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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에코사이언스] 1억년 후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의 보고서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은하수 백조자리 케플러-186f 행성의 항공우주국장께. 은하수 오리온 나선 팔에 위치한 태양계의 3번째 행성에서 탐사팀장이 보고 드립니다.
 
저희가 500광년 떨어진 이곳에 도착한 이후 대기·해양·토양·지층 등 구석구석 탐사했습니다. 이 ‘지구’라는 행성은 47억 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행성보다는 지름이 10% 작지만, 우리 행성과 흡사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때 호모 사피엔스가 이 행성을 지배했으나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 기후변화가 극심해지고 생태계 균형이 무너지면서 호모 사피엔스는 대략 1억 년 전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으로 떠나버린 것으로 판단됩니다.
 
대신 그들이 남겨 놓은 흔적은 모래 먼지 아래 얇은 지층에 화석으로 남았습니다. 해안에서는 플라스틱 컵들과 비닐봉지가, 육지에서는 철근·콘크리트 덩어리, 조류의 뼈, 휴대전화기 조각 같은 게 쏟아져 나옵니다. 블랙 카본과 고무 가루, 방사성 물질인 플루토늄도 검출됐습니다.
 
에코사이언스 12/17

에코사이언스 12/17

지층에서 같이 발견된 금속판에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첨단시스템으로 번역한 결과, 호모 사피엔스는 이 지층이 쌓인 지질시대를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라고 불렀습니다. 인류세는 그들 시간으로 1945년, 핵실험이 최초로 이뤄진 해에 시작됐지만, 지속기간은 고작 200~300년입니다.
 
금속판 문자 내용으로 미뤄보면 조류의 뼈는 호모 사피엔스가 매년 600억 마리씩 잡아먹은 닭의 뼈이고, 고무 가루는 13억대 자동차의 타이어가 닳으면서, 블랙 카본은 석탄·석유를 태우면서 나온 미세먼지로 쌓인 것 같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보다 덩치가 큰 186f 행성인이 살기에는 이 행성은 대기의 산소 농도가 낮은 편입니다. 식물을 심어 21%에서 15%로 낮아진 산소 농도를 30%로 높여야 우리가 이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금속판엔 다음 문장도 있었습니다.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는 지난 2018년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로 막으려면 205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로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인류는 그 경고를 실천에 옮기지 않았고, 2100년 지구 기온은 3.5도 상승했다. 그리고 재앙은 시작됐다.”(※이 글은 12일 영국 왕립 오픈 사이언스에 실린 ‘인류세와 닭 뼈’ 논문에서 힌트를 얻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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