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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열살 아들의 불치병 선고, 가족에게 소홀했다는 죄책감만…

한국과학원(KAIS) 과학기술사회(STS) 연구실에서 수행하던 10개국 연합 과학기술정책연구(STPI) 프로젝트를 끝낼 무렵 시련이 찾아왔다. 아들 진후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는 만성 신장염으로 진단하고 가능하면 미국에 데려가 보다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를 받아 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1970년 귀국 직후의 정근모 박사 가족. 왼쪽부터 부인 길경자 여사와 두 딸, 아들 진후, 그리고 정 박사. [사진 정근모 박사]

1970년 귀국 직후의 정근모 박사 가족. 왼쪽부터 부인 길경자 여사와 두 딸, 아들 진후, 그리고 정 박사. [사진 정근모 박사]

어렵사리 진후를 뉴욕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대학병원에 데려가 신장 전문의에게 보였더니 치유 불가능한 질환으로 진단했다. 전문의는 진후의 신장이 5년을 버티기 어렵고 그 뒤론 혈액 투석기로 혈액 속 노폐물을 제거하는 인공신장에 의지해야 한다고 했다. 뉴욕은 물론 보스턴·클리블랜드·워싱턴의 여러 병원을 찾아갔지만, 결론은 같았다. 당시 겨우 10살이던 아들이 이처럼 중병에 걸렸다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가족에게 등한시하고 일에만 몰두했던 잘못 때문이 아닌가 싶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결국 아들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그렇게 사랑했던 과학원을 떠나 휴직 중이던 뉴욕 공대에 복직하기로 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당시 뉴욕 공대는 뉴욕대(NYU)와 합병했으며 전기물리학과 소속이던 나는 원자력공학과 교수를 겸임하게 됐다. 당시 과장이던 존 라마쉬(1928~81년) 교수는 원자력 안전과 에너지 정책, 핵확산 억제 전문가로 교과서인 『원자력 엔지니어링의 기초』를 썼다. 그는 81년 7월 심장마비로 별세하기 직전 부인에게 “개정판을 내야 하는데 근모에게 부탁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 뒤 개정 4판까지 출간됐고 한국에서도 널리 사용됐다.

라마쉬 교수는 내가 제안한 ‘미래 원자력 발전소 모델 개발’ 연구에 협력했다. 당시 설계한 ‘이동식 바지선 원전’은 원전은 땅 위에만 짓는다는 고정관념을 뒤집었다. 지금도 내 서재에는 5권으로 이뤄진 ‘해상 원자력 발전소의 타당성 보고서’가 실현을 기다린다. 개발도상국에 적합한 이 개념과 설계는 한국 원전 수출에도 유익할 것이다. 
뉴욕대 원자력공학과 과장을 맡았던 존 라마쉬 교수(1928~81년).전근모 박사의 해상 원자력 발전소 설계를 도왔다. [사진 뉴욕 공대]

뉴욕대 원자력공학과 과장을 맡았던 존 라마쉬 교수(1928~81년).전근모 박사의 해상 원자력 발전소 설계를 도왔다. [사진 뉴욕 공대]

뉴욕 공대에서 일하는 동안 아들 진후는 시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 소아 신장 치료는 워싱턴 조지타운 병원이 전문이라고 해서 그곳으로 갈까 했는데 리치먼드의 버지니아 의료센터(MCV)에 한국계 신장이식 전문가인 이형모(1926~2013년) 박사가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생각을 바꿨다. 이 박사는 49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서 장기이식 개척자인 데이비드 흄(1917~73년) 교수와 협력해 MCV를 세계적인 장기이식 센터로 키웠다. 84~85년 미국 이식외과학회(ASTS) 회장도 지냈다.  
그래서 이 박사를 믿고 그곳에 아들을 맡기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장 이식은 아직 개척 단계였고 수술 뒤 거부 반응을 막기 위해 필수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면역 억제제는 개발 중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내 신장을 이식해야 할 상황에도 대비했다. 운명은 가혹했지만, 기도와 사랑으로 극복해야 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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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