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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산간선 온갖 산야초로 김치··김장 땐 양념 아낀 덤벙김치

 
2018년 우리나라 김장의 실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10월 말~12월 중순 전국 9곳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자연환경에 따라 ^동부 산간 ^서부 평야 ^동서 해안 ^섬 등 4개 권역으로 나눠 살펴봤다. 지역별 김치는 대동소이(大同小異)했지만, 작은 특성이라도 찾아보려 노력했다. 이번 주에는 강원도 동부 산간지역인 횡성∙평창의 김장을 소개한다(김장 날짜 순).

 
횡성예절원: 11가지 김치로 차린 점심…김칫소에 마른 명태도
사단법인 횡성예절원에서 지난 11월 2일 김장을 했다. 예절원은 이혜경(56)씨가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행정리에 설립해 운영하는 전통예절 교육장이다. 소를 키우고 텃밭도 가꾸며 부부가 살림하는 주택이기도 하다.
 
동부 산간지역의 특색 김치인 덤벙김치. 지난해 김장 때 담근 것이다.

동부 산간지역의 특색 김치인 덤벙김치. 지난해 김장 때 담근 것이다.

 
특이한 김치가 있었다. 지난해 김치 때 담갔다는 ‘덤벙김치’다. 점심상에 오른 11가지 김치 중 하나다. 김장 때 김치 버무린 그릇에 묻은 양념을 절인 배추 건져 물 뺄 때 받아둔 물로 헹궈 포기 부실한 배추를 덤벙덤벙 적셔 양념한 김치라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덤벙김치다. 김장 소는 안 들어갔고, 양념도 희미하다. 1년을 묵으니 시원하고 깊게 발효된 배추 맛이 별미였다. 재료를 지극히 아끼는 검약(儉約)의 음식이요, 강원 산간의 사정이 반영된 특색 김치였다.
 
박종대씨가 김장을 하기 위해 텃밭에서 재배한 배추를 뽑고 있다. 8월 말에 모종 300포기를 사다 심었다.

박종대씨가 김장을 하기 위해 텃밭에서 재배한 배추를 뽑고 있다. 8월 말에 모종 300포기를 사다 심었다.

 
오전 9시 조금 넘어 도착하자 텃밭 배추에 서리가 내려 겉잎은 척 늘어져 있었다. 햇살을 받아 서리가 녹으며 기온이 올라가자 배춧잎은 다시 꼿꼿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 지역은 올해 서리가 예년보다 보름 일찍 내렸다. 김장 시기도 약간 빨라졌다. 이날 일기예보에 이곳(공근면) 최저기온은 영하 1도였고, 대야에는 3~4㎜ 두께의 얼음이 물에 떠 있었다. 배추 300포기를 재배했는데 일부는 전날 뽑아 절여 놓고, 일부는 이날 뽑아 절였다. 그러고 남은 배추는 형제들이 다른 날 와서 뽑아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혜경씨가 겉대만 숨이 죽게 초벌 절인 배추를 건져 차곡차곡 쟁이면서 단면에 소금을 훌훌 뿌리고 있다. 이 상태로 12시간쯤 절인다.

이혜경씨가 겉대만 숨이 죽게 초벌 절인 배추를 건져 차곡차곡 쟁이면서 단면에 소금을 훌훌 뿌리고 있다. 이 상태로 12시간쯤 절인다.

 
이씨 아버지는 천안 풍세 출신 직업군인이었다. 어머니는 춘천이 고향이다. 이씨는 가평에서 태어나 3세부터 21세에 박대종(63)씨와 결혼할 때(1982년)까지 홍천군 북방면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요즘도 “건건이 있냐, 짠지 있냐”고 물을 정도로 옛날 음식에 더 익숙하다. 아버지가 결혼 3년 만인 30세에 얻은 딸이고, 바로 아래 남동생은 10년 터울로 봤다. 손이 귀한 집이어서 어릴 때 귀하게 자랐다. 어머니 음식은 먹어 보기만 했지 자라면서 솜씨를 물려받을 만큼 해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손수 하다 보니 요즘은 자랄 때 본 어머니 하던 게 조금씩 생각난다. 아침부터 부엌에서 하던 황석어젓을 달이는 일도 어머니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시댁은 양구였다. 원래 고향은 강원도이지만 지금은 북한 지역이다. 전쟁통에 곧 돌아갈 거라는 생각으로 멀리 내려가지 않고 양구에 살았다. 시댁은 된장을 안 담그고, 간장을 따로 가르지 않는 막장만 해 먹었다. 간장을 빼고 남은 된장은 사람이 먹지 않고 소에게 먹였다. 막장을 담글 때는 메주를 밤톨 크기로 성글게 빻은 막장 가루를 준비하고, 보리쌀로 되직한 죽 같은 밥을 짓는다. 여기에 엿기름가루와 고춧가루, 고추씨를 섞어서 담갔다.
 
남편 박씨는 “어려서 선교사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 분 말씀이 채소는 푸른 부분에 영양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배추를 묶지 않고 푸른 잎이 많게 키운다. 8월 말에 모종을 심어 60일쯤 되면 배추가 다 자라기 때문에 ‘60일 배추’라고 한다. 배추가 어릴 때는 아침마다 벌레를 잡아준다. 논 메뚜기도 어린잎을 많이 갉아먹는다. 벌레가 먹기도 하지만 어릴 때만 지나면 잘 자란다. 텃밭 옆에서 키우는 소 거름만 주고 농약은 전혀 안 친다. 푸른 잎은 말려서 시래기 된장국을 끓이거나 가루를 내서 찌개에 넣기도 한다”고 배추 키우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혜경씨가 12시간쯤 절인 배추를 건져 흐르는 물에 헹구고 있다.

이혜경씨가 12시간쯤 절인 배추를 건져 흐르는 물에 헹구고 있다.

 
배추는 보통 한 포기를 4쪽으로 갈라 절인다. 올해는 여름 날씨가 덥고 가물어 배추 통이 크게 자라지 못해 반으로 갈라서 절였다. 염도는 소금을 완전히 녹인 물이 찌개보다 좀 짜다 싶을 정도로 하고, 소금물이 갈피마다 잘 배도록 자른 단면이 위로 가게 담근다. 그렇게 겉대 숨이 죽을 정도 뒀다가 건져서 다른 통에 옮겨서 차곡차곡 쌓으면서 단면에 소금을 훌훌 뿌려 둔다. 배추 몸에서 빠진 물이 고여 배추가 어느 정도 잠긴다. 통이 작은 배추는 위로 올려야 전체적으로 절인 정도가 맞다. 그 상태로 12~14시간쯤 절인다. 그런 다음 흐르는 물에 헹구고 건져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버무린다.
 
이혜경씨가 달인 황석어젓을 거르고 있다. 이 방법은 춘천이 고향인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이혜경씨가 달인 황석어젓을 거르고 있다. 이 방법은 춘천이 고향인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김장 소는 고춧가루, 갈아 둔 찹쌀풀, 황석어젓(달여서 거른 액젓), 갈치 액젓, 새우젓, 무채, 적갓, 쪽파, 마늘, 생강, 반건조 명태 토막 등이 들어간다. 조선무는 배추 10포기에 10개가 들어가는데, 반은 채 치고 반은 갈아 넣는다. 양파도 배추 10포기에 3~4개 갈아 넣는다.
 
박종대씨가 김장 소에 들어갈 무를 채 치고, 이혜경씨는 믹서에 양념을 갈고 있다. 앞에 늘어놓은 것은 절인 배추와 김칫소에 들어갈 재료들이다.

박종대씨가 김장 소에 들어갈 무를 채 치고, 이혜경씨는 믹서에 양념을 갈고 있다. 앞에 늘어놓은 것은 절인 배추와 김칫소에 들어갈 재료들이다.

 
친정어머니는 생태 살을 발라서 넣었지만, 요즘은 구하기 어려워 명태 엮거리를 잘라서 넣는다. 노가리보다 크고 코다리보다는 작은 걸 굴비처럼 엮어서 판다 하여 동해안 시장에서는 엮거리라는 이름으로 판다. 어머니는 염장 오징어도 채 썰어 넣었는데 따라 넣다가 지난해와 올해는 구하지 못해 못 넣었다. 멸치액젓은 어머니는 쓰지 않던 거다. 해산물 재료는 횡성 오일장 날에 수십 년째 오는 상인에게 산다.
 
고춧가루는 절반은 씨를 빼고, 절반은 씨까지 빻아 쓴다. 횡성읍내 방앗간에 롤러 제분기가 아니라 전기모터로 절굿공이를 움직이는 ‘콩콩방아’에서 빻아온다. 매운 고춧가루를 10~20% 섞는다.
 
김칫소를 배추 줄기 사이에 넣어 양념을 버무리고 있다. 안쪽으로 명태 한 토막이 들어갔다. 줄기의 질감이 다른 지역보다 약하게 절인 상태를 보여준다. 나물류를 흩뿌리듯 양념을 버무린다.

김칫소를 배추 줄기 사이에 넣어 양념을 버무리고 있다. 안쪽으로 명태 한 토막이 들어갔다. 줄기의 질감이 다른 지역보다 약하게 절인 상태를 보여준다. 나물류를 흩뿌리듯 양념을 버무린다.

 
김장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큰 함지에 무채를 썰고 소금과 고춧가루 조금씩 넣어 밑간하고 색이 나도록 버무린다.
② 무∙양파∙마늘∙생강∙찹쌀풀을 갈아서 섞고, 달인 황석어젓, 갈치 액젓을 약간 넣는다. 갈지 않은 새우젓은 액젓보다 많이 넣는다. 젓갈 양은 전반적으로 적게 쓰는 편이다. 부산 기장 출신으로 서울에 살다가 홍천으로 귀농한 정선진(62)씨가 지켜보다가 “젓갈을 아주 적게 넣네요. 간도 싱겁게 담그고요”라며 남쪽 바닷가 김장과 비교하는 말을 했다.
③ 명태는 대가리∙지느러미를 떼고 2㎝ 길이로 자른다. 배추 2포기에 한 마리꼴 들어간다.
④ 쪽파∙적갓은 2~3㎝ 길이로 자른다.
⑤ ②에 고춧가루와 고추씨 가루를 넣고 섞는다.
⑥ ①에 고춧가루를 조금 더 넣고 ⑤와 섞는다. 색깔을 보면서 고춧가루를 추가한다.
⑦ ⑥에 명태∙쪽파∙적갓을 넣고 버무리면서 달인 액젓으로 간을 맞추며 한참을 젓는다.
양념을 마친 김치는 2~3일 상온에 뒀다가 저장 음식 창고의 냉장고에 보관한다. 
 
점심상에는 사진에 보이는 것을 포함해 11가지 김치가 나왔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무말랭이 김치, 김장 겉절이, 덤벙김치, 양파김치, 고구마줄기김치, 열무김치.

점심상에는 사진에 보이는 것을 포함해 11가지 김치가 나왔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무말랭이 김치, 김장 겉절이, 덤벙김치, 양파김치, 고구마줄기김치, 열무김치.

 
점심상에 나온 11가지 김치는 ①덤벙김치 ②김장무솎음김치 ③고구마줄기김치 ④고춧잎이 들어간 무말랭이김치 ⑤양파김치 ⑥고들빼기김치 ⑦열무김치 ⑧더덕김치 ⑨양배추김치 ⑩무청이 굵은 총각김치 묵은지 ⑪김장김치 등이다.  
 
한 통을 8조각으로 나눠 담근 양배추김치.

한 통을 8조각으로 나눠 담근 양배추김치.

더덕김치.

더덕김치.

 
고구마줄기는 소금물에 살짝 데치면 껍질이 잘 벗겨지고 질감도 아삭아삭해진다고 한다. 양파김치는 수확 철에 8방향으로 칼집을 내 담가서 익은 걸 접시에 담으니 연꽃이 피는 듯한 모양이 나왔다. 양배추는 한 통을 여덟 쪽으로 갈라 덩어리로 담근다고 한다. 양파∙양배추 김치를 담그는 철에는 참외가 나와서 갈아 넣기도 한다. 고들빼기는 일부러 쓴맛이 빠지지 않도록 소금에 절이지 않고 생으로 담근다고 했다. 열무김치는 뿌리만 자르고 줄기는 자르지 않은 포기째 담근다. 오래 익은 총각김치는 슬쩍 헹궈서 마늘 약간 넣고 물 조금 붓고 들기름으로 지져 먹기도 한다고 했다.
 
집 주위로 3000평의 농지에서 철마다 나오는 채소들로 다양하게 김치를 담근다. 여름에는 김치가 빨리 물러서 메밀 풀이나 생감자 삶은 물로 김치를 담근다. 전분이 채소를 감싸줘 빨리 무르는 걸 막아준다. 겨울 김장에는 찹쌀을 쓴다.
 
평창 박광희김치: 유럽∙일본 수출하는 명인 ”발효 거쳐야 김치”
“김치 명인요? 다 쓸데없는 말이에요. 20년 이상(명인의 기준) 집에서 김치 담가 먹은 주부는 다 명인이라고 봐요. 김치는 집집이 다르고, 그 세월을 담갔으면 다 일가견이 있어요. 그럼 명인이죠.”
 
김치 가지고 무게 잡는 사람들을 향한 박광희(64) 김치명인의 일갈이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기념으로 MBC와 일본 후지TV가 공동 주최한 김치명인 선발대회에서 명인으로 선발됐다. 민들레와 고들빼기김치를 출품했다. 민들레김치가 한민족 김치 족보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지금도 이 두 가지 김치가 대표 상품이다.
 
박광희 명인이 세상에 알린 토종 민들레김치. 아주 곰삭았다.

박광희 명인이 세상에 알린 토종 민들레김치. 아주 곰삭았다.

박광희 김치명인의 특기인 고들빼기김치.

박광희 김치명인의 특기인 고들빼기김치.

 
그는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에서 세계로 발돋움하는 김치 브랜드 ‘박광희김치’를 2003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 지역 김장은 10월 15일쯤 시작해 입동(11월 7일) 무렵 끝나지만, 주문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그의 작업장에서는 12월 중순까지 김장을 한다. 이 기간에 배추 1000포기 정도 김치를 담근다. 지난달 8~9일 배추를 절이고 양념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김치 양념에 들어갈 원재료들. 왼쪽 2가지는 육수 뽑을 재료들이다. 가운데 6가지는 젓갈 원물과 간 것, 액젓을 비교해 보여준 것이다.

김치 양념에 들어갈 원재료들. 왼쪽 2가지는 육수 뽑을 재료들이다. 가운데 6가지는 젓갈 원물과 간 것, 액젓을 비교해 보여준 것이다.

 
양념을 개는 육수는 디포리∙다시마∙북어껍질∙표고∙무∙대파∙마늘∙양파 등을 달여서 만든다. 김칫소에는 3가지 젓갈을 갈아서 넣는다. 신안 새우젓(육젓), 5년 묵은 멸치액젓, 3년 묵은 황석어젓(오래 묵으면 달이지 않아도 비린내 안 나), 임자도에서 젓새우에 혼획된 여러 가지 잡고기로 담근 찰빈지럭젓(빈지럭은 밴댕이의 전라도 말)이다. 여기에 생굴 간 것, 저민 생태 살, 고춧가루, 무채, 마늘, 생강, 적갓, 쪽파, 찹쌀풀, 살짝 데쳐서 간 콩물 등이 들어간다. 설탕이나 다른 조미료는 일절 넣지 않는다.
 
김치에 흰콩을 살짝 데쳐서 갈아 넣는다. 김치가 시는 속도를 지연시키는 작용을 한다.

김치에 흰콩을 살짝 데쳐서 갈아 넣는다. 김치가 시는 속도를 지연시키는 작용을 한다.

 
요리 솜씨를 물려준 어머니는 예전 원주에 살 때는 김장에 생태를 토막 쳐서 넣고, 젓갈은 새우젓만 약간 넣었다. 김치가 시면 생콩을 면 포대에 담아 김칫독에 넣었다. 콩에는 김치가 시는 것을 늦추는 성분이 있다. 그걸 응용해 요즘 김치 담글 때 흰콩을 살짝 삶아 불렸다가 식으면 갈아서 김치에 넣는다.
비빈 양념을 찍어 먹어보니 비린내나 거북한 발효취는 없고 맛이 조화로웠다. 절인 배춧잎에 싸서 먹으니 약간 짰다. 적갓∙쪽파∙무채와 찹쌀풀을 더 넣어 간을 조절했다.
 
기본 재료들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줬다.
소금은 간수를 5년 뺀 천일염을 쓴다. 그러면 쓴맛이 빠진다. 고춧가루는 평창에서 생산한 두물∙세물 양건 고추(태양초)만을 골라서 직접 다듬어 빻는다. 맏물 고추는 말리면 검붉은 빛이 돌아 김치를 담그면 선명한 붉은색이 안 나온다. 이 지역은 해발 700m 안팎의 준고랭지여서 온도 편차(일교차∙연교차)가 크다. 그래서 모든 식물이 그렇듯 열매의 당도가 높다. 값이 비싸도 여기 고추 쓰다가 다른 지역 고추는 못 쓴다. 
 
배추는 평창에서 나는 걸 쓴다. 배추 장수를 몇 년 해서 눈은 정확하다. 값을 깎지 않는 대신 품질은 꼼꼼히 따진다. 재료의 푸드 마일리지를 늘 생각한다. 해산물∙소금 빼고는 이곳에서 난 걸 쓴다. 배추는 속이 약간 덜 찬 게 좋다. 시장에 나온 걸 비교해서 고르는 게 밭에서 고르는 것보다 믿을 만하다고 한다.
 
5년 동안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12시간 절인 배추.

5년 동안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12시간 절인 배추.

 
절이기는 염도 10% 소금물에 반으로 가른 배추를 담가 겉잎이 숨이 죽으면 배춧잎 두세 장마다 소금을 조금씩 질러 포개놓고 12시간쯤 둔다. 김칫소를 넣을 때는 절인 배추 갈피마다 벌려 줄기 앞뒤에 양념을 발랐다. 가을배추는 줄기가 두꺼워 양쪽을 바르고, 여름 배추는 안쪽만 바른다고 했다. 반으로 갈라 절인 배추는 양념을 마친 다음 다시 반으로 갈라 4분의 1쪽씩 저장 용기에 차곡차곡 담는다.
 
박광희 명인이 김칫소를 다 비빈 다음 색깔을 들여다보고 있다.

박광희 명인이 김칫소를 다 비빈 다음 색깔을 들여다보고 있다.

 
박 명인은 “음식 가운데 김치가 가장 까다로운 것 같다. 계절마다, 생산지마다 양념을 다르게 맞춰야 한다”고 했다. 그는 “김치는 담그면 바로 발효가 진행된다. 통에 담아 며칠(기온에 따라 3~7일) 상온에 둬서 국물에서 공기 방울이 뽀글뽀글 끓으면 익은 신호다. 그때 김치를 손으로 꾹꾹 눌러서 갈피 속 기포를 빼낸 다음 냉장고에 넣으면 된다. 저장온도는 영상 0~2도가 좋다”며 “김치를 꺼내 먹을 때는 12시간 전쯤 썰어서 냉장고에 뒀다가 먹으면 가장 맛있다. 와인 마시기 전에 디캔팅 하는 원리와 같다. 김칫국물은 원재료에서 나온 것이라 맛과 영양의 원액이니 버리지 말고 다 먹으라”고 실전 노하우를 알려줬다.
 
김칫소를 절인 배추에 버무리는 박광희 명인. 줄기가 두꺼운 겨울 김장은 줄기 앞뒤에 양념을 다 바르고, 여름 배추에는 안쪽만 바른다.

김칫소를 절인 배추에 버무리는 박광희 명인. 줄기가 두꺼운 겨울 김장은 줄기 앞뒤에 양념을 다 바르고, 여름 배추에는 안쪽만 바른다.

 
그는 온갖 들나물∙산나물로 김치를 담근다. 기억하는 김치만도 23가지나 된다. ^김장배추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쪽파김치 ^깍두기 ^민들레김치 ^고들빼기김치 ^왕고들빼기김치 ^산마늘김치 ^곰취김치 ^어수리김치 ^방풍나물김치 ^당귀잎김치 ^오가피순김치 ^뽕잎김치 ^더덕김치 ^도라지김치 ^우엉김치 ^달래김치 ^깻잎김치 ^얼갈이김치 ^부추김치 ^순무김치.
 
저녁상에는 ①곰삭은 토종 민들레김치 ②고들빼기김치 ③토종 갓김치(13개월) ④왕고들빼기김치(25개월) ⑤당귀잎김치 ⑥산마늘김치(1년) ⑦산초장아찌(3년/9년) ⑧된장에 박은 청양고추장아찌가 올라왔다. 깊이 익었는데도 원물의 특성이 저마다 살아있었다.
 
김칫소를 다 넣고 겉잎으로 감싸 마무리한 김치 한 쪽. 포기가 크면 이걸 다시 반으로 갈라 갈무리한다.

김칫소를 다 넣고 겉잎으로 감싸 마무리한 김치 한 쪽. 포기가 크면 이걸 다시 반으로 갈라 갈무리한다.

 
그의 김치는 미셸린 2 스타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 한우구이 코스로 유명한 로데오거리 ‘수린’, 장진모 셰프의 모던한식집 ‘묘미’(8가지 김치), 김호윤 셰프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우 코스 집 '모퉁이우 라이프(ripe)' 등에 들어간다. 2015년 시작해 영국∙일본에 수출도 한다. 올해는 유럽에 ‘Art of KIMCHIMAMA’ 상표등록을 했다. 독일∙스페인∙중국∙홍콩에도 샘플이 나가고, 단골로 주문하는 해외 개인 소비자도 제법 있다. 김칫값은 1㎏에 1만5000~1만7000원. 배추김치 한 포기는 3㎏쯤 된다. 최고급 재료만 쓰다 보니 비싸다. 이미 다 그렇게 소문이 났다. 한 해 매출은 3억원이 좀 안 된다. 현재로는 하루 100만원 판매가 목표다.
 
음식 사업으로 흥하기도 하고 참혹한 실패도 했던 그의 음식 솜씨는 어머니로부터 이어졌다. 여주 강천에서 큰 살림을 하던 집 막내며느리이던 어머니는 많은 음식을 해야 했다. 박 명인은 원주에서 자라 결혼해 서울에 살다가 시댁이 있는 천안 풍세에서 음식점을 시작했다. 이후 동탄을 거쳐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다. 한∙중 수교 다음 해인 1993년 음식점 사업을 하러 중국에 갔다가 2년 만에 빈손 신용불량자로 귀국했다.
 
담근 지 하루 된 박광희 명인의 배추김치.

담근 지 하루 된 박광희 명인의 배추김치.

 
그에게 배추와 김치는 인생 재기의 복음이었다. 1996년 70만원 쥐고 아는 목사 부부를 따라 들어온 곳이 평창이다. 교회에 의탁한 채 마을을 오가다 보면 배추∙고추만 눈에 보였다. 돈을 빌려 배추 장수를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져 전국 김치공장에 전화를 돌리고 찾아다녔다. 배추 유통시장에서 최초로 배추를 다듬어(1차 정선) 박스에 담아 납품했다. 김치명인이 되고, 2003년 ‘박광희김치’ 사업자 등록을 할 때까지 배추 사업을 계속했다.
 
사업장이 자리 잡은 미탄면 회동리 마을 뒷산이 청옥산(1277m)이다. 지명 ‘미탄’을 한자로 아름다운 여울[美灘]이라는 글자로 쓰지만 1860년대 이전 기록에는 맛있게 삼킨다[味呑]는 글자를 썼다. 옛 지명은 김치 사업 하기에 잘 맞는 곳이라는 계시 같다. 실제로 해보니까 무∙배추는 청옥산 정상부 육백마지기(해발 1250m 안팎의 평평한 능선)에서 자란 게 가장 맛있었다.
 
그는 김치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다. “발효돼야 김치다. 유산균이 살아 있어야 한다. 국어사전에도 ‘소금에 절인 배추나 무 따위를 고춧가루∙파∙마늘 따위의 양념에 버무린 뒤 발효를 시킨 음식’이라고 분명히 풀이하고 있다. 겉절이는 김치가 아니다. 나는 오리지널 전통 발효를 추구한다. 김장 문화에 대한 사명감으로 한다.”
 
글∙사진=이택희(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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