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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데다 스토리텔링까지, 명승되는 '강진 백운동 원림'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조선시대 숲에 조성된 정원이 국가지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이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강진 백운동 원림(康津 白雲洞 園林)'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



강진 백운동 원림은 월출산 옥판봉 남쪽 경사지 아래쪽에 있다. 백운동 원림 본가 백연당(白蓮堂)에서 북쪽으로 약 11㎞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고려 시대부터 이곳에 백운암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계곡 옆에 '백운동(白雲洞)'이라는 암각자가 새겨진 바위가 현재까지 남아있어 ’백운동‘이라고 일컫는다.



강진 백운동 원림의 안뜰에는 시냇물을 끌어 마당을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유상곡수연'의 유구가 일부 남아 있다. 완만한 경사면에 꽃계단인 화계를 조성했다. 유교적 덕목을 함양하기 위한 상징성을 갖춘 소나무, 대나무, 연, 매화, 국화, 난초가 심겨 있어 조선 시대 별서 원림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강진 백운동 원림을 조영한 사람은 조선 시대 이담로(1627~1701)로 호는 백운동은(白雲洞隱)이다. 이곳을 조영한 후 손자 이언길(1684~1767)에게 '평천장(平泉莊)'의 일화를 전하며 이곳을 귀하게 여기라는 유언을 남겼다. '평천장'에 관한 일화는 당나라 재상 이덕유가 '후대에 이 평천을 파는 자는 내 자손이 아니며, 평천의 나무 한그루와 돌 하나라도 남에게 주는 자는 훌륭한 자제가 아디다'라고 경계한 내용이다.



이후 이언길의 큰아들 이의권(1704~1759)이 전국에 큰 기근이 들어 가족 모두를 이곳으로 옮겨옴으로써 주거형 별서로 변모했다. 18세기 중엽에 후손 이덕휘(1759~1828)와 19세기 중엽 그의 아들 이시헌(1803~1860) 등의 손을 거쳐 현재 원림이 완성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강진 백운동 원림은 후손과 명사들이 남긴 문학작품의 무대로도 자주 등장했다.



이담로의 후손 이시헌은 선대 문집과 행록, 전해져 오는 필묵을 묶어 '백운세수첩(白雲世手帖)'을 만듦으로써 백운동의 역사와 백운동을 노래한 연작시를 남겼다.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제자이기도 하다.



특히, 다산은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1812년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등반하고 백운동에 하룻밤을 유숙한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아름다운 경승 12곳을 ‘경(景)’과 ‘영(詠)’으로 칭송하는 시로 써서 합첩한 '백운첩'을 남겨 이덕휘에게 선물했다. 이 그림은 현재 이곳의 모습과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30일 간의 예고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강진 백운동 원림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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