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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개혁개방 40년 연표에 시진핑 등장 횟수 덩샤오핑 압도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18일로 40주년을 맞았다. 중국은 이 날 오전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12월 들어 개혁개방의 역사를 돌아보고 성과를 찬양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쏟아내는 등 나라 전체가 개혁개방 40주년을 자축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1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 [EPA=연합뉴스]

1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 [EPA=연합뉴스]

여태까지 개혁개방은 덩샤오핑(鄧小平)과 동의어였다. 마오쩌둥(毛澤東) 사후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실권을 잡은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18일 개최된 공산당 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개혁개방으로의 노선전환을 선포했다. 덩에게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란 호칭이 지난 40년간 줄곧 따라다닌 이유다.
 
하지만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은 올해 중국 당ㆍ정의 공식 문헌이나 관영 매체의 논조는 사못 달랐다. 우선 ‘총설계사’란 호칭이 자취를 감췄다. 덩의 색깔이 옅어진 대신 시진핑 국가주석과 그의 리더십을 부각시키는 데 촛점이 맞춰지고 있다.  
 
시진핑의 개혁개방 관련 어록으로 개혁개방 40주년 특집 지면의 첫머리를 장식한 인민일보의 18일자 지면(왼쪽). 오른쪽은 시진핑의 이름이 125회 등장하는 반면, 덩샤오핑은 60회에 그친 인민일보 17일자의 개혁개방 40년 연표.

시진핑의 개혁개방 관련 어록으로 개혁개방 40주년 특집 지면의 첫머리를 장식한 인민일보의 18일자 지면(왼쪽). 오른쪽은 시진핑의 이름이 125회 등장하는 반면, 덩샤오핑은 60회에 그친 인민일보 17일자의 개혁개방 40년 연표.

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17일자에서 6개면에 걸쳐 보도한 40년 연표가 대표적이다. 1978년 12월 18일의 3중전회 개막에서부터 올 11월까지 40년간 일어난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개혁개방 40년 대사기(大事記)’란 이름으로 날짜별로 세세하게 정리했다. 이 연표에 시진핑의 이름이 등장하는 횟수는 125차례로 덩샤오핑의 60회를 압도했다. 시 주석은 2012년 11월 15일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매년 평균 21건씩의 대사(大事)에 등장했다. 개혁개방을 주도한 덩은 1978년부터 97년 2월 19일 숨질 때까지 매년 평균 3건 남짓 등장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인민일보의 편집은 40주년 당일인 18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인민일보는 이날 5면부터 13면까지 개혁개방 특집을 게재했는데 첫머리인 5면을 통털어 개혁개방에 관한 시진핑 주석의 어록을 싣는 데 할애했다. 반면 덩샤오핑은 사진 1장도 40주년 특집 지면에 게재되지 않았다. 
 
국영방송인 중국중앙TV(CCTV)가 방송한 ‘반드시 가야 할 길’이란 이름의 7부작 특집 다큐멘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프로그램의 첫 회는 시진핑 주석의 2018년 신년사로 시작했다. 뒤이어 “200년전인 1818년,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태어났다”며 “중국 공산당원은 개혁개방 40년의 성취와 실천을 마르크스에게 바친다”는 나레이션이 이어지면서 시진핑의 연설이 또다시 등장했다. 7부까지 이어진 프로그램 전체 구성에서도 덩샤오핑은 별로 높지 않았다.  
 
관영 신화통신은 18일 ‘신시대 개혁의 리더 시진핑’이란 제목으로 A4 용지로 인쇄하면 19장에 이르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신화통신은 “중국의 개혁은 6년 전 시진핑이 집권했을 때 수심이 깊은 구역으로 들어갔다”고 평가하면서 “지난 6년간 영국 인구보다 많은 7000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중국의 중산층은 4억명으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習仲勳) 전 광둥성 서기가 1978년 덩샤오핑에게 경제특구 설립 조치를 허락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개혁개방 단행에 큰 역할을 했다”면서 “이는 시진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전했다. 
 
지난달 13일부터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위대한 변혁-개혁개방40주년 경축 대형 전람회’중 역대 최고지도자의 업적을 전시한 ‘핵심 결정(關鍵抉擇)’ 전시관 전경. 전임 지도자인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의 전시 면적과 비교할 때 시진핑 주석 전시물이 두 배가 넘는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지난달 13일부터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위대한 변혁-개혁개방40주년 경축 대형 전람회’중 역대 최고지도자의 업적을 전시한 ‘핵심 결정(關鍵抉擇)’ 전시관 전경. 전임 지도자인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의 전시 면적과 비교할 때 시진핑 주석 전시물이 두 배가 넘는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지난달 13일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개막한 ‘위대한 변혁-개혁개방40주년 경축 대형 전람회’의 주연 역시 덩샤오핑(鄧小平)이 아닌 시진핑(習近平) 주석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초기 부분은 간략하게 처리되고 전시 면적의 3분의 2를 개혁 심화, 군 개혁, 의법치국 등 2012년 집권한 시 주석의 업적으로 채웠다.
 
덩샤오핑의 결단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이 이뤄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진 않지만 과거에 비해 덩의 업적과 공헌에 대한 평가에 할애되는 비중을 과거에 비해 확연하게 줄였다. 이같은 역사해석은 시주석이 지난해 공산당 18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중국은 신시대(신시대)에 진입했다”면서 ‘시진핑 사상’을 새로운 중국의 국가이념으로 내세운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베이징=예영준ㆍ신경진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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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