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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에서 자율주행차 쫓아낸 ‘모래주머니 규제’

강영재 코이스라 시드 파트너스(KSP) 매니징파트너·공동대표

강영재 코이스라 시드 파트너스(KSP) 매니징파트너·공동대표

구글의 자율주행 무인 택시 서비스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던 지난 11월 말. 미국 실리콘밸리 팰러앨토에서는 또 다른 자율주행 시범 서비스가 시작됐다. 5000개 매장을 가진 대형 건자재 체인업체인 에이스 하드웨어가 자율주행 차량을 활용해 주문한 물품을 고객에게 배달하는 택배 서비스였다. 배달 차량은 포드사의 밴이었지만 실제 자율주행 시스템과 기술은 한국의 스타트업 토르드라이브가 제공했다. 한국 최초로 도심 자율 주행에 성공한 스누버 개발자(서울대 서승우 교수)의 연구실 출신 제자들이 창업한 회사다.  
 
현재도 서울에서 도심 자율주행 테스트와 연구개발을 하는 토르드라이브가 상용화를 위한 시범 테스트를 미국에서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의 규제 환경 때문이었다. 법 조항에 근거 규정이 없는 사업은 탈법 또는 불법이 되는 ‘열거주의’와 사업 및 기술 분야별로 소관 부처가 다른 ‘칸막이 규제’로 인해 상업적인 목적의 자율주행 서비스 허가가 언제 가능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해외 투자자들도 이 회사의 한국내 사업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됐다.
 
기업이 아무리 좋은 신기술을 적용해 혁신적인 사업 모델과 서비스를 개발하더라도 실제 상용화와 시장 진입에 불확실성과 제약이 따르면 시장 개척과 성장에 필요한 투자를 제때 받기 어렵다. 실제로 글로벌 컨설팅회사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누적 투자액 상위 100개 스타트업 가운데 40%의 사업 모델이 한국에서는 규제로 인해 사업이 불가능하고, 30%는 조건부로만 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의 스타트업은 100대 기업에 한 곳도 들지 못했다.
 
더욱이 기술 발전과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열거주의 및 칸막이 규제는 유명무실해진 규정과 기득권을 남긴다. 지난 4년간 승차공유 서비스 도입에 대한 택시업계와 신규 사업자 간의 갈등에 대해 지금까지 관련 부처와 정치권이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그사이 스타트업은 생존을 위해 업종을 전환하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됐고, 대기업은 해외의 모빌리티 플랫폼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기업들은 앞으로 뛰어야 하는데 국내 규제 환경이 오히려 모래주머니를 단 셈이다.
 
시론 12/14

시론 12/14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핵심 정책은 혁신성장이다.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해 창업 생태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3대 전략투자분야와 8대 선도사업’에 대한 전략투자방안도 발표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변환 시대에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기존 산업과 기술의 구분을 넘나드는 새로운 형태의 사업 모델로 플랫폼과 생태계를 형성함으로써 혁신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정부의 혁신성장정책과 투자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열거주의 및 칸막이 규제에 대한 과감한 혁신이 필수적인 이유다.
 
단기적으로는 ‘선 허용, 후 규제’의 원칙에 따른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해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에 기반을 둔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서 빠르게 테스트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위한 정부의 ‘규제혁신 5법’(정보통신융합법, 산업융합촉진법, 금융혁신지원법, 지역특구법, 행정규제 기본법)이 국회에서 처리돼 내년부터 순차적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기업은 일정 기간(2+2년) 기존 규제의 적용을 면제받아 제한된 구역·시간·규모 안에서 신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고, 정부는 실증 테스트 결과를 분석해 적절한 법제도 개선과 보완을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시범사업의 심의와 관리가 철저히 규제 샌드박스 제도 도입의 취지에 부합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때 기존 규제의 존속 필요성에 따라 일몰 규정 적용을 검토하는 기회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열거주의 및 칸막이 규제에서 탈피해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혁신과 성장을 촉진할 수 있도록 새로운 규제 체계를 정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시장과 기술의 변화에 따라 규제의 내용을 적기에 합리적으로 조정(폐기·연장·수정·신설)하는 프로세스를 갖추고 이해관계자에게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제공하는 게 바람직한 규제 체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부 이해관계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절한 보상을 통해 사회적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의사결정 프레임워크는 필수적이다. 이런 모든 과정을 관장하는 범정부 차원의 규제 거버넌스가 새롭게 설계돼야 한다. 이제 디지털 변환의 시대에 한국경제가 혁신의 날개를 달고 비상하도록 규제 체계의 혁신을 시작할 때다.
 
강영재 코이스라 시드 파트너스(KSP) 매니징파트너·공동대표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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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