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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계 뿌리 깊은 폭력에 경종 울린 심석희

10년 넘게 코치의 폭력에 시달렸던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1·한국체대)가 빙상계에 경종을 울렸다. 
 
심석희는 지난 17일 수원지방법원 법정동에서 열린 조재범 전 코치의 상습상해 및 재물손괴 사건 항소심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져 온 조재범(37) 전 코치의 폭행에 대해 낱낱이 밝히면서 엄벌을 내릴 것을 요청했다.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가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의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해 폭행 피해 사실을 진술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가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의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해 폭행 피해 사실을 진술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심석희가 밝힌 폭력 내용은 조 전 코치가 주장한 '경기력 향상을 위한 지도 방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이스하키 채로 맞아 손가락뼈가 부러졌고,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부터 폭행 강도가 더 세졌다." "밀폐된 곳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 무자비한 폭행을 저질렀고, 나 말고도 다른 선수들이 고막이 찢어지는 등 상해를 입었다." "평창올림픽 전엔 '이러다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먹과 발로 폭행을 당했고, 그 여파로 뇌진탕 증세가 생겨 올림픽 무대에서 의식을 잃고 넘어지기도 했다."
 
무자비한 폭력에도 심석희는 10여년이나 지나서 이런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상명하복이 뚜렷한 스포츠계에서 코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빙상계에서도 올림픽 금메달 밭인 쇼트트랙은 더욱 심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금메달을 따면 된다'는 생각이 뿌리 깊었기 때문에 때리는 코치들도 맞는 선수들도 암묵적으로 폭력에 대해 묵인했다. 
 
묵인의 카르텔이 공고하게 된 것은 빙상연맹의 폐쇄적인 분위기 탓이 컸다. 지난2004년에도 여자 선수들이 태릉선수촌 실내빙상장 라커룸에서 코치에게 상습 폭행을 당했다. 2015년에는 한 남자대표 선수가 훈련 도중 후배를 때렸다. 그럼에도 성적을 이유로 이런 상황이 숨겨졌다. 연맹은 이런 사건 때마다 외부 자문이나 상담 대신 내부적으로 무마하고 감추기에 급급했다. 
 
심석희도 그래서 말하지 못했다. 심석희는 "피고인은 경기나 훈련 중 폭행 사실을 부모님을 포함해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거기다 조 전 코치는 심석희를 초등학교 때 발탁해 10년 넘게 가르쳤다. 심석희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금(계주)·은(1500m)·동(1000m)메달을 딸 때도 함께 했다. 조 전 코치는 언론과 인터뷰 때마다 심석희를 칭찬했다. 심석희는 더욱 폭행 사실에 대해 말하길 어려웠을 것이다. 
 
심석희를 폭행해 대표팀 코치에서 제명된 조재범 전 코치가 지난 6월 18일 오전 경찰 조사를 위해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심석희를 폭행해 대표팀 코치에서 제명된 조재범 전 코치가 지난 6월 18일 오전 경찰 조사를 위해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건도 자칫 예전의 폭행 사건처럼 묻힐 뻔했다. 그러나 지난 1월 16일 훈련 중 조 전 코치로부터 폭행당한 심석희가 진천선수촌을 나간 사이,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대표 선수들 격려차 선수촌을 방문하면서 심석희의 부재가 확인됐다. 당시 빙상연맹 측은 "심석희가 독감으로 아파서 나오지 못한다"고 둘러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진실은 밝혀졌다. 결국 빙상연맹은 조 전 코치의 폭행 사실을 파악하고 영구제명 징계만 내렸다. 
 
조 전 코치는 잠시 잠적하더니 중국에 가서 중국 대표팀 코치가 됐다. 또 다시 그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빙상계에 여러 비리가 드러나면서 대한체육회가 빙상연맹을 감사했고, 경찰청에 조 전 코치 폭행사건 수사를 의뢰했다. 조 전 코치는 2011년부터 올해 1월까지 4명의 선수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리고 지난 9월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심석희 측은 그의 형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항소한 상태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빙상연맹에 질의하던 중 조재범 전 코치의 옥중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빙상연맹에 질의하던 중 조재범 전 코치의 옥중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전 코치는 "구치소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잘못된 행동으로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고 후회가 된다. 심석희가 날 원망하고 미워하는 심정을 이해한다. 심석희 눈 앞에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반성하고 살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폭력으로 인해 심석희는 물론 다른 선수들은 오랜 시간 고통받고 있다. 그 심리적 피해는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그동안 심리적 압박감이 심했던 심석희는 이날 법정에서 의견 진술을 하는데 울먹이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일련의 사태로 인해 심석희는 물론 그의 아버지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심석희는 바람은 하나였다. "피고인이 같은 범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란다. 또 앞으로는 체육계 폭행이 사라졌으면 한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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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