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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없으면 소중한 역사도 말뿐....아카이브가 답이다"

1891년 발간된 『조선아동화담』.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1891년 발간된 『조선아동화담』.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19세기 말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삽화. 『조선아동화담』에 실렸다.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19세기 말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삽화. 『조선아동화담』에 실렸다.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1891년 조선 아이들의 놀이와 풍속을 다룬 책 『조선아동화담』, 1921년 발행된 국내에서 만든 최초의 미술 잡지 『서화협회보』, 1938년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최초의 원색화집 『오지호 김주경 2인 화집』, 1958년 북한에서 발행된 『조선미술』….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미술 관련 자료 70점이 한자리에 나왔다. 
 
서울 홍지동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열고 있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아카이브 10년' 전이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주요 소장품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박물관이 문 연 지는 10년이지만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장이 미술자료를 수집해온  기간은 48년에 이른다. 미술 관련 서적과 교과서, 도록, 팸플릿, 전시 입장권 등은 무심히 보면 단순히 '오래된 자료'일 테지만, 김 관장이 집요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며 모으지 않았다면 자칫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한 '귀한 자료'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아카이빙'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곱씹게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장. 수 십년간 이렇게 배낭을 메고 자료를 구하러 다닌 그는 2008년 박물관을 개관한 이래 매년 2~3회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중앙포토]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장. 수 십년간 이렇게 배낭을 메고 자료를 구하러 다닌 그는 2008년 박물관을 개관한 이래 매년 2~3회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중앙포토]

한국 최초의 미술잡지 『서화협회회보』
김 관장은 이번 전시에서 먼저 눈여겨볼 소장품으로 『서화협회회보』창간호를 꼽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잡지로, 1921, 22년 2회 발행된 희귀본이다. 이 잡지와 김 관장과의 인연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가 84년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 근무하던 시절 '한국근대미술자료전'을 하며 서지학자 남애 안춘근 선생님께 빌려 전시하고 복사해놓고 돌려드렸지요. 세월이 흘러 2008년 박물관 개관 전시를 준비하며 잡지를 다시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 후 그가 잡지를 다시 본 것은 2010년 8월에 한 경매에 나왔을 때다. 이날 그는 250만원 시작가에서 경합을 벌여 낙찰받았다. 그의 생애 첫 경매 참여였고, 첫 낙찰 경험이었다. "경매 날 번호판을 들고 응찰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떨린다"는 그는 "이 잡지는 많은 근대미술 연구자들이 찾아와 열람을 신청하는 1호 보물이다. 머지않아 근대문화재 지정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1890년대의 컬러 삽화 보시죠~ 
기산 김준근이 그린 팽이 놀이를 하는 어린이.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기산 김준근이 그린 팽이 놀이를 하는 어린이.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조선아동화담』역시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하다. 127년 전인 1891년 일본 학령관에서 편집한 책으로, 한국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그린 기산 김준근의 컬러 삽화 10점이 실려 있다. '조선전도' '조선국왕 초상' '숭례문의 진경' 등 펜화도 함께 들어가 있다. 
 
김준근은 19세기 후반의 풍속화가로 1889년경 부산에서 살 때 선교사 제임스 S 게일을 만난 뒤 1892년 그를 따라 원산에 가서 한역 『천로역정(天路歷程)』의 삽화를 맡아 그렸다. 서민들의 생활모습과 민속을 담은 300여점의 풍속화를 남겼는데, 한국을 다녀간 학자나 선교사들을 통하여 서양에 전해졌다. 독일의 함부르크민속박물관에 『기산풍속도첩』이 있다.  
 
 
 "『조선아동화담』은 근대기 시각문화 연구에 중요한 기초자료입니다. 2015년 우리 박물관에서 공개한 후 국학 전문 출판사인 민속원에서 '말로만 들었던 책'이라며 찾아와 후에 한글 번역까지 추가해 영인본을 출간했어요. 수집의 보람을 느꼈죠."
 
자칫 '말로만' 전해질 뻔했던 책은 이렇게 다시 사람들과 만나게 됐다.  
 
 한국 최초의 원색 화집은?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오지호의 '임금원'.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오지호의 '임금원'.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김주경의 '오지호'.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김주경의 '오지호'.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오지호 김주경 2인 화집』은 1938년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최초의 원색화집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 1930년대 인상주의 화풍의 정착을 보여주는 자료로, 두 작가의 주요 작품 10점과 오지호(1905~1982)의 ‘순수회화론’과 김주경(1902~1981)의 ‘미와 예술’론이 수록돼 있다. 두 작가는 이 화집을 자비로 발간했다.
 
오지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알려진 나혜석(1896~1948)의 유화 작품을 보고 화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고려미술회에 들어가 데생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김주경 등과 만나 우정을 쌓았다. 평소 "그늘에도 빛이 있다"고 말한 그는 "그늘은 빛이 가려진 것이 아니라 빛이 변화된 것"이라며 인상주의 철학을 주창했다. 
 
김주경은 제일고보를 졸업하고 28년 도쿄미술학교 도화사범과를 졸업했다. 46년 조선미술가동맹을 결성하고, 47년 월북해 평양미술학교 창설에 참여했으며 49년 평양미술학교가 대학으로 승격하면서 58년까지 초대 학장을 역임했다. 
 
 "월북작가 김주경 수록작품은 현재 소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사료적 가치가 더욱 높습니다."
 
'벨기에'? 옛날엔 '백이의'! 
"1952년 한국전쟁 중에 덕수궁미술관에서 벨기에현대미술전이 열렸다면 믿으시겠습니까?팸플릿에 ‘백이의현대미술전(白耳義現代美術展)'이라고 쓰여 있어 조사해보니 그게 '벨기에현대미술전'이었어요. "
 
이번에 볼 수 있는 희귀 자료 중엔 1952년 한국전쟁 중에 덕수궁미술관에서 벨기에현대미술전 팸플릿이 있다. ‘백이의현대미술전'은 당시 언론에 크게 보도된 전시로 벨기에 작가들의 작품 80여점을 국내에 소개했다. 김 관장은 "백이의는 벨기에의 한문 표기이고 종군기자 수잔 비바리오 주선으로 전시회가 열려 이승만대통령이 참석했다"며 "이 팸플릿에 의해 잊혔던 미술 소사가 기록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1904~1905년 아손 그랩스트의 한국여행기 '아이 코리아'에 실린 사진.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1904~1905년 아손 그랩스트의 한국여행기 '아이 코리아'에 실린 사진. [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이 밖에도 이번 전시에는 1929년 조선박람회 조감도, 기념메달, 입장권과 특별입장권 2종, 스탬프 찍힌 사진 9장 등도 나왔다. 
 
전시와 함께 펴낸 책자.[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전시와 함께 펴낸 책자.[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이번 전시는 48년간의 컬렉션을 유형별로 보여주는 전시로 박물관은 연구 결과를 작은 책자로 함께 펴냈다. 김 관장은 "박물관 소장품은 많은 분이 기증해주며 더욱 풍성해졌다"고 강조했다. 
 
전시품 중엔 원로화가 신종섭이 기증한 김환기의 편지, 도예가 조정현이 기증한 국전 메달과 상장, 삼성출판박물관의 김종규 관장이 기증한 미술교과서 16점 등도 있다. 
  
최근에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며 박물관에 대여 요청이 늘고 있다. 현재 '김해 문화의전당'에서 열리는 김환기전, 서울시립미술관 '한묵' 유작전에 전시되고 있는 몇몇 자료 중에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소장품이 포함돼 있다. 
 
김 관장은 "지금 단색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책과 아카이브 부족으로 담론이 빈약하다"며 "아카이브 구축은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경쟁력 확보를 위한 첫걸음이자 담론의 시작이고 연구의 밑바탕"이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2019년 4월 20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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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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