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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 가더니 전화 ‘뚝‘…꼭 자식 탓만일까?

기자
한순 사진 한순
[더,오래] 한순의 인생후반 필독서(14)
느긋한 마음으로 택시를 탔다. 마음 탓이었는지 택시기사의 물음에 평상시보다 답이 길어졌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중앙포토]

느긋한 마음으로 택시를 탔다. 마음 탓이었는지 택시기사의 물음에 평상시보다 답이 길어졌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중앙포토]

 
한 해의 굵직한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좀 느긋한 마음으로 택시를 탔다. 마음 탓이었는지 택시기사의 물음에 평상시보다 답이 길어졌다. 백미러에는 기사의 이마 부분이 보였고, 눈이 보이지 않아 마음이 더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기사들과의 대화가 불편할 때는 정치 성향을 띤 대화를 상대에게 동의를 구하며 마구 들이밀 때다.
 
택시 기사와 공감한 “너도 자식 낳아 키워보아라”
오늘 기사님은 다행히 그런 분은 아니었다. 말투도 느리고 차분할 뿐 아니라 20여 년 전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인생의 행보를 넓혀본 분이라 나의 귀가 자연히 열렸다. 대화가 열리고 이리저리 세상 구석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음에 잔잔히 파문이 일었다. 어머니의 말씀 “너도 이담에 네 자식 낳아서 키워보아라”라는 대목에서였다. 우리는 동시에 ‘이제야 그 말을 알겠다’는 헛웃음을 웃었다.
 
장가가더니 처가는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아버지한테는 전화 한 통 없는 아들, 부모가 힘든지 어떤지 아무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 그러나 그 모습이 예전의 우리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우리도 부모란 늘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우리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너무나 당연하게 믿으며 철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서 당연히 내 생각은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를 기획하던 시절로 돌아갔다. 큰 애가 인생의 큰 관문인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아이와 크고 작은 갈등과 소통을 앞에 두고 막막했던 적이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저 나이 때 나는 어땠나를 대입해보기 시작했다. 나의 과거를 반추해볼수록 부모님께 죄송하고 아이에게는 넉넉해졌다. 책 속의 시 한 편을 소개하고 싶다.
 
억새. [중앙포토]

억새. [중앙포토]

 
억새
도종환
 
저녁 호수의 물빛이 억새풀빛인 걸 보니
가을도 깊었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어머니,
억새풀밖에 마음 둘 데가 없습니다
억새들도 이젠 그런 내 맘을 아는지
잔잔한 가을 햇살을 따서
하나씩 들판에 뿌리며 내 뒤를 따라오거나
고갯마루에 먼저 와 여린 손을 흔듭니다
저도 가벼운 몸 하나로 서서 함께 흔들리는
이런 저녁이면 어머니 당신 생각이 간절합니다
억새풀처럼 평생을 잔잔한 몸짓으로 사신
어머니, 올 가을 이 고개를 넘으면 이제 저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저무는 길을 향해
걸어 내려가려 합니다
세상의 불빛과는 조금
거리를 둔 곳으로 가고자 합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고 힘이 넘치는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는지라
어머니를 크게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였지만
제가 가슴 아파하는 것은
어머니의 평범한 소망을
채워드리지 못한 점입니다
험한 일 겪지 않고 마음 편하고 화목하게만
살아달라는 소망
아프지 말고 아이들 잘 키우고 남에게 엄한 소리  
듣지 말고 살면 된다는 소박한 바램
그 중 어느 하나도 들어드리지 못하였습니다
험한 길을 택해 걸었기 때문에
내가 밟은 벼룻길 자갈돌이
어머니 가슴으로 떨어지는 소리만
수없이 들어야 했습니다
내가 드린 것은 어머니를 벌판 끝에 세워놓고
억새같이 떨게 만든 세월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점점 사위어 가는데
다시 가을은 깊어지고
바람은 하루가 다르게 차가워져
우리가 넘어야 할 산 너머엔 벌써
겨울 그림자 서성댑니다
오늘은 서쪽하늘도
억새풀밭을 이루어 하늘은
억새구름으로 가득합니다
하늘로 옮겨간 억새밭 사잇길로 어머니가
천천히 천천히 걸어가는 게 보입니다
고갯마루에 앉아 오래도록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하늘에서도 억새풀이 바람에 날려 흩어집니다
반짝이며, 저무는 가을 햇살을 묻힌 채
잠깐씩 반짝이며
억새풀, 억새풀 잎들이,
 
아주 평범한 어머니의 소망, 그 소망 하나도 제대로 들어드리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아이들을 키워보니 이제야 알겠다. 얼마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간절히 떨며 기도로 손을 모았는지, 황홀하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되는지를. 이제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시도 한 편 소개한다.
 
아이와 엄마. [사진 pixabay]

아이와 엄마. [사진 pixabay]

 
엄마가 아들에게 주는 시
랭스턴 휴즈
 
아들아, 난 너에게 말하고 싶다
인생은 내게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다는 걸
계단에는 못도 떨어져 있었고
가시도 있었다
그리고 판자에는 구멍이 났지
바닥엔 양탄자도 깔려 있지 않았다
맨 바닥이었어
 
그러나 난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계단을 올라왔다
층계참에도 도달하고
모퉁이도 돌고
때로는 전깃불도 없는 캄캄한 곳까지 올라갔지
 
그러니 아들아, 너도 돌아서지 말아라
계단 위에 주저앉지 말아라
왜냐하면 넌 지금
약간 힘든 것일 뿐이니까
너도 곧 그걸 알게 될 테니까
지금 주저앉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얘야, 나도 아직
그 계단을 올라가고 있으니까
난 아직도 오르고 있다
그리고 인생은 내게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지
 
인생의 층계참서 가족이 함께 읽어야 할 시
인생의 층계참에서 다시 우리에게 힘을 주는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가족일 것이다. 사랑으로 인해 내가 살고 자녀가 성장하고 또 그 자녀가 그 사랑으로 자녀를 키운다. [사진 pixabay]

인생의 층계참에서 다시 우리에게 힘을 주는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가족일 것이다. 사랑으로 인해 내가 살고 자녀가 성장하고 또 그 자녀가 그 사랑으로 자녀를 키운다. [사진 pixabay]

 
부모도 자식도 보란 듯이 보석으로 장식된 계단을 오르는 것은 아니다. 모퉁이 길과 구석진 골목을 돌아야 할 때가 있고, 층계참에 앉아 그대로 쉬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한없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의 층계참에서 다시 우리에게 힘을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가족일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바뀌어서 부모 자녀 사이도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도 그 원형의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 사랑으로 인해 내가 살고 자녀가 장성하고 또 그 자녀가 그 사랑으로 자녀를 키운다.
 
어제의 가치가 내일도 유효할까에 대해 의심하며 나에게 과하게 몰입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당연히 인간관계에도 많은 한계와 단절이 불쑥불쑥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나의 처방은 이러하다.
 
현재의 이해관계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저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며, 또 어느 아이들의 엄마고 아빠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저들과 나의 공통분모가 쉽게 잡히고, 생명을 부여받게 된 관계망 속에서 저들을 바라보게 된다.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 도종환 엮음, 나무생각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 도종환 엮음, 나무생각

 
길거리의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전등이 한 해를 힘차게 달려온 우리를 위로하는 응원으로 보인다. 살아 있는 가족은 물론이고, 저 별로 여행을 간 가족과 지인들의 반짝이는 응원. 너무 가까워 표현하기 쑥스럽다면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 이 한 권의 책을 선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순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ree33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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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