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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산은, 구조조정 하랬더니 돈만 퍼줬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KDB산업은행이 현대상선을 자회사로 편입하기 전인 2016년 5월. 회계 실사를 맡은 삼정회계법인은 고작 그해 연말 실적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이 회계법인은 2016년 말 현대상선의 영업손실은 5507억원에 그칠 것으로 추정했으나, 실제로는 8800억원 적자였다. 당시 실사 결과대로라면 현대상선은 2022년까지 최악의 상황(Worst Case)에서도 5660억원 정도의 현금 부족만 발생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9월 삼일회계법인 실사에선 초대형 선박(20척) 발주 비용 등 현금 부족 예상액이 6조3723억원으로 늘었다. 1조원도 안 되는 혈세로도 충분히 부실을 막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불과 2년여가 지난 현재 6조원 이상 투입해도 정상화를 장담 못 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현대상선·한국GM·금호타이어 …
정책자금 부었지만 정상화 멀어

국민세금 들어가니 정치권 개입
지역민심·노조 눈치에 입지 좁아

산업은행 주도 구조조정 한계
사모펀드가 나설 수 있게 해야

당장 닥친 현안은 한국GM이다. 산업은행은 이달 안에 한국GM에 3억7500만달러(4200억원) 자금 지원을 집행해야 한다. 산은은 지난 5월 GM이 10년간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7억5000만달러(8400억원)의 시설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이미 투입한 3억7500만달러를 뺀 나머지 자금을 올 연말까지 추가로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산은은 한국GM의 연구·개발(R&D)법인 분리 작업과 관련, GM 본사와 소송 중이다.  
 
GM이 R&D 투자에만 집중하면 대규모 생산직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지는 탓에 산은은 법인 분리 작업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요구했지만, GM은 이에 응하지 않고 있어서다. 그동안 ‘외국 기업을 위해 혈세는 썼지만, 일자리를 얻었다’고 설득해 온 산은 입장에선 나머지 자금 지원을 집행하기도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자금을 지원하지 않으면 GM 측이 계약 파기를 이유로 한국 철수를 선언할 수도 있다. ‘외통수’에 갇힌 것이다.
 
산업은행

산업은행

산업은행이 주도한 산업 구조조정이 잇따라 파열음을 내고 있다. 현대상선은 예상치도 못한 대규모 정책자금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GM은 자금을 지원한 뒤에도 한국 철수를 또다시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여기에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막 ‘중환자실’에서 ‘회복실’로 넘어갔지만, 벌써 자구안으로 내놓은 인적 구조조정 계획을 단행하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올해 4월 중국 더블스타에 매각된 금호타이어도 연말 희망퇴직을 추진하는 등 경영 정상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부실 기업 정상화는 더딘 가운데, 이들과 경쟁하는 다른 기업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조선·해운업 등 취약 산업 전체로 위기가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힘든 상황에서 국가 지원을 받는 기업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불만이다. 지난해 11월 해외 석유·가스 전문지 업스트림은 대우조선이 러시아 북쪽 바렌츠해에 설치되는 FPSO(부유식 원유 생산 저장 설비) 계약에서 삼성·현대중공업에 비해 1억 달러(1100억원)가량 낮은 가격에 입찰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 보도를 예로 들며 “대우조선이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저가 입찰’에 들어오다 보니,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조선업체만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 일각에선 그동안 산업 구조조정의 핵심 역할을 해 온 산은의 역량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모펀드(PEF) 등 민간 자본시장이 성숙해 있지 못하다 보니, 산은이 구조조정 기업을 계속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민간 종합병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군 의무대에만 중환자가 몰리는 꼴이다.
 
민간 자본시장과 달리 산은이 집행하는 정책자금은 결국 국민 세금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의 입김’이 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하게 된다. 현대상선·대우조선 등 산은이 주도한 부실기업 회계 실사 결과가 실사를 할 때마다 달라지는 배경에도 정치 논리가 개입된다는 지적도 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산은은 관료를, 관료는 정치권을, 정치권은 지역 민심과 노동조합 등을 의식하다 보니, 산은에 일감을 받아 실사 업무를 하는 회계법인마저 여론에 휘둘리게 된다”며 “혈세를 조금만 투입해도 부실기업이 살아날 것이란 장밋빛 실사보고서가 종종 나오게 되는 이유”라고 귀띔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실적 부진에 빠진 현대상선에 저성과 임직원 퇴출을 주문했다. [연합뉴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실적 부진에 빠진 현대상선에 저성과 임직원 퇴출을 주문했다. [연합뉴스]

산은은 또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부실기업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도 봉착하게 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최근 현대상선에 저성과 임직원 퇴출을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자동차·조선 등 취약 업종에 대한 국책은행의 적극적인 자금 공급을 주문했다. 정부는 해당 기관에는 대출 손실에 대한 ‘면책 특권’까지 부여하면서 부실기업에 대한 정책자금 지원을 유도하고 있다.
 
민간 자본에 매각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겪기보다 국책은행 관리로 편입되는 것이 직업 안정성 측면에서도 유리한 까닭에, 부실 대기업 노동조합은 더욱 강경 투쟁 양상을 띠게 된다. 노조는 파산을 걱정하기보다 “산업은행이 책임지라”는 구호를 외치게 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산업은행 관계자는 “민간 사모펀드는 가위로 오려내듯 기업 부실을 도려내는 구조조정을 하지만, 산은은 기관 특성상 이런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어렵다”며 “인적 구조조정을 강하게 진행하면 당장 노조와 정치권 반발에 부닥치게 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자금 흐름만이 아니라 영업력·기술력 강화 등 사업 구조조정도 중요해진 장기 불황 국면에선 국책은행 중심 구조조정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또 지역 민심을 악화시키는 대량 실업 문제도 국책은행이 부실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해결하기보다는 직접적인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책 방향을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업 구조조정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은행 주도 구조조정은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평가된다”며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자본이 함께 조성한 ‘기업구조혁신펀드’를 마중물로 투입한 뒤 민간투자자의 관심을 높여 나가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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