 승자는 누구일까? 과연 승자가 있는 싸움일까?
 
히피들은 이미지 싸움의 대가였다. 부스스한 금발 머리에 환한 웃음으로 온 세상을 들뜨게 했던 그들은 이제 인자한 미소를 완벽하게 지을 줄 아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세련된 자식들, 사랑스러운 손녀 손자들 자랑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그 자식들은? 그 사랑스러운 손녀 손자들의 미래란?
 
즐겨라, 삶을 사랑하라, 꿈을 실현하라… 정신을 고양시키고, 끝없이 경험하라… 이제는 한국의 공익광고까지 점령한 저 히피 세대의 강령들을 간단히 번역하자면 돈을 쓰라는 것이다.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기묘한 주문에 낚여 지갑을 열었다. 히피 세대는 본인들이 발명해낸 기묘한 라이프스타일을 대히트시켰다. 자연주의와 자유주의, 평화와 신념… 자신들의 삶을 멋지게 부풀려 비싼 값에 잘 팔아 치웠다. 이제 그 자식 세대에게 주어진 임무는 윗세대가 발명한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소진하는 것이다. 히피들의 불가능한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인생을 탕진하는 것이다.
 
히피들, 다시 말해 베이비부머 세대의 육중한 부로 가득한 맨해튼은 오늘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완벽한 파산을 향해 가는 히피들의 자식, 더없이 근사한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그림자 대신 빚을 길게 늘어뜨린 채로 걷는다. 끔찍한 광경이다.
 
김사과 소설가 sogreenapple1@gmail.com
2005년 단편 ‘영이’로 등단. 장편 『N. E. W』, 『풀이 눕는다』, 산문집 『0 이하의 날들』이 있다. 2016년부터 미국 맨해튼에서 글을 쓰며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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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