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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장애아라는 이유로…18년 만에 집에 돌아온 내 동생

장혜영 감독은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 언니’로도 활동중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혜영 감독은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 언니’로도 활동중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누군가 열세 살의 나한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제 가족들과 떨어져 외딴 산꼭대기 건물에서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살아야 해. 그게 가족의 결정이고 너에게 거부할 권리는 없어. 네가 장애를 타고났기 때문에.”
 
13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에서 장혜영(31) 감독은 한 살 어린 동생 혜정씨의 삶을 이렇게 돌이킨다. 중증발달장애를 타고난 혜정씨는 꼬박 18년을 장애인 시설에서 살다 지난해 다시 사회로 나왔다. 세 자매 중 둘째 장 감독과 함께 살게 되면서다.
 
이번 영화엔 1년의 준비 끝에 지난해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의 첫 6개월을 담았다. 미뤄온 소원을 이루듯 신나게 세상을 흡수하는 혜정씨의 흥 덕분일까. 자매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 듯 찍은 영화는 의외로 밝은 분위기다. 장애에 대한 통념에 허를 찌르는 대목도 많다.
 
개봉에 앞서 만난 장 감독은 “동생 스스로 동생의 삶을 선택한 적 없다는 걸 시간이 흐르고야 깨달았다”며 “내 한 몸 책임질 자신도 없다는 현실적 두려움이 있었지만, 동생에게 벌어진 일들을 보며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동생 혜정씨와 함께 노래하는 모습. [사진 시네마달]

동생 혜정씨와 함께 노래하는 모습. [사진 시네마달]

무슨 일이 있었나.
“동생이 있던 시설에서 상습적인 인권침해가 2016년 내부고발로 드러났다. 더 큰 충격은 증거가 있음에도 여러 부모님들이 공론화를 원치 않았단 사실이다. 문제 삼으면 갈 곳이 없다, 집에 돌아와도 돌볼 여력이 없다고 말이다. 장애를 이유로 사회에서 격리된 사람들의 인권 추락엔 바닥이 없었다.”
 
다른 가족의 도움은.
“동생을 시설에 보내고 얼마 안돼 부모님이 이혼했다. 저는 조부모님 댁에 갔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 사회에선 장애인 돌봄이 가족, 특히 어머니에게 오롯이 부과된다. 네가 문제 있어서 장애아를 낳은 게 아니냐며 죄인으로 만드는 시선이 있다. 저희 어머니는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의학으로 낫는 질병이 아니란 걸 알곤 종교적 기적을 바라셨다. 역설적으로 부모님은 늘 바쁘시고 저희끼리 놀다 보니 무척 가까운 자매가 됐다. 어떤 사람과도 즐겁게 지내고, 자유로운 동생은 제 스승이기도 하다. 저로선 다시 함께 살게 된 지금 비로소 저다운 삶으로 돌아간 것 같다.”
 
그는 “동생이 없을 땐, 누군가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을 이유로 이렇게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다면 나의 삶 역시 내 것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최소한 경제적으로 딸들을 건사하려 노력했던 아버지께 자랑 한 마디라도 됐으면 좋겠다”며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던 그는 정상에 가까워져도 행복을 장담할 수 없는 무한 경쟁 풍토가 의미 없이 느껴졌다. 4학년이던 2011년 자퇴하면서 써붙인 ‘공개 이별 선언문’이란 대자보는 세간에 화제가 됐다. 그는 “명문대 졸업장을 따려고 1년 더 다니느니 그만둘 용기를 냈다”면서 “이후 제 인생은 하기 싫은 걸 안 하는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왔다”고 회상했다.
 
영화 제목은 동생의 말에서 따왔다. “혜정은 뭔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을 때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고 내게 물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그 말을 들어왔을까. 아무도 자신과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계속 바라고 새로운 약속을 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연출의 글에서)
 
자퇴 후 동생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 그는 시설을 집이라 여겨온 동생에게 함께 살자고 ‘구애’했다. 디즈니 만화를 좋아하는 동생과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로 첫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영화엔 혜정씨가 언니 없이 여러 친구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모습들도 나온다. 감독은 “중증발달장애인도 이렇듯 격리하지 않고 같이 살면 잘 살아진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꿈꾸는 미래는 영화 속 자작곡에도 나온다. 둘이서 무사히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것. “아직 우리 둘의 삶을 지탱하는 건 제가 잡고 있는 균형이죠. 인생을 걸고 버티고 있어요. 지금처럼 혜정에게 아끼는 친구들이 점점 많아져 튼튼한 보호막이 돼주면 좋겠어요. 이런 영화를 저처럼 사시라고 찍은 건 절대 아니고 제 나름대로 세상에 던진 질문이죠.”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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