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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컴퓨터가 뭔지도 잘 모르던 70년대…한국인 전공자 찾아 삼만리

한국과학원(KAIS) 설립 초기 ‘스타 교수’도 적지 않았지만, 당시 한국 사정으론 교수 요원 확보 자체가 난제였다. 과학원에선 처음부터 조교수는 박사학위 소지자를, 부교수는 학위 취득 후 최소 3년, 정교수는 7년의 연구 경력을 요구했다. 당시의 한국 과학기술계 인력 사정상 무리한 요구라는 지적도 있었다.  

1973년 제록스가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 알토. 당시 한국에선 컴퓨터를 가르칠 교수도 구하기 힘들었다. [중앙포토]

1973년 제록스가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 알토. 당시 한국에선 컴퓨터를 가르칠 교수도 구하기 힘들었다. [중앙포토]

하지만 과학원 초대 이사장 안동혁(1906~2004년, 53~54년 상공부장관) 박사는 이런 혁신적인 인사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소신 있게 추진하라고 격려하던 안 이사장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안 이사장은 일제 때 경성고공(서울공대 전신) 출신으로 규슈(九州) 제대 응용화학과를 마치고 미국 프린스턴대 화공과에서 수학했다. 해방 뒤 46년 대한화학회 전신인 조선화학회를 창립하고 과학기술 지식 보급에 힘썼으며 57~74년 한양대 교수를 지냈다.  
한양대교수(공대)

한양대교수(공대)

교수 모집 공고를 냈더니 수학 및 물리학과, 전기 및 전자공학과, 화학 및 화학공학과, 재료 및 재료공학과, 기계공학과, 산업공학과, 그리고 생명공학과의 7개 학과에 무려 175명이 지원했다. 하지만 난감한 일이 생겼다. 컴퓨터 공학 전문가를 수학 및 물리학과에 두려고 했는데 지원자가 아예 없었다. 재료공학과와 산업공학과도 비슷한 상황에 부닥쳤다. 특히 산업공학은 당시 개척기라 박사학위 소지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자연과학 분야는 박사학위 소지자가 어느 정도 있었지만, 공학 분야는 드문 문제도 있었다. 전공 분야가 과학원 특성에 맞는 해외 한국인 과학기술자 중에서 귀국해 헌신하겠다는 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77년 4월 열렸던 한국과학자 학술대회. 국내외 과학기술자를 연결해 선진국 연구 성과를 흡수하고 해외 두뇌를 유치하는 행사였다. [중앙포토]

1977년 4월 열렸던 한국과학자 학술대회. 국내외 과학기술자를 연결해 선진국 연구 성과를 흡수하고 해외 두뇌를 유치하는 행사였다. [중앙포토]

난제 중 난제는 컴퓨터 전공 교수를 찾는 일이었다. 컴퓨터는 과학원 초기부터 공통 필수과목으로 지정했을 정도로 중요한 분야였다. 70년 3월 경제기획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공화당 간부들, 장관들을 상대로 과학원 설립안을 브리핑한 직후 박 대통령은 내게 “앞으로 학생들에게 컴퓨터도 가르치고 그럴 건가?”라고 질문했다. 그만큼 당시 컴퓨터는 시대를 선도하는 첨단기술의 대명사였고, 과학기술자를 양성하는 필수 과목이었다.  
1970년대 IBM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선도하는 첨단기술의 대명사였다. [중앙포토]

1970년대 IBM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선도하는 첨단기술의 대명사였다. [중앙포토]

당시 나는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지만 이를 가르칠 마땅한 교수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미시간 대학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 공군기지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일하던 김길창 박사를 찾게 돼 귀국을 설득했다. 김 박사는 과학원 설립 취지를 충분히 이해했고 전공인 컴퓨터가 미래 과학기술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71년 5월 귀국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컴퓨터 전공 분야가 과학원에 신속히 자리 잡도록 최선을 다했다.  
마찬가지로 적임자가 없어 난감했던 산업공학과 주임교수로는 ‘아메리칸 캔 컴퍼니’에서 간부로 일하던 이남기 박사를 찾아 초빙했다. 지금은 산업공학 전문가가 많지만, 그때는 참으로 드물었다. 이 박사와 후임 배도선 주임교수가 애써준 덕분에 과학원 산업공학과는 한국 대학원 과학기술 교육에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결단을 내려준 모든 분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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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