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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국가비상사태 명상하라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대한민국의 국가부도가 임박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이 아닙니다.”
 
영화의 한 장면이다. 제목은 ‘국가부도의 날’. 기자와 정부 관계자 사이에 오가는 문답이다. 국가부도란 1997년의 IMF 사태를 가리킨다. 영화 속에서 정부는 숨기기에 급급하다. 영화 대사지만 21년 전 일어난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허구라고만 볼 수 없다. 정부의 부인과 반대로 국가부도는 일어났다.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영화는 긴박했던 순간을 그려낸다. 낯익은 기업의 이름들 위에 잇따라 빨간 줄이 그어진다. 도산 기업이 속출했다. IMF 때 직장을 잃은 현재의 50~60대, 그때 부모의 실직을 경험한 지금의 30~40대 등은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의 상당수에 그 상처와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영화는 사실과 주장과 허구가 마구 뒤섞여 있는데 나는 이를 명상과 연결해 보고 싶다. 국가부도와 명상이 도대체 무슨 관련인가. 기업과 국가의 부도는 일종의 사회적 죽음이다. 죽음보다 더 큰 명상의 소재는 없다. 인간과 사회와 국가는 유한한 존재인데 마치 영원한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산다. 내가 일주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해보라. 지금까지 지내온 행적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며 후회할 일들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돌아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명상의 요체다. 명상의 영어 표기는 메디테이션(meditation)인데, 그 어원인 메디(medi)에는 ‘치료’ ‘치유’의 의미가 담겼다.
 
영화에는 세 부류의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정부 관계자, 기업인, 일반 소시민. 우선 정치권의 이권 다툼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소시민들을 먼저 위로해 주고 싶다. 국가와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치유하는데 큰 부작용 없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알코올이나 약물에 의존하면 부작용이 크고 결국 몸만 상하게 된다.
 
어린이 명상 책 『화가 났어요』 삽화

어린이 명상 책 『화가 났어요』 삽화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명상을 하면 어떻게 될까. 명상과 함께 정치를 하고, 명상의 마음으로 기업을 운영한다면 그 효과는 개인적 행복과 평화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미국에서 현대 명상이 붐을 일으키는 데 일조한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만약 세계의 모든 8세 아동들이 명상을 배운다면, 한 세대 만에 세계의 폭력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의 명상 교육 효과가 30년 후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한 것인데, 지금 현역 정치인들이 명상을 한다면 30년이 아니라 즉각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영화는 IMF 사태가 난지 20년 후를 살짝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반복되는 인간 군상의 어리석음. 영화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경제학 교수의 발언과 겹쳐진다. 장하준은 최근 런던 특파원들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 상황은 국가 비상사태”라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받아들이는 게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장하준이 자신의 존재를 국내 독자들에게 처음 알린 책은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이다. 서평을 쓰며 장하준의 발언을 접했고 직접 인터뷰도 해봤지만 ‘국가비상사태’ 같은 ‘격한 표현’을 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장하준은 과격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문제의식을 요약하면 ‘자본과 노동은 왜 서로 자기 발등을 찍고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함께 일궈온 쌍두마차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일종의 ‘대타협’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본과 노동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당과 야당도 마찬가지다. 물고 뜯고 싸우는 정도가 공동의 기반까지 해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그는 일관되게 펼치고 있다.  
 
장하준은 “그동안 투자와 신산업 개발이 부족했기 때문에 주력 산업들이 붕괴하면서 어려워졌다. … 좌파는 최저임금에 집착하고 우파는 규제 완화에 집착하는데 모두 변죽 울리는 소리”라며 한국 경제의 체질개선을 요구했다. 체질개선을 위해선 각자의 ‘정신 혁명’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체질과 습관과 관행이 바뀌려면 생각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이것은 좌와 우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기본적으로 해야 할 삶의 토대에 관한 문제제기다.
 
명상이 대단한 게 아니다. 호흡 한 번 크게 내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잠시 하던 일을 멈출 필요가 있다. 잠시 멈춘다고 해서 큰일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국가비상사태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잠시 멈춤이 명상의 출발이다. 밖으로만 향해 있던 마음을 안으로 돌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이다. 어느 한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여당과 야당 모두 해야 할 일이다. 마침 새해를 앞두고 있다. 묵은해는 보내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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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