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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문재인 정권도 절대 국민 못 이긴다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문재인 대통령답지 않았다. 지난 1일(현지시간) 뉴질랜드로 향하는 공군1호기 기내 기자간담회의 낯선 장면 이야기다. 문 대통령은 국내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순방 외교 중이라는 상황이 머릿속을 지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특별감찰반 전원교체와 광주형 일자리 등 경제 문제에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였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대통령은 무한책임을 지는 국민의 공복이다. 언제 어디서든 국민이 원하면 이야기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게 무시된 것이다.
 
물론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성장과 고용, 투자·소비의 모든 경제지표가 기대 이하다. 북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 북·미 협상도 진전이 없다. 그러는 동안 80%대의 고공 지지율도 40%대로 내려앉았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혼밥’과 ‘혼술’을 한다는 얘기도 간간이 들려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식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자를 직접 지목하는 미국식 회견을 했던 자신만만한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반전의 기회도 있다. 한반도 전쟁 위기를 막은 것만으로도 문 대통령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먼저 현실을 중시하는 쪽으로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독주보다는 야당과 보수를 상대로 한 설득과 경청이 중요해진다. 잘만 하면 더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결정으로 좋은 성적표를 받아쥘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좋은 선례다. 광우병 사태로 취임 두 달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는 조기 레임덕 위기에 몰리자 ‘친서민 중도실용’ 카드를 뽑아들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인 엠비노믹스와 충돌하지만 밀어붙였다. 자기를 비판했던 진보적 경제학자 정운찬을 총리로 기용했다. 지지율은 40%대로 올라갔고, 국정 운영의 동력을 되찾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현실주의자로 변신했다. 반미의 깃발을 들고 뭉친 핵심지지층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이라크 파병,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성사시켰다. 그래서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대미 수출을 크게 늘렸다. 노 대통령은 “개인 노무현이라면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하경칼럼

이하경칼럼

문 대통령도 지지세력의 압력을 버텨내고 스스로를 수정해야 한다. 이미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노동개혁을 거부하는 민주노총에 “이제 상당한 사회적 책임을 나눠야 하는 힘 있는 조직”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노동계 출신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친정부 성향인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회원들이 무리한 쌀값 인상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의원실을 점거했지만 만나지 않았다. “인간공부를 덜 한 것 같다”는 독설을 들었지만 선을 그은 것은 잘한 일이다. 이젠 문 대통령의 차례다.
 
문 대통령의 5년 단임 임기는 3분의 1이 지났다. 더 이상의 시행착오는 국가적 불행이다. 과거를 뒤지는 적폐청산은 할 만큼 했다. 대기업의 공격적 투자를 위축시키는 검찰 수사도 마무리할 시점이다. 이제는 미래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먹고살지를 강구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1960년부터 30년간은 제조업으로 일어섰다. 1990년부터 지금까지의 30년 가까운 기간은 제조업을 디지털로 고도화시켰고, 수출을 늘려 잘사는 나라가 됐다. 이젠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부을 힘 있는 전략이 나와야 한다.
 
중국 공산당은 10월 31일 정치국 집체학습회의를 가졌다. 최고의 AI 전문가로부터 강의를 들은 시진핑 주석은 “세계 최고 수준의 빅데이터와 시장 잠재력을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연간 GDP 성장률이 추가로 0.8~1.4%포인트 올라간다는 점도 강조됐다.
 
“환경파괴의 대가로 ‘피 묻은 GDP’를 얻은 나라”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중국은 이렇게 몸부림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에선 일단 ‘낮은 포복’ 자세를 보였지만 ‘과학기술 발전권’은 포기하지 않고 최후의 승자가 되겠다는 결연한 자세가 보인다.
 
우리도 못 할 게 없다. 중국 못지않게 과감하게 규제를 풀고 기업과 인재에게 창의와 혁신의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우리 편을 넘어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한다. 자식 세대까지 먹고살 산업 전략을 짜고 실행해야 한다. 유능한 정부와 효율적 시장의 결합이 과제다.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하늘 아래 없다. 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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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