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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항복도 항전도 없었다…86분 연설, 中증시는 실망

[박현영의 글로벌 인사이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기념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기념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 경제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지난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에 주목했다. 시 주석이 새로운 시장 개방 조치나 구조 개혁 계획을 발표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1978년 12월 18일은 중국이 덩샤오핑의 지휘 아래 경제 개혁개방 노선을 결정한 날이다. 40주년 기념식에서 시 주석이 개혁개방 계승을 명분으로 시장 개방 확대를 선언하면 자연스레 미국과의 무역 갈등도 해소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기대 섞인 전망이었다.
 
앞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 주석이 이날 연설에서 대대적인 시장 개방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HSBC은행 추홍빈 이코노미스트도 지난 14일 “시장 개방과 구조 개혁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40주년 기념행사에서 발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결론부터 말하면 1시간 26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시 주석은 새로운 경제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다. 개혁개방 40주년 기념식을 미국과의 화해 용도로 쓰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대미 결사 항전 의지를 밝힌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을 의식한 듯한 행보를 보였다. 시 주석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블룸버그통신의 실시간 뉴스 해설과 분석, 그리고 시장 반응을 토대로 2시간 8분간의 기념식을 재구성했다.
 
10시 3분. 시 주석이 인민대회당에 입장했다. 리커창 총리가 먼저 마이크를 잡고 지난 40년간의 개혁개방 여정을 언급하는 짧은 인사말을 했다. 
 
10시 8분. 개혁개방 과정에서 탁월한 기여를 한 이들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됐다. 왕후닝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는 “위대한 정신으로 위대한 시대를 만든 ‘개혁 선구자’들의 뒤를 따르자”고 제안했다.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왼쪽)과 인터넷기업 텐센트의 마화텅 회장이 개혁개방 정책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AP=연합뉴스]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왼쪽)과 인터넷기업 텐센트의 마화텅 회장이 개혁개방 정책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AP=연합뉴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마화텅 텐센트 창업자, 리옌훙 바이두 창업자 등 정보기술(IT) 기업인을 비롯해 농업, 농촌 개발, 기술, 보건, 의료, 군인, 스포츠 등 각 분야 ‘선구자’ 100명이 상을 받았다. 농구 선수 야오밍도 포함됐다.
 
특기할만한 점은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의 런정페이 창업자가 명단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중국 최고 IT기업 성공 사례로 꼽히는 화웨이가 제외된 것은 이례적이다. 화웨이는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다.
 
미국은 지난 1일 캐나다에 요청해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해 대이란 제재 위반 여부를 수사 중이다. 미국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했을 뿐 아니라 일본·영국 등 우방국에도 화웨이 보이콧을 요구했다. 화웨이 누락이 대미 갈등과 관련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10시 44분. 시 주석이 단상에 올랐다. 공산당 연설은 길기로 유명하다. 2008년 개혁개방 30주년 기념식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93분간 연설했다. 시 주석의 연설은 이보다 짧은 86분간 진행됐다.
 
1978년 중국 개혁개방 이후 세계 국내총생산은(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었으나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의 비중은 줄었다. [자료 블룸버그]

1978년 중국 개혁개방 이후 세계 국내총생산은(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었으나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의 비중은 줄었다. [자료 블룸버그]

 
먼저 시 주석은 개혁개방을 회상했다. 78년보다 지금 중국 경제 규모는 80배 커졌다. 같은 기간 미국은 8배 성장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78년 1500억 달러에서 지난해 12조2380억 달러로 증가했다.
 
시 주석은 개혁개방을 중국 근대사의 3대 이정표 중 하나로 꼽았다. 1919년 5.4운동에 이은 중국공산당 창당, 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이 나머지 둘이다. 
 
10시 59분. 이 시각 홍콩과 상하이 증시 거래량은 뚝 떨어졌다. 상하이 증시 거래량은 최근 30일 평균보다 42% 줄었다. 홍콩 증시는 2017년 2월 이후 20개월 만에 가장 적은 거래량을 기록했다. 증시 트레이더들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시 주석 연설에 집중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1시 9분. 시 주석은 중국 경제 발전상을 보여주는 통계를 나열했다. 지난 40년간 중국 경제가 연평균 9.5%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11시 22분. 이제서야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언급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을 촉구하고, 국제 질서의 수호자로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11시 24분. 선진국이 몇 세기에 걸쳐 이룩한 발전을 중국은 몇십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선례가 없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11시 30분. 시 주석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이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산당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개혁 과정에서도 공산당 리더십과 정치적 통합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설 시작 후 한 시간을 향해 가는데도 새로운 경제 정책에 대한 언급이 없자 인내심을 잃은 외환 트레이더들이 위안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주문을 내면서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날 위안화 가치는 0.09% 하락하며 달러당 6.89위안에 거래됐다. 안전자산인 엔화는 오르기 시작했다.
 
아시아 증시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날 홍콩 항셍지수는 1.05%(273.73포인트) 하락한 2만5814.25로 마감했다. 상하이 종합지수는 0.82%(21.324포인트) 빠진 2576.649로 거래를 마쳤다. 닛케이지수는 1.82%(391.43포인트) 내린 2만1115.45포인트로 마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중국 총리. [EPA=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중국 총리. [EPA=연합뉴스]

 
11시 42분. 시 주석은 “누구도 중국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라고 지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이후 줄곧 보여 온, 신중하면서 결연한 태도의 연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해 중국 시장을 개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 주석이 추진하는 첨단 제조업 육성책과 국유기업 중심의 경제를 포기하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을 거부하는 것으로도 들린다.
 
하지만 시 주석은 ‘중국제조 2025’ 정책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미국이 중국의 급부상을 인식하고 경계하게 된 계기인 ‘중국제조 2025’ 정책을 후퇴시킨다는 언급도, 계속해서 추진하겠다는 공언도 없었다.
 
11시 46분. 중국과 미국의 관계, 또는 무역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여전히 없다. 새로운 경제 정책 이니셔티브도 나온 게 없다. 
 
이쯤 되니 시 주석이 중요 발표를 이 자리에서 하지 않기로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일 미ㆍ중 정상회담 결정에 따라 90일간 휴전하고 미ㆍ중 무역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협상에 충실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11시 48분. 시 주석은 “중국은 앞으로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개혁개방은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 두 마디에 시장은 이번 연설에서 미국과의 무역 긴장을 진정시킬 만한 이야기기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11시 49분. 시 주석은 “중국은 발전을 위해 세계가 필요하고, 세계는 중국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2008년 개혁개방 30주년 기념식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말한 “중국의 성장은 세계를 필요로 하고, 세계는 중국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와 비슷하다.
 
18일 개혁개방 4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베이징 인민대회당. [신화=연합뉴스]

18일 개혁개방 4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베이징 인민대회당. [신화=연합뉴스]

 
11시 51분. 시 주석이 처음으로 국제 관계를 언급했다. “새로운 형식의 국제 관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약자 괴롭히기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서로 다른 개발 모델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약자 괴롭히기’는 중국이 무역전쟁의 피해자라는 주장을 할 때 줄곧 사용하는 표현이다. 중국의 국가주도 경제 성장 모델을 문제 삼고 있는 쪽 역시 트럼프 행정부다. 
 
11시 52분. 시 주석은 “중국이 더 성장하더라도 절대로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무역전쟁을 일으킨 기저에는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한다는 인식이 깔렸다. 시 주석이 공개 연설에서 “중국은 헤게모니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은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는 미국과 주변국에 전하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11시 56분. 시 주석은 덩샤오핑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라는 말을 인용했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개혁은 필요하지만 그걸 행할 때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로 자주 한 말이다. 덩샤오핑의 점진주의적, 실용주의적 접근법을 시 주석이 수용한다는 의미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12시 3분. 미국과의 무역전쟁이나 내년도 중국 경제 성장 전망에 대한 메시지는 여전히 없다.
 
12시 5분. 시 주석은 중국의 현재를 강물 한가운데에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 산을 절반 정도 오른 등산객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개혁개방의 길은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되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신념, 헌신, 신뢰 같은 단어를 썼다.
 
12시 9분. 시 주석은 “중국이 다시 활기를 되찾기 위한 해법은 이어달리기와 같다. 각 세대가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에도 중국은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며,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라고 말하며 긴 연설을 마무리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8일 개혁개방 4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입장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8일 개혁개방 4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입장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결국 새로운 시장 개방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다. 이번 행사가 새로운 개혁 조치를 발표할 좋은 기회일 것이라고 전망한 경제 전문가들에겐 실망을 안겨줬다. 연설은 오히려 공산당 선전 담론으로 끝났다. 
 
인민대회당에는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의 '3개 대표론',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 등의 구호가 내걸렸다.
 
시 주석은 미국에 항복도, 항전도 하지 않았다. 오는 19~21일 베이징에서는 각 부처 장관, 지방 정부 수장이 참여해 내년도 경제 전망을 논의하는 경제공작회의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보다 구체적인 경제 정책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한다.
 
로빈 싱 모건스탠리 수석 차이나 이코노미스트는 “시 주석은 개혁개방의 길을 계속해서 갈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며 “앞으로 2~3개월 동안 미ㆍ중 협상이 속도를 높여 무역 긴장이 완화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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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