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이상언의 시선] ‘일부’ 검사님들, 조금 민망하지 않습니까?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대부분의 보통 사람에게는 생소하겠지만 검사님들에겐 그렇지 않을 얘기로 시작합니다.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 말입니다. 대학에서 형사소송 절차에 대한 수업 들을 때나 사법시험 준비하며 공부하는 것이라고 여러 검사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이 낯선 용어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쉽게 말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기소)할 때 범죄 사실이 적힌 공소장만 내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형사소송규칙을 보니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나 기타 물건을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고요, 대법원 판례에는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하는 사유를 나열하는 것도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다’고 돼 있네요.

 
짐작하셨겠지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에 대한 얘기입니다. 243쪽이나 되는, 역대 최장이지요. 한때 매일 서울중앙지검으로 출근하며 전날 법원에 접수된 공소장을 봤습니다. 통상 두세 쪽, 길어야 10여 쪽이었습니다. 임 전 차장 공소장을 보니 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 정부의 관계, 위안부 피해자 생존 현황,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노동부 갈등 경위 등 검찰이 주장하는 범죄 행위와 직접 관련돼 있다고 보기 어려운 설명이 잔뜩 적혀 있더군요.

 
지난 10일 첫 공판 때 변호인이 이 문제를 지적하자 검사는 ‘동기’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반박하셨죠. 범행 동기 설명, 필요하죠. 하지만 그것은 재판 과정에서 하면 될 일입니다. 여태껏 검사님들이 그렇게 해 오셨고요. 검찰이 추측하는 사건 배경을 공소장에 적어 판사에게 특정 방향의 심증을 형성하게 하는 것, 바로 그런 일 하지 말라는 게 공소장 일본주의 아닙니까?

 
과거에 이른바 ‘시국사건’에서 검찰이 피고인의 가정환경, ‘의식화’ 과정 등을 공소장에 장황하게 적었죠. 그 관행 때문에 공소장 일본주의가 주목받게 됐고요. 최근 10여 년 새 법원이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를 이유로 여러 차례 공소 기각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모르시지 않을 겁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공소장을 쓴 서울중앙지검 검사님은 ‘사법 농단’ 세력 척결을 바라는 사명감에 불타 그랬다고 치죠. 그 위의 부장검사님, 차장검사님, 지검장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런 특이한 공소장을 그저 보기만 하셨습니까? 하긴, 요즘 위에서 질책하면 일선 검사님들이 “직권남용이다”며 반발할 수도 있겠네요.

 
다음은 ‘계엄 문건’에 대한 얘기입니다. 며칠 전 공안부가 ‘잠정 수사 중단’을 선언하셨죠.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미국에서 귀국하지 않고 도피 행각을 벌여서 수사를 더는 진행할 수 없으니 그가 송환되면 수사를 재개하겠다고 했습니다. 만약 조 전 사령관이 맨몸으로(증거가 될 만한 그 무엇도 지니지 않고) 귀국해 ‘묵비’로 일관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지금까지의 수사 내용에서 달라질 게 없는 것 아닙니까? 다섯 달 동안 해 온 수사에 자신이 있다면 조 전 사령관을 제외한 관련자들을 기소하고, 조 전 사령관에게는 기소중지 처분을 내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통상의 다른 사건과 달리 그렇지가 않으니 “혐의 입증이 안 됐나 보네”라는 말이 나옵니다.

 
고인이 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에 대한 수사도 이상합니다. 세월호 관련 정보 수집·보고가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또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시켜서 한 일 아니냐고 주임 검사님이 물었고,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다음번에 올 때는 잘 생각하고 오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변호인 얘기입니다. 결국 그 ‘다음번’은 영원히 가능하지 않게 됐네요. 군 관련 수사로 불려간 어떤 분은 “김관진 전 장관이 시킨 것 아니냐”는 추궁에 “기억이 안 난다”고 답하자 “논개가 되려고 하느냐”는 말이 돌아왔다고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윗사람이 시킨 일이 아니라고 하면 당신이 책임지게 된다’며 진술을 받아내는 수사,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게다가 이 전 사령관이 조사받을 때 검사님이 극히 사적인 부분을 언급해 당혹해 했다고 하더군요. 고인에게 누가 될 것 같아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인데요, 이런 피의자 압박은 정말 잘못된 수사 아닙니까?

 
문무일 검찰총장님이 11일 간부회의에서 “검찰도 인권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하기에 대검찰청 간부에게 “이 전 사령관 수사 과정이 적절했는지 조사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중앙지검은 사실상 총장의 영(令)이 먹히지 않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중앙지검이 무슨 ‘자치지역’입니까? 제목에 굳이 ‘일부’라고 쓴 것은, 지금 이런 희한한 일을 벌이는 검사님들은 전체 2000명 중 서울중앙지검 특수·공안부 소속 수십 명 정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그곳을 거쳐 간 퇴직 검사님들이 친정 얘기 나오면 한숨부터 쉰다는 것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이상언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