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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조미료로 연 500억원 번 중국 노인

[사진 IT쥐즈]

[사진 IT쥐즈]

신비한 조미료 '중국의 미원' 스싼샹(十三香, 십삼향)으로 한해 약 500억원의 순이익을 낸 노인이 있다.  
 
그는 60세에 밑천 100위안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놀라운 것은 당시 조미료 하나가 고작 1마오(毛)였다. 하나 팔아봐야 8펀(分)이 남았다. 십삼향의 창업자 왕서우이(王守义)의 창업 스토리를 들어보자.

 
*10마오=1위안, 10펀=1마오
 
십삼향의 역사는 북송(北宋)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수도였던 개봉(카이펑)에 흥융당(兴隆堂)이라는 향신료·약초 전문점이 있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십삼향을 처음 만들었다. 향기가 아주 독특해 궁중에서도 이 향신료를 썼는데 제조법은 흥융당의 주인이었던 왕(王)씨 일가 사이에서만 대대로 전해졌다고 한다.  
 
왕서우이는 1950년대에 조부로부터 십삼향의 비밀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처음에는 팔 생각 없이 집에서 요리할 때 쓰려고 했지만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한 관계로 결국 1959년 십삼향을 팔기로 결심한다.
[사진 타이화궈화]

[사진 타이화궈화]

그는 비밀 레시피에 몇 가지를 추가해 아들들과 함께 가내수공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집에서만 팔다가 나중엔 아주 먼 지역까지 직접 발품을 팔았다. 포장에는 '십삼향' 글자를 새겨 인지도를 높이고 불만이 있는 고객에게는 무료로 환불과 교환을 해줬다.  
 
하지만 1960년대에 문화대혁명이 터지면서 잘 나가던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1979년 개혁개방 이후가 되어서야 사업을 재개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 특히 아들 왕인량(王银良)이 강력하게 사업 재개를 권했지만 왕서우이는 이미 농민 생활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아들의 끝없는 권유에 결국 60세였던 왕서우이는 다시 십삼향 사업에 매진하기로 결심한다. 1984년 당시 수중에 100위안 뿐이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종일 십삼향을 팔고서야 밤 늦게 귀가할 정도로 쉴 틈 없이 일했다.  
왕서우이(오른쪽) [사진 IT쥐즈]

왕서우이(오른쪽) [사진 IT쥐즈]

사람들은 한 봉지에 1마오라는 저렴한 가격과 훌륭한 품질에 금방 매료됐다. 그 어떤 요리에 십삼향 하나만 넣어도 맛은 물론이요 색과 향도 순식간에 먹음직스럽게 바뀌었다.

 
인기를 얻자 왕서우이는 사업을 크게 키우기 시작했다. 1985년 특유의 포장 디자인을 만들었고 1987년 공상국의 인증을 받았다. 그 다음에는 아들들과 함께 공장을 설립해 대량생산에 돌입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왕서우이십삼향조미품그룹(王守义十三香调味品集团有限公司)이 정식 설립됐다.  
 
2003년 왕서우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십삼향은 승승장구했다. 2015년 왕서우이그룹의 조미료 연간 생산량은 5.3만여톤에 달했고 매출액은 16억위안(약 2600억원), 직원 수는 2000여명에 육박할 정도로 회사가 커졌다.
십삼향 외에 마라셴(麻辣?, 마랄선), 러우웨이왕(肉味王, 육미왕), 지징(?精, 계정)을 판매하고 있다. 모두 조미료다. [사진 왕서우이스싼향 홈페이지]

십삼향 외에 마라셴(麻辣?, 마랄선), 러우웨이왕(肉味王, 육미왕), 지징(?精, 계정)을 판매하고 있다. 모두 조미료다. [사진 왕서우이스싼향 홈페이지]

왕서우이의 성공 요인은 (뻔하지만) 3가지다. 쉽게 카피할 수 없는 독특한 제품(비밀 레시피),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성실함, 그리고 집중이다.  
 
마지막 요인인 집중은 오직 제품에 대한 집중을 말한다. 십삼향은 지난 30여년간 한 번도 다른 사업에 눈 돌린 적 없이 묵묵하게 조미료 사업만 해왔다. 투자에도, 주식시장 상장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그 흔한 대출, 외상도 하지 않았다.  
 
"한 가지(조미료) 사업에만 집중하라. 주식시장 상장도, 부동산 투자도 절대 안 된다. 쉽게 돈을 불리는 것에 습관이 들면 안정적으로 사업 못 한다". 왕서우이의 유언이다.  
 
 
차이나랩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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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