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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귀한 곰 천한 곰

강주안 사회에디터

강주안 사회에디터

곰에도 귀천이 있다. RF23은 고귀하고, 원주55는 미천하다. RF23은 지리산에 풀어준 러시아산 반달가슴곰이고, 원주55는 한국에서 태어난 사육용 반달가슴곰이다. 정부는 RF23과 동료 반달곰 55마리가 번성하길 빌지만, 원주55를 비롯한 540마리의 사육곰은 도축돼 웅담을 내놓거나 좁은 우리 안에서 명이 끊어져 이 땅에서 멸절되기를 기다린다.

 
반달곰의 극과 극 운명은 1980년대에 싹텄다. 83년 설악산에서 밀렵꾼 총에 맞은 반달곰이 죽었다. 생존 야생곰 찾기에 나섰고 2001년 외국서 곰을 들여와 방사하기 시작했다. 이젠 56마리로 늘었다.

 
사육곰의 비극은 2년 앞선 81년 시작됐다. 농가 소득을 올린다며 외국서 들여왔다. 곰 농장이 늘었지만 93년 우리나라가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국제간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수출길이 막혔다. 대놓고 웅담을 팔기도 어려워졌다. 2012~14년에는 더 이상 번식을 못 하도록 중성화 수술을 했다. 이제 사육곰은 철창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린다.

 
사육 환경이 궁금해 지난달 강원도의 곰 농장을 찾아갔다. 외딴 산속에 있으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주택가 바로 옆에 철제 우리가 보였고 330㎡(약 100평) 정도 되는 공간에 21마리가 살고 있다. 곰 사육장 앞뒤를 개들이 지키고 있지만 곰이 우리에서 빠져나와 공격하면 일격에 나가떨어질 게 분명하다.

강원도의 사육곰 농장. 바로 옆에 주택가가 있다.

강원도의 사육곰 농장. 바로 옆에 주택가가 있다.

 
농장 주인과 함께 사육장을 둘러봤다. 커다란 곰들이 주인의 손을 핥는 모습이 강아지 같았다. 10㎡(약 3평)도 안 돼 보이는 우리에서 두 마리가 수명이 다할 때까지 25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주인을 잘 따르니 목줄을 묶어 가끔 산책이라도 시켜줄 순 없을까 하는 생각 끝에 6년 전 JTBC 사회2부장 때의 아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사육곰 이슈가 불거져 메인뉴스에 곰을 출연시키기로 했다. 농가에서 6개월 된 새끼곰 두 마리를 스튜디오에 데려왔다. 반려견 만한 아기곰에 목줄을 걸고 다니는 데 힘이 장사였다. 발톱을 세워 바닥을 움켜쥐니 아무리 용을 써도 끌려오지 않았다. 한 녀석이 1억원 넘는 대형 스크린으로 돌진할 때엔 ‘차라리 나를 물어라’ 하는 심정으로 몸을 날려 가로막기도 했다. 새끼가 그 정도니 어른 곰이야 오죽하랴. 곰은 시속 50㎞로 달리고 나무도 잘 탄다. 하지만 사육곰은 평생 달려보지도, 나무에 오르지도 못한다.

 
2012년 JTBC 메인뉴스에 출연할 당시의 아기곰

2012년 JTBC 메인뉴스에 출연할 당시의 아기곰

외국곰을 들여와 방사하는 마당에 사육곰을 지리산에 놓아주면 안 될까. 환경부는 안된다고 했다. 복원곰은 아무르지역 서식종(Ursus thibetanus ussuricus)인데 사육곰은 일본종(Ursus thibetanus japonicus) 등 혈통이 조금 다르다. 사육곰 가슴에 새겨진 하얀 반달이 처연해 보인다.

 
죽는 날까지 고통이라도 덜어주자는 인지상정이 모여 작은 변화를 만들었다. 지난 7일 녹색연합이 시민 모금을 통해 강원도의 농장에서 곰 세 마리를 사서 청주와 전주동물원에 보냈다. 이들은 조금 더 넓은 우리에서 쓸개를 지키며 여생을 보내게 됐다. 이제 537마리가 남아있다.

 
영국에서 동물복지학을 공부한 최태규 수의사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넓은 땅에 피난처를 조성해 사육곰들을 수용하자는 운동이다. 최씨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선 정부가 곰을 농장에서 구출해 국립공원 내 피난처에 풀어준다”며 “곰은 정부 소유지만 운영은 시민단체가 맡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도 곰 복원 현장인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 커다란 피난처를 만들고 정부가 사육곰을 사서 풀어주면 어떨까. 100여 마리의 곰이 살고 있는 일본 노보리베츠 곰 목장이나 스위스 도심의 베른 곰 공원은 관광 명소다.

 
이런 가능성을 알아봤으나 어려워 보였다. 복원곰과 사육곰은 둘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에서 맡고 있지만 담당자가 달랐다. 사육곰 담당자는 복원곰에 대해서 잘 모르고, 복원곰 담당자는 사육곰 질문에 답을 제대로 못 했다. 그러니 곰 복원 공간에 사육곰을 보내는 아이디어는 공직사회 구조상 난망하다. 따지고 보면 학교에서 단군신화를 가르치면서 농장에선 쓸개를 빼먹게 하는 모순도 같은 차원일지 모른다. 웅녀는 교육부 소관이지만 웅담은 환경부 관할이다.

 
사육곰은 전두환 정부 시절 들여와서 김영삼 정부 때 해외 진출이 막혔고 박근혜 정부에서 불임시술을 했으니 보수정권의 적폐라는 딱지라도 붙여보고 싶다. 그렇게 하면 문재인 정부가 청산해줄 수 있지 않을까. 복원곰들이 쓰는 1년 예산 17억원은 새끼 사육곰 340마리 값이다. 관련 부처가 협력하면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곰 세 마리가 전주와 청주의 새집으로 이사하는 사이 사육곰이 하나둘 동면에 들어갔다. 잠에서 깰 내년 봄까지 꿈속에서라도 산과 들을 달리고 아름드리나무에도 한껏 올라가 보기 바란다. 그리고 다음 세상에선 한국이 아니라 캄보디아나 베트남처럼 곰의 복지를 더 잘 챙겨주는 나라에서 태어나길 빈다.
 
강주안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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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