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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같은데 보수는 인성교육, 진보는 민주시민교육?

2014년 국회가 주최한 중·고교생 스피치·토론대회의 주제는 인성교육진흥법 제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중앙포토]

2014년 국회가 주최한 중·고교생 스피치·토론대회의 주제는 인성교육진흥법 제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중앙포토]

내년부터 민주적인 학교문화 확산을 위한 ‘민주시민학교’가 운영된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 ‘시민(가칭)’ 과목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를 놓고 교육계 안팎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교육부는 13일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내년에 자문위원회 등을 구성해 전문가와 학교현장의 의견을 담아 민주시민교육의 목표와 기본원칙을 담은 기준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개정되는 교육과정에는 민주시민교육의 내용을 포함한다.  
 
 이와 함께 민주시민교육이 확산될 수 있도록 모범학교 51곳을 민주시민학교로 선정해 지원한다. 학교 1곳당 1000만원과 전문가 컨설팅이 지원된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 초중고에 '시민'(가칭) 과목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교육부는 “민주시민교육은 수동적으로 복종하는 국민이 아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시민을 키우는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교육계 안팎에선 ‘민주시민교육’의 명칭을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사실상 비슷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에선 ‘인성교육’을, 진보에선 ‘민주시민교육’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성향의 한국교총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종전의 인성교육과 달라진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명칭만 민주시민교육으로 바꿔 이념적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총은 특히 “혁신학교가 아닌 학교들이 졸지에 ‘비혁신’ 딱지가 붙은 것처럼 민주시민학교를 지정해 다른 학교들을 ‘비민주적’으로 나누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민주시민교육이 본격적으로 학교 현장에 뿌리를 내린 건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가 경기도교육감으로 있을 때부터다. 2009년 교육감으로 취임한 그는 보조교재로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를 만들고 2013년 3월 민주시민교육과를 독립 부서로 신설했다. 이후엔 학교민주시민교육 조례까지 제정했다. 서울교육청도 2014년 조희연 교육감 취임 직후 민주시민교육과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곳은 대부분 민주시민교육이라는 명칭을 쓰고 해당과를 신설했다.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뉴스1]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뉴스1]

 하지만 같은 시기 보수 진영에선 ‘인성교육’이란 표현이 보편적으로 쓰였다. 2012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인성교육을 근본 해법으로 제시하며 범정부적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한국교총 등 정권에 우호적이던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인성교육실천범국민연합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지고 정부 예산도 투입됐다. 2014년 12월에는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주도로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됐다.
 
 교육감에 따라 이념 성향이 뚜렷한 교육청을 보면 이 같은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강은희 교육감이 있는 대구교육청은 교육과정과 안에 3개의 담당 팀이 있는데 가장 큰 게 창의인성 담당이다. 이 조직엔 1명의 책임 장학관 아래 실무자 7명이 배속돼 있다. 반면 서울과 경기 등 진보 교육감이 있는 교육청은 주로 민주시민교육과가 있다.
 
 심지어 교육부도 지난해 12월 조직개편을 하면서 전에 있던 인성체육예술교육과를 없애고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했다. 조직 개편 당시 교육부는 “중복된 업무를 통폐합해 효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업무 내용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정부에서 인성교육을 담당했던 한 공무원은 “학교 현장에선 이름이 뭐가 됐든 교육 내용은 똑같은데 언제부턴가 ‘인성교육=보수’, ‘민주시민교육=진보’라는 프레임이 생겼다”고 말했다.  
삽화=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삽화=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실제로 보수의 인성교육과 진보의 민주시민교육은 사실상 목적과 내용에 큰 차이가 없다. 인성교육진흥법은 인성교육을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교육”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경기도 조례에 나오는 민주시민 교육의 정의(“민주시민으로서 사회 참여에 필요한 지식, 가치, 태도를 배우고 실천하게 하는 교육”)와 비슷하다.  
 
 전문가도 둘을 크게 구분해 쓰지 않는다. 특히 최근의 인성교육은 과거와 달리 ‘바른 품성’ 뿐 아니라, ‘시민적 역량’을 함께 기르는 것으로 인식된다. 정창우 서울대 윤리학과 교수는 “과거의 인성교육은 도덕과 규범의 측면이 강했지만 최근엔 시민적 인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시민교육이 사회와 공동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인성교육은 내면의 품성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의미”라고 말했다.
 
 물론 나라마다 부르는 명칭은 다르다. 예를 들어 프랑스(Education Civique)와 영국(Civic Education)은 시민교육, 독일은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 미국은 인성교육(Character Education) 등이 주로 쓰인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똑같은 교육 내용을 놓고 두 진영이 서로 다른 표현 방식으로 치열하게 다투는 경우는 드물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단어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프레임 전쟁이 벌어져 교육의 원래 목표가 훼손된다”며 “차라리 영국·프랑스처럼 ‘시민교육’이라는 중립적 표현을 쓰는 게 낫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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