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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집값 들썩인 혁신학교···강남에선 안 통하는 이유

혁신학교 지정에 반대하는 송파구 헬리오시티 입주 예비 학부모들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예비혁신학교 지정 반대와 조희연 교육감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뉴스1]

혁신학교 지정에 반대하는 송파구 헬리오시티 입주 예비 학부모들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예비혁신학교 지정 반대와 조희연 교육감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뉴스1]

초등학교 3·5학년 자녀를 둔 정모(41‧경기 수원)씨는 내년 1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입주를 앞두고 있다. 이 지역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교육환경이 좋은 강남 3구라서다. 정씨의 자녀들은 현재 혁신초를 다니고 있는데, 만족도가 떨어진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진도를 제대로 나가지 않아서다. 제 학년 때 익혀야 할 내용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니 고학년이 돼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락초와 해누리초‧중이 예비 혁신학교로 지정되자 최근 밤잠을 설치고 있다. 정씨는 “강남 3구로는 선행학습을 위한 ‘학원 순례’를 시키거나, 특목‧자사고 준비에 최적화된 곳인데, 이런 지역에 혁신학교를 설립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 같다”며 “혁신학교가 싫어 이사하려는 데 다시 이사 가야 할 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강남 3구에 거주하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혁신학교 기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단지 내 새로 생기는 학교 세 곳을 모두 혁신학교로 지정하려고 하자 입주민들이 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반발하는 게 대표적이다. 실제 강남 중산고와 송파 송례중도 학부모들의 반대로 혁신학교에서 일반학교로 전환했거나 현재 전환을 준비 중이다. 특히 중산고는 2014년 공모를 통해 혁신학교로 지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이 무산됐다. 재학생 학부모와 예비 학부모들이 ‘학력저하’를 우려해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1·2학년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87.7%가 혁신학교 반대에 손을 들었었다. 같은해 혁신학교로 지정된 송례중은 4년이 지나 올해 재지정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학부모와 교원의 찬성 비율이 50%를 넘지 않아 내년부터 일반학교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전국 혁신학교 현황을 살펴봐도 강남 3구의 비율은 전체 1.1%밖에 안 된다. 현재 전국의 혁신학교 수는 초중고를 합쳐 1525곳이다. 2009년 경기도에 혁신학교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 13곳이던 혁신학교가 9년 만에 100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서울시도 2011년 도입 당시에는 29곳뿐이었지만 현재 199곳으로 6배가 늘었다. 하지만 이중 강남 3구에 있는 학교는 17곳에 불과하다. 강남구는 초등학교만 7곳이 있고, 서초구는 초등학교 1곳과 중학교 3곳이 있다. 송파구는 초등학교 4곳과 중학교 1곳, 고등학교 1곳이 있어 강남 3구 중 유일하게 혁신고를 운영한다.
 
이들 학교도 교원이나 학부모가 원해서 전환된 게 아니라 대부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임의로 지정했다. 강남구 7개 혁신초등학교 가운데 3곳이 자곡·세곡지구, 3곳이 개포지구 학교다. 자곡·세곡동의 3개 학교는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문을 연 학교로, 개교 때부터 교육감이 혁신학교로 못 박았다. 일반학교가 혁신학교로 전환하려면 학부모의 50%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신규로 설립되는 학교는 교육감이 임의로 지정할 수 있다. 서초구 혁신중에서 근무 중인 한 교사는 “신설학교를 교육감이 임의 지정하는 게 불가능했다면, 강남 3구의 혁신학교 숫자는 ‘0’이었을 것“이라며 “자발적으로 혁신학교를 하겠다고 나설 학교도 없지만, 학부모 반발이 거세 동의를 구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2014년 학교 인근의 집값을 들석이게 만들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경기도 보평초 전경. [중앙포토]

2014년 학교 인근의 집값을 들석이게 만들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경기도 보평초 전경. [중앙포토]

혁신학교가 유독 강남에서 통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원인은 교육특구라는 지역적 특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통 혁신학교는 입시와 지식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토론과 활동 등 학생 중심 교육을 한다. 교육적으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우수한 진학실적을 내긴 쉽지 않은 구조다. 대입이 가까워질수록 학업능력의 중요성도 커지기 때문에 대부분 지역에서도 혁신중과 혁신고에 대한 관심은 시들하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6년 혁신학교 고교생 '기초 학력 미달' 비율은 11.9%로 전국 평균(4.5%)의 3배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반면 입시와 거리가 있는 초등학교 때는 혁신학교에 대한 선호가 높은 편이다. 2014년에는 경기도 판교지역은 혁신학교인 보평초 때문에 인근 아파트값이 들썩이는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보평초 입학이 가능한 단지와 그렇지 않은 단체의 집값이 2억원 가까이 차이가 났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하지만 강남에서는 초등학교 때도 혁신학교를 꺼린다. 전문가들은 “강남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입이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목표 대학을 정하고 그에 맞는 학원과 학습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대 공대에 진학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영재학교··과학고 대비 학원에 다니거나 의대를 목표로 관련 활동을 하는 식이다. 학부모 커뮤니티 디스쿨의 김현정 대표는 “강남에서는 초등학생 때 수능 영어를 끝내야 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일찍부터 대입을 준비한다. 선행학습이 돼 있지 않으면 수준이 안 맞아 다닐 학원도 없는데, 혁신학교에서는 학업보다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하니 학부모들이 선호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초4 자녀를 둔 박모(40‧서울 강남구)씨는 “또래 중에 ‘수학의 정석’을 공부하는 애도 있는데 혁신학교에서 진행하는 토론과 활동에 만족할 학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며 “마음 편히 혁신학교에 보낼 생각이면 굳이 학업 경쟁이 치열한 이 지역에서 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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