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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2019년은 청와대에 시련의 해가 될 수도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지난달 칼럼에서 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동결된 전쟁(frozen war)’이란 개념을 만든 것처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동결된 협상(frozen negotiation)’이란 개념을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동결은 더욱 심해졌다. 지난 10월 7일 이후 북한과 미국 사이에 의미 있는 만남이 없었다. 11월로 예정됐던 만남은 소리만 요란했을 뿐 연기됐고 12월엔 스케줄도 잡지 못했다.  
 
남북 간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비무장지대(DMZ) 내 초소 파괴와 2032년 올림픽 공동 유치 추진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밝힌 것처럼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은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나아가 북한은 또다시 한국의 군비 증가와 군사 훈련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보통 협상 프로세스를 중단하고 싶을 때나 협상 상대방을 적대시하더라도 잃을 게 별로 없을 때 이런 식의 비난을 시작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달 나는 북한이 사실상 미국으로부터 얻고 싶은 걸 이미 다 얻었다고 주장했다. 군사적 위협을 효과적으로 없앴고, 중국과 러시아가 느슨해지면서 제재가 상당히 약화됐으며, 미국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도 폼 나게 했다. 이제 북한은 두 개의 트로피를 더 받고 싶어 하는 눈치다. 하나는 평화선언이고 더 중요한 것은 공식적인 제재 해제다.
 
한 달 전만 해도 북한은 김 위원장의 위신을 세우고 대외무역을 쉽게 하기 위해 제재 완화를 원하는 것 같았다. 남북 협상 프로세스는 제재와는 상관없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최근 몇 주간 진행된 한·미 양국의 고위급 협의 결과 대북 제재가 공식 해제되지 않으면 한국은 북한이 간절히 원해온 야심찬 경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가 없게 됐다. 이것은 중대한 변화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 고위급 레벨에서 제재 완화를 약속받기 위해 매우 애썼다. 하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급기야 김 위원장의 최측근인 최용해까지 제재하고 나서자 평양은 매우 화가 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북한은 제재 완화를 끌어낼 유일한 방법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통해서라는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김 위원장과 사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뿐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2차 정상회담 없이  트럼프 대통령과 직거래를 하고 싶을 것이다. 2차 회담을 하면 추상적인 싱가포르 선언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북한을 구속하는 합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양 입장에선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첫 북한 방문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면 2차 회담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2차 회담의 대가로 미국이 제재를 완화해 주겠다고 하면 외국에서 개최하자는 제안을 수용할 수도 있다.
 
남북관계에 냉기가 도는 이유도 제재 때문이다. 북한이 서울 답방 여부를 질질 끌고 남한 비난을 시작한 거로 봐선 계산은 이미 선 것 같다. 적어도 당분간 제재 때문에 서울은 평양에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제재의 봉인이 깨지고 남한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는 서울 답방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청와대는 서울 회담에 관심이 많지만 평양에 그만큼의 열의는 없어 보인다.
 
북한이 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2차 정상회담을 통해서라고 본다면 이 회담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앞서 이뤄질 것이다. 그렇다면 2차 회담이 열린 뒤 곧바로 서울 답방이 이뤄질까. 나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2차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한다 해도 모든 제재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게 아니다. 유엔 안보리 제재는 미국뿐 아니라 모든 안보리 회원국의 이슈다.
 
더 중요한 것은 백악관이 여전히 2차 회담에 적극적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얼마 전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정치적 행위라기보다는 리얼리티 TV처럼 본다고 주장했는데, 2차 회담은 역사적인 1차 회담보다 미디어의 관심이 작을 수밖에 없다. 1차 회담 직후 비난 세례에 시달렸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2차 회담에서 훨씬 더 실질적인 합의를 끌어내야 하지만 이게 결코 쉽지 않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과 연설을 보면 북핵 문제에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둘째, 더 나쁜 상황은 그가 미디어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다른 이슈를 찾아냈다는 점이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기 위해 의회를 압박하는 게 대표적이다. 셋째, 러시아 게이트와 선거자금 조달 문제에 발목이 잡힐수록 정상회담 실패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질 것이다. 강한 대통령은 실패를 만회할 수 있지만 약한 대통령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2차 회담이 열리지 않는다면 남북과 북·미 협상 프로세스는 더욱 느려질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의 긴장 국면으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중국의 지지를 계속 받기 위해 ‘동결된 협상’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반면 남북 협상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청와대에는 커다란 좌절이 되겠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내년 1월 1일 김 위원장의 신년사가 나오면 북한의 의도는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한 말이 아니라 하지 않은 말이다. 새해 신년사에 남북 사이에 놓인 빙하를 녹이겠다는 올해 신년사를 재확인하는 내용이 담기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청와대엔 2019년이 시련의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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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