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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유럽 물류 잇는 담대한 구상으로 경제위기 뚫어야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김석동 전 위원장은 현장 답사를 다녔던 ‘시베리아 횡단철도’ 일대를 가리키며 ’이제부터는 ‘고조선 국경 열차’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빈 기자]

김석동 전 위원장은 현장 답사를 다녔던 ‘시베리아 횡단철도’ 일대를 가리키며 ’이제부터는 ‘고조선 국경 열차’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빈 기자]

김석동(65)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 30여 년간 경제 위기 때마다 각종 현안들을 도맡아 처리하며 ‘대책반장’ ‘소방수’ ‘구원투수’ 등으로 불렸던 대표적인 정통 경제관료다. 아직도 개각설이 나돌 때마다 유력한 경제사령탑 후보로 거명되는 것은 위기 때마다 돋보인 그의 추진력 때문이다.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

그가 최근 고대사 연구가로 변신, 한민족의 기원을 추적 정리한 책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사진)를 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중앙아시아 일대에 50차례, 총 5만㎞에 달하는 현장 답사를 거친 끝에 나온 이 책은 방대한 자료와 함께 한민족의 기원과 북방 기마민족과의 연결고리를 밝히고 있다.
 
인터뷰는 몇 번의 고사 끝에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이나 현안에 대해선 묻지 않는 조건으로 성사됐다. 그는 민감한 질문엔 애써 답변을 피하며 넘어갔지만 분위기가 가열되면서 어느새 주제는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대한 진단으로 이어졌다.
 
 
60년 만에 40배 기적 성장한 한국 경제  
 
어떤 내용이 담긴 책인가.
“1960년대 이후 세계 경제가 7.5배 성장했지만 같은 기간 한국 경제는 40배나 증가했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봐도 압도적인 고속 성장이다. 한국은 이처럼 지난 반세기 동안 기적과 같은 성과를 이루며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경제 관료 시절 한국민들이 어떻게 이런 기적을 이루게 됐는지, 과연 그 원동력은 무엇인지가 항상 궁금했다. 이 책은 그 해답을 찾아 나서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고민 끝에 내 나름의 답을 찾았다. 해외시장에서 수출로 승부를 걸었던 한국 고유의 개방 전략과 한민족의 독특한 기질이 담긴 유전자(DNA)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DNA로 6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경제 대국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을 『한민족 DNA를 찾아서』라 정했나.
“한민족의 특질은 끈질긴 생존본능, 승부사 기질, 강한 집단의지, 개척자 근성 등 네 가지로 구분된다. 다른 민족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굉장히 독특한 특징이지만 2500여 년 전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기마민족 전사들의 기질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시대에 따라 흉노, 선비, 돌궐, 몽골, 여진으로 불렸던 기마민족을 우리는 북방 오랑캐라고만 치부하며 오해해왔지만, 그들은 700~1400년간 세계적인 대제국을 유지했던 민족들이다. 수많은 유적·유물이나 사서의 기록 등과 문화·언어·관습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한민족과 친연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현장 답사를 다니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유적을 꼽는다면.
“기원전 고대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중국 발해만 일대의 홍산(紅山)지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거기서 내 귀를 깜짝 놀라게 하는 말을 들었다. 곳곳에 고대 무덤들이 흩어져 있던 어느 동네 어귀에 들어섰는데 한 동네 촌로가 그것들을 가리키며 ‘가오리무(高麗墓)’라고 말하더라. 고려는 ‘고구려’를 칭하는 말로 이 돌무지 무덤들이 한족의 것이 아니라 한민족 등 북방인들의 유적이라는 뜻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 한민족을 비롯한 북방인들의 문화가 융성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경제관료로 바쁜 삶을 살아왔을 텐데 언제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졌나.
“원래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처럼 고고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려 했지만, 부모님이 강력하게 권유해 경영학과에 진학해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됐다. 현직에 있을 때도 꾸준히 1000여 권의 사서를 모으며 우리와 우리 주변의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
 
한국 경제가 지금까지 이뤄낸 것에 대한 분석의 관점이 독특하다. 이제 미래 얘기를 해보자. 한국 경제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년 이후 세계 경제는 어려워질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경제 침체는 ‘계속되는 위기(on-going crisis)’로 이어지고 있다. 1929년의 대공황은 수요 부족이라는 심플한 원인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2008년 이후의 위기는 고(高) 부채의 문제다. 부채 문제가 쌓이고 쌓여서 터진 게 2008년 금융위기였다. 당시 부채라는 암초에 직면하자 이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위로 ‘금리 인하’라는 물을 더 부어서 암초에 걸리지 않고 넘어간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은 위기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을 어떻게 전망하나.
“1985년 엔화 등의 평가절상을 이끌어낸 플라자 합의 현장에서 담당 사무관으로 이를 생생하게 목격한 바 있다. 달러당 250엔 하던 환율이 80엔으로 3분의 1로 떨어지더라. 일본이 미국의 압력에 즉각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잃어버린 20년’이 이어지면서 오랜 기간 경제가 침체됐다. 미·중 무역분쟁은 전임 오바마 정부서부터 정교하게 준비한 것이다. 트럼프가 그 방아쇠만 당긴 것일 뿐이다. 국제 세력화의 차원에서 설계된 전쟁이라는 점에서 그 파장이 오래갈 것이다.”
 
 
독창적 생산 방식으로 글로벌 위기 넘어야  
 
우울한 이야기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활로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국내 상황도 만만치 않다. 가계부채 문제와 경쟁력 상실,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 등의 문제가 서로 얽히면서 불균형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 경제는 100m 달리기하듯 1㎞를 뛰어왔기에 이제 숨이 목에 차서 헉헉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숨돌릴 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위기 극복에 어떤 모멘텀이 필요한가.
“미국·일본·중국 등 세계의 주요 생산기지를 선으로 이어보면 한반도가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반도는 세계적인 물류·생산기지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한다. 여태껏 해보지 않은, 혁명적이고 독창적인 생산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새로운 생산방식이란 표현이 낯설다.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고, 목포에서 신의주와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대(大)물류의 장이 한반도에서 구현될 수 있다. 이러한 담대한 구상이 바로 새로운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북·중·러 접경지대의 공동 개발도 고려해 볼 만하다. 북·중·러 3개국이 땅을 내놓고, 한·미·일이 가세해 6개국 공동 보유 방식으로 국제도시 건설에 나서는 방안 등이 구상될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방식이라야 통할 수 있고, 국제적 협력 속에서 진행돼야 세계 경제위기 극복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소득·성장을 원인·결과 관계로만 봐선 안 돼
 
경제 현안에 관한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경제, 무엇이 시급한 과제인가.
“다가올 혹한기에 대비해 산업 구조조정을 가급적 빠르게 진행하고, 신산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독점적인 구조를 지닌 산업 분야에 경쟁 요소를 도입하고, 완제품보다 부품산업을 진흥시킬 대책이 필요하다. 미래를 내다보는 산업구조로 개편해 나가야 한다. 이렇게 새 판을 짤 수 있는 것은 정부밖에 없다.”
 
현 정부가 경제정책 운용을 잘하고 있나.
“(손사래치며) 에이… 노 코멘트.”
 
하지만 최근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논란이 많다.
“‘경제가 나쁘다’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판단의 대상이라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의 급격한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지금 겪고 있지 않나. ‘정부 정책이 문제’라는 식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외부 환경 요인까지 고려해야 한다. ”
 
소득주도 성장론을 어떻게 생각하나.
“소득과 성장을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만 봐선 안 된다. 자본주의 경제는 복잡다기하기 때문에 결과가 때로는 원인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뭐가 우선인지 따지기 보다 ‘흑묘백묘론’처럼 현 상황에서 가장 유효한 게 중요하다. 내가 35년간 경제 정책을 해왔지만 경제이론대로만 되지는 않더라.”
 
기업 기죽이기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잠시 말을 멈추더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서 왜곡된 문제를 푸는 것은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자칫 균형을 잃거나 기업 마인드를 위축시키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있는 것을 모두 때려부수는 식은 곤란하다. 대한민국의 성공 비결은 뭐든지 하도록 풀어놨기 때문이다. 기업이 알아서 하도록 놔둬라. 하지만 내년 이후 한국 경제의 안팎 사정이 어려워지면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선 정부가 나서야 한다.”
 
관치(官治)를 하자는 것인가.
“위기를 돌파할 때는 그에 걸맞은 대응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게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위기가 다가온지조차 모르는 게 문제다.”
 
경제팀 개각 때마다 하마평에 오른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공직 복귀는 없을 것이다. 동이족의 궤적을 더 파 보고 싶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 조선’이라는 자기 비하적인 표현이 나돌고 있어 안타깝다. 그들이 세계 속에서 경쟁하는 세계인이 될 수 있게 우리가 물려받은 나라와 DNA가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다.”
 
책을 보니 … “고조선이 흉노·선비·돌궐·몽골·여진의 기원”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에는 꽤나 도발적인 주장이 곳곳에서 나온다. 고조선은 만주와 한반도, 발해만 일대에서 실존했던 고대국가며, 이 나라가 북방 기마 5개 민족의 기원이 됐다는 게 주장의 골자다.
 
한민족의 기원은.
“이 책은 언어학적 분석과 각종 유물·유적의 비교 등을 통해 기마민족과 한민족이 깊은 친연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최근 DNA 분석 연구결과를 보면 한민족은 70%가 북방계열, 30%가 남방계열의 피가 섞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민족은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바이칼 남부-몽골 고원과 만주-발해만-한반도로 이뤄지는 루트를 통해 내려와 이 땅에 정착했다”
 
어떤 근거에서 나온 주장인가.
“고조선은 기원전 24세기에 실존했던 대제국이다. 이미 여러 사료와 유적 등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거기에서 5대 북방 기마민족이 파생됐다. 흉노는 언어와 문화, 무덤 유적이 우리가 유사하다. 선비는 고조선의 일파에서 갈려 나갔으며, 돌궐은 북방사학자 전원철 박사가 주장했듯이 서역 진출 당시의 지휘부가 고구려 왕가의 가계와 이어진다. 몽골은 칭기즈칸의 가계가 발해 대조영의 동생인 대야발의 19세 손으로 이어진다. 여진은 자신들의 사서에서 시조 함보의 후예가 고구려에서 왔다고 전하고 있다.”
 
국수주의적이라는 지적도 나올 법하다.
“이 책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나름대로 밝힌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왔는지, 북방 기마민족 그들은 누구이며,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관한 주장이다. 내 주장을 이해하려면 한국 현대 경제사와 고대사, 유라시아 역사 등 3개 분야를 묶어서 봐야 전체의 그림이 그려진다. 이제 한민족을 단일민족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굉장히 오랫동안 교류·협력하는 과정에서 혼합된 민족 공동체로 봐야 한다.”
 
홍병기 선임기자 klaatu@joongang.co.kr

 
자세한 내용은 17일 발간되는 월간중앙 신년호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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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