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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시체로 만들라" 6월 항쟁 기폭제된 YS 단식투쟁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9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9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의 단식이 15일로 열흘째를 맞으면서 정치권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손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선거제 개편을 요구하며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함께 6일부터 국회 로텐더홀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손 대표가 71세의 고령이어서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지만 선거제 개편 문제도 당장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은 이슈다.
 
14일엔 문희상 국회의장을 포함한 여ㆍ야 5선 이상 중진 모임인 ‘이금회’ 소속 의원 7명(문희상ㆍ이주영ㆍ박병석ㆍ이종걸ㆍ김무성ㆍ원유철ㆍ정병국)이 “단식을 즉각 중단해주길 간곡히 요청한다”는 의견을 냈다.
 
과거에 단식투쟁은 야당 지도자들이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였다. 특히 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엔 언론통제가 심했기 때문에 야당이나 재야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사회에 널리 알리려면 단식과 같은 극한적 방식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단식 투쟁도 주로 이 시기에 몰려있다.
 
단식 중인 김영삼 전 대통령 [중앙포토]

단식 중인 김영삼 전 대통령 [중앙포토]

 
5공화국 시기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벌인 단식은 단식투쟁의 교과서다. 1983년 5월18일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YS는 ‘민주화 5개항(언론통제 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인사 복직, 정치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정부의 보도 통제로 기사 한줄 나지 않았지만 바로 이튿날부터 ‘민주산악회’ 인사 70여명이 함께 단식에 들어갔다. 전두환 정권은 YS에게 해외출국을 권하며 회유했지만, YS는 “나를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치면 된다”면서 버텼다. 민주화 5개항이 즉각 수용되진 않았지만 YS의 단식투쟁은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1990년에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보안사령부 해체 등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나섰다. 지방자치제는 1987년 대선, 1988년 총선에서 모든 후보와 정당의 공약이었지만 3당 합당 이후 폐기 수순을 밟고 있었다. 결국 13일 만에 여야 합의로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면서 DJ는 단식 농성을 풀었다.
 
13일째 단식투쟁을 하다 중단을 선언한 임종석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 [중앙포토]

13일째 단식투쟁을 하다 중단을 선언한 임종석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 [중앙포토]

 
2000년대 이후 정치권의 단식투쟁은 복잡한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기존의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사라지면서 다양한 성격의 단식투쟁이 등장했다. 2003년 10월 임종석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은 정부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며 13일간 단식했고, 그해 11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도입을 요구하며 단식했다. 2007년 3월에는 김근태·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졸속 협상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했다.
 
2016년 단식 중인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 [중앙포토]

2016년 단식 중인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도 2014년 8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시절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9일간 단식을 한 적이 있다. 2016년 9월엔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을 했다. 지난 5월엔 김성태 한국당 당시 원내대표가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였다.
단식투쟁의 공통점은 투쟁의 요구가 국민여론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내용이면 결과가 좋지만, 찬반이 팽팽하거나 이념지향적 요구일 경우엔 성공한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손학규 대표의 단식에 대해 국회에선 걱정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손 대표가 요구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마이너 3당(바른미래·민주평화·정의당)에겐 절대적으로 바람직한 제도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에겐 탐탁찮은 제도다. 단식 때문에 받아주고 말고 할 사안이 아니란 것이다. 국민 여론이 절대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지하는지 여부도 아직 불확실하다.
바른미래당의 한 의원은 “손 대표가 단식을 하니 문제를 풀 수 있는 카드가 오히려 없어진 상황”이라며 “출구전략도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인간적으로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면서도 “선거제는 협상을 해야지 단식투쟁한다고 풀릴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대중매체 등장과 함께 '투쟁수단'된 단식
마하트마 간디 [중앙포토]

마하트마 간디 [중앙포토]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는 ‘사기열전’의 백이(伯夷)ㆍ숙제(叔齊) 이야기는 단식의 기원처럼 취급된다. 둘은 은나라(기원전1600년~기원전1046년)가 멸망한 뒤 새로 들어선 주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곡기를 끊었다. 이처럼 소극적 저항 운동 성격의 단식은 수 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만큼 역사가 깊다.
 
20세기 들어 라디오와 TV 등 대중매체가 보급되면서 단식은 본격적인 투쟁 수단이 되기 시작했다.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겠다’는 소극적 저항에서 ‘내 의지를 관철하겠다’는 적극적 주장으로 변모했다. 1900년대 초반 여성참정권을 주장했던 영국의 ‘서프러제트’(여성참정권 운동가) 투쟁이 주목할만한 사례다. 이들은 1908년부터 ‘단식’을 투쟁 전술의 하나로 채택했다. 그 결과 1918년 제한적 여성참정권을, 1928년에는 남성과 같은 선거권을 인정받았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유명세’까지 등에 업고 단식에 나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투쟁의 대표 사례다. 간디는 1948년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을 반대하는 동시에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화합을 요구하며 78세의 나이로 3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결국 종교 지도자들이 긴급 모임을 갖고 인도에 남은 이슬람교도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로 결의했다.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진 뒤 간디는 단식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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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