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양성희의 시시각각] ‘황후의 품격’과 지상파의 품격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보통의 삶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자극적인 상황의 연쇄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게 막장드라마다. MBC 일일극 ‘인어아가씨’(2002)를 필두로 2000년대 한국 방송에 등장했다. 이후 장노년 시청자가 많은 주말연속극이나 일일극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비현실적인 설정에 비판이 많지만 시청률은 높다. 시청률의 유혹에 빠진 방송사가 흔하게 쓰는 카드다.
 
‘욕하면서 보는’ 게 막장드라마다. 극단적인 악과 엽기, 패륜이 난무하지만 결론은 권선징악이니, 보는 내 도덕성을 의심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의외로 젊은 팬들도 있다. 개연성 없이 종잡을 수 없는 전개가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고, 말 안되는 상황을 끌어가는 작가의 필력을 테스트하자며 실소하듯 즐기는 것이다.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황당무계한 설정을, ‘판단중지’ 상태에서 무비판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극단적 감정의 대리 분출, ‘현실의 희화화’ 효과도 있다. 현실을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그려, 현실 자체의 무게감을 덜어내는 것이다. 현실에 치여 차라리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시청자의 도피 심리를 자극한다. 외피는 권선징악이지만 시청자에게 악을 성찰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으니 그저 인간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끔찍한 존재라는 자기혐오를 부추기기도 한다.
 
최근 방송계에서는 ‘황후의 품격’이라는 막장드라마가 화제다. 수·목 밤 10시 SBS 드라마다. ‘아내의 유혹’ ‘왔다 장보리’ 등으로 유명한 막장계의 스타작가 김순옥의 신작이다. 전통적으로 지상파가 자존심을 걸고 작품성으로 승부해 온 주중 밤 10시대에 등장한 첫 번째 막장드라마라, 방송 전부터 논란이 됐다. 지상파가 프라임타임 대의 부진을 막장으로 돌파하려는 전략이다. 역시 파급력이 셌다. 박보검, 송혜교 주연의 tvN 로맨스 ‘남자친구’를 밀어냈다. 13일 방송은 시청률 14%로, 현재 지상파 월~목 동시간대 드라마 중 유일하게 10%를 넘겼다.
 
‘황후의 품격’은 그야말로 막장의 총체극이다. 입헌군주제 아래 가상의 황실을 배경으로 코미디와 가족극, 불륜과 기행, 배신과 복수담을 정신없이 오간다. 머리에 총알이 박혔는데 멀쩡히 살아나고 체중을 20~30kg 뺐더니 동거녀도 몰라보더라는 설정은 흠도 아니다. 누아르도 아닌 것이 거의 매주 한 건의 살인, 혹은 살인 미수가 일어난다. 그것도 친족간 살인이다. 살인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도, 게임 캐릭터를 죽이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다. 주인공 장나라, 최진혁 정도를 제외하면 황실의 주요 인물들이 다 사이코패스 수준이다. 지금껏 한두 명의 악인이 난동을 부렸던 막장드라마와는 급이 다르다.
 
시청률 상승세로 보건대, 아마도 올해 지상파가 내놓은 대표작의 하나가 될 ‘황후의 품격’을 보면서 ‘지상파의 품격’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시청률도 좋고, 벗고 뛰어야 하는 지상파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고, 나름 막장의 효용도 있겠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황후의 품격’이 성공할수록 ‘지상파의 품격’에 금이 가는 건 자명해 보인다.
 
이 와중에 방통위는 반대 여론이 높은 지상파 중간광고를 허용하며 지상파 지원사격에 나섰다. 방통위는 지상파의 광고 매출 급감과 경영악화를 염려했지만, 그건 솔직히 달라진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그들의 사정일 뿐이다. 참고로 내 주변에서는 요즘, 게임과 현실을 뒤섞은 국내 최초의 증강현실 드라마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강남 사교육 시장의 현실을 날카롭게 파헤친 JTBC ‘스카이캐슬’ 등이 인기다. 왜 젊은 시청자들이 지상파를 외면하는지, 왜 지상파에 볼만한 프로가 없다고 하는지, 굳이 말 안 해도 될 것 같다.
 
양성희 논설위원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