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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골 '가짜 램브란트'도 트럼프 관세폭탄에 울었다

‘사람 빼고 다 가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조품이 차고 넘치는 곳이 중국입니다. 예술 영역도 예외는 아니지요. 화가가 창작한 유일무이한 진품을 본 떠 복제품으로 파는 것도 중국에선 스케일이 다릅니다. 수천 명의 화가가 모여 가짜 명화를 전문적으로 생산해 내는 곳이 있으니 바로 광둥성 선전에 있는 다펀 유화마을(大芬油画村)입니다. 
한 여성이 중국 다펀 유화 마을 골목을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 여성이 중국 다펀 유화 마을 골목을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곳에 모인 8000명의 화가들은 공장 노동자처럼 빠른 속도로 모조품을 뚝딱 만들어 냅니다. 여러 명이 스케치와 채색 등의 작업을 분담하기도 합니다. '유화 공장'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하지요. 모작을 걸어놓고 주문을 받는 소규모 갤러리가 2000곳에 달합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지도자의 초상화부터 렘브란트, 반고흐, 모네 등 서양 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대표작을 그대로 복제한 작품들은 세계 각국으로 팔려 왔습니다. 전 세계로 유통되는 유화 복제품의 75%가 다펀 유화 마을에서 나올 정도랍니다. 그간 유럽이나 미국 등의 호텔과 박물관에서 스치듯 봤던 그림이 이곳 출신이었을 가능성도 큽니다. 
 
다펀에서 생계를 이어 온 마 춘얀(32·여)은 핸드폰에 원본 이미지를 띄워 캔버스에 베끼는 식으로 명화를 모사합니다. 그의 손을 거치면 감정가 1억 달러(약 1124억원)가 넘는 반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재현한 복제품이 하루 만에 탄생합니다. 145달러(약 16만원)짜리 진짜 같은 가짜입니다. 
중국 다펀 유화마을의 화가 마 춘얀(32)이 화랑에서 핸드폰을 통해 원본 이미지를 보며 모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다펀 유화마을의 화가 마 춘얀(32)이 화랑에서 핸드폰을 통해 원본 이미지를 보며 모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최근 다펀 유화 마을이 안팎으로 시련을 겪고 있다고 하네요. 미·중간 무역 전쟁의 불똥이 이곳에도 튄 탓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10%의 관세를 물린 2000억 달러 어치 중국산 수입품 목록에 골동품과 스케치, 소묘 등 미술품이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직접 타격을 받은 건 고가 미술품 시장입니다. 관세 부과 계획이 공개됐던 지난 7월 중국 밖의 미술품 딜러나 수집가들은 “중국산 예술품이 비싸지면 궁극적으로는 유럽과 미국 등의 박물관과 관람객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냈습니다. UBS그룹AG에 따르면 전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중국은 21%를 차지해 미국(42%) 다음입니다. 그만큼 각국에 유통되는 작품엔 ‘메이드 인 차이나’가 상당하다는 얘기입니다. 미국이 지난해 사들인 중국산 골동품만 1억720만 달러(약 1208억원)에 이릅니다. 
 
이 정도 규모는 아닐지라도 다펀에도 적잖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지난해 사들인 다펀의 유화작품 등도 750억원 어치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가의 고품질 모사 작품으로 틈새 시장을 공략해온 다펀의 화가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중국 다펀 유화 마을에서 한 화가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영국 FT 캡처]

중국 다펀 유화 마을에서 한 화가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영국 FT 캡처]

원래 다펀은 300명 정도가 모여 농사를 짓고 살던 궁핍한 마을이었습니다. 1989년 홍콩 출신의 그림상이 이곳에 유화 전문 상점을 내고 수집과 판매를 시작한 후로 화가들이 삼삼오오 몰려들더니 어느새 중국 최대 유화 도매 시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값이 싸다고 품질까지 저렴한 건 아닙니다. 섬세한 붓 터치 등을 정교하게 모사하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해 유럽의 독일과 미국 등에서 찾는 이들이 많았지요. 3년 전 영국 최초의 공공 미술관인 덜위치 픽처 갤러리에서 진품 대신 모조품을 몇 점 전시한 뒤 관람객이 이를 찾아내도록 하는 이벤트성 전시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원조인 척 프레임에 걸린 가짜 명화 역시 다펀에서 건너간 것들이었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이 올린 매출액은 6억100만 달러(약 6764억원)에 달합니다.
첸 징양이 자신만의 오리지널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첸 징양이 자신만의 오리지널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펀은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부침을 겪은 바 있습니다. 당시 한풀 꺾인 해외 수요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자 다펀은 국내로 눈을 돌려 고군분투해왔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은 본토 중산층이 늘면서 수요가 창출됐습니다. 한때 유럽과 미국 등으로 팔려나가는 비중이 80%에 달했는데 현재는 국내 수요가 80%를 차지합니다.


비중이 줄긴 했어도 해외 시장은 여전히 이들 매출의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무역전쟁 와중에 관세라는 새로운 위협 요인이 생겨난 겁니다. 20년간 갤러리를 운영해 온 중 자오춘은 “사업(환경)이 훨씬 나빠졌다”며 “구매자들은 관세 부담을 짊어져야 하고, 분명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SCMP도 “예술가들은 이미 임대료, 재료비 등 비용 상승과 줄어든 (해외) 시장 수요에 맞서 싸우고 있다”며 “미국에 대한 장벽은 국내 시장으로의 전환을 더 부추길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중국 다펀 유화 마을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화가.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다펀 유화 마을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화가. [로이터=연합뉴스]

따져보면 국내 사정도 그리 녹록지는 않습니다. 돈 많은 신흥부자가 늘면서 입맛이 상대적으로 까다로워진 겁니다. 질 높은 고가의 하이엔드 제품 쪽으로 수요가 옮겨가면서 모방이 아닌 창조로 승부를 봐야 할 상황이라는 얘기입니다. 
 
짝퉁 천국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중국 정부의 움직임도 입지를 좁히고 있습니다. 자국 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정부가 ‘카피’가 아닌 ‘오리지널’ 작품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다펀 유화 마을에서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다펀 유화 마을에서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오리지널 예술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아직 많지 않은 탓에 이 같은 변신이 성공적으로 진행될지 의문이라고 SCMP는 전망합니다. 이 마을에서 자신만의 창작 활동을 하는 화가들은 현재 300명에 불과합니다. 지방 정부는 더 많은 원작 생산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1억 위안(약 163억원)을 투자하는가 하면 화가들을 위한 숙소도 지었다고 하네요. 
중국 다펀 유화 마을에서 갤러리를 운영해 온 중 자오춘. [사진 홍콩 SCMP 캡처]

중국 다펀 유화 마을에서 갤러리를 운영해 온 중 자오춘. [사진 홍콩 SCMP 캡처]

다펀 유화 마을에서 12년간 오리지널 아티스트로 활동해온 첸 징양의 생각은 어떨까요. 그는 “빅 바이어(시장의 큰손)들은 이미 다펀이 ‘카피’로 유명한 저가 시장인 걸 알기 때문에 원작을 구매하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펀을 옹호하는 이들은 소수가 독점한 예술작품을 누구나 값싸게 복제품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다펀의 화가들이 제공해왔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다펀 유화촌이 내우외환을 딛고 30년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지, 앞으로의 변신이 궁금해집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중국 다펀 유화마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사진 홍콩 SCMP 캡처]

중국 다펀 유화마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사진 홍콩 SCMP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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