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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인싸] “남성억압적” 여성폭력방지법에 반발하는 남성들, 왜?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여성폭력’ 이래 버리면 아마 일단의 남성커뮤니티에서 또다시 논의를 제기할 우려가 있어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지난 9월 12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한 말입니다. 대충 무슨 얘기를 할 지 감이 오시나요? 네, 최근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하 여폭방지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폭방지법은 소관 상임위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됐습니다.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 날인 지난 7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회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날 여성폭력방지기본법도 최종 의결됐다. [연합뉴스]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 날인 지난 7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회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날 여성폭력방지기본법도 최종 의결됐다. [연합뉴스]

표 의원의 예언은 적중했습니다. 여폭방지법이 통과되자 MLB파크·오늘의유머·일간베스트 등 남성 중심의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좌우 성향을 막론하고 강한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자한테 반복적으로 문자·전화하거나, 집 앞에서 기다리는 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 “네이버나 유튜브에서 ‘페미’ ‘메갈’이라며 여성혐오해도 법에 걸린다” “남성억압적이고,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법이다” “이 법 시행되면 대한민국 남자들 다 죽었다고 봐야 한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이 법이 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길래 이런 반응이 나올까요? 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여폭방지법은 ▶여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지원에 관한 국가 책임을 명백히 하며 ▶여성폭력방지정책의 종합적·체계적 추진을 규정한 신규 법안입니다. ‘여성폭력’을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정의하고, 구체적으로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 등으로 규정했습니다. 기존 형법이나 성폭력처벌법에서 규정하지 못한 데이트 폭력, 스토킹, 불법 촬영물 유포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입니다.

 
지난 6일 오전 국회 본청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 발대식 및 1차 업무보고에서 정춘숙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오전 국회 본청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 발대식 및 1차 업무보고에서 정춘숙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처벌대상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한정했다는 점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남성에 대한 폭력·성희롱 등을 법안에서 아예 제외해, 여성의 남성혐오·약자혐오 범죄에 면죄부를 주었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글이 다수 올라온 이유입니다. 당초 정 의원이 발의안 원안에는 ‘성별에 기반한 폭력’으로 돼 있던 것이 법사위 심의 과정에서 바뀐 것인데요. 정 의원과 여성가족부는 법안 심사가 진행되는 내내 “소수의 피해자인 남성까지 포괄할 수 있는 부분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여야 법사위원들은 토론과정에서 “입법 발의의 취지와 ‘여성’이란 단어만 포함한 법 이름을 고려할 때 우선 여성 피해자에 한정하는 것이 법 체계상 맞다”며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당시 법안 심사에 참여했던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남성에 대한 가정폭력·성폭력·성희롱 등은 현행 형법이나 관계법령으로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젊은 남성들 사이에선 “남자가 여자를 때리면 처벌받고, 여자가 남자를 때리는 건 문제가 없단 말이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젊은 남성일 수록 ‘남성=강자, 여성=약자’라는 도식을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이죠. 여성폭력의 범주에 성매매를 포함시킨 것도 비판의 대상입니다. 요즘 세상에 성매매가 대부분 상호합의에 의한 것이지 폭력에 의한 성매매가 얼마나 되냐는 거지요.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0월 18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및 디지털 성범죄 근절 추진 협의회'를 주재하면서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미투와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의 조속한 제·개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0월 18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및 디지털 성범죄 근절 추진 협의회'를 주재하면서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미투와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의 조속한 제·개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여성계도 여성계대로 “애당초 법안 취지보다 후퇴한 내용”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는데요. 국가·지방자치단체의 피해자 지원에 필요한 경비 지원 조항이 역시 법사위 심의 과정에서 의무조항(‘지원한다’)이 아닌 임의조항(‘지원할 수 있다’)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지자체에 여성폭력 예방교육 책무를 부과하는 19조에서도 의무조항이 임의조항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에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지난 5일 “누구나 젠더에 기반한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누구도 피해자 지원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한편 트랜스젠더(성전환자) 등 성소수자들은 원안의 ‘성평등’ 문구가 ‘양성평등’으로 바뀐 것에 대해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또 다른 폭력”이라고 반발합니다. 이들은 법 제정의 혜택이 생물학적 여성에게만 돌아간다는 점을 들면서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죠.
 
여폭방지법의 경우 새로 제정된 법이라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 하위 법령을 마련하는 데까지 꽤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대통령 공포 이후 1년이 지난 다음에 시행되도록 했습니다. 여가부는 이 기간에 충분히 보완책을 만들겠다는 입장입니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 등 끔찍한 강력범죄로 대두한 ‘성별에 기반한 폭력 방지’에 반대할 이는 없을 것입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법 제정 목적에 대해 여야 이견이 없었던 것처럼요. 그러나 자칫 성(性) 대결로 불똥이 튈 수 있는 일각의 우려를 정부·국회에서 신중하게 수용하지 못한다면 없느니만 못한 법이 될 수도 있겠죠. 앞으로 정부와 정치권의 후속 논의를 눈여겨 봐야겠습니다.
 
이 법을 대표발의한 민주당 정춘숙 의원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 [뉴스1]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 [뉴스1]

여폭방지법은 남성 처벌을 위한 게 아닙니다. 여성폭력을 방지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려는 게 주목적입니다. 그동안 가정폭력·성폭력·성희롱 등이 개별법으로 규정돼 있어 하지 못한 여성폭력에 대한 기본 통계를 국가가 작성토록 하고, 그에 따른 예방교육을 실시할 근거를 만든 게 핵심이죠.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생물학적 여성에게만 한정하도록 수정된 것은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법명도 젠더폭력방지기본법으로 하려고 했는데, 젠더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은 어려워서 바꿨습니다. 법안에서 ‘여성폭력’으로 정의한 범죄 피해자들의 80% 이상이 여성인 점을 감안한 것이지, 다른 성별 피해자들을 제외하자는 게 아닙니다. 현장에서 제기되는 의견을 모아 법 시행 전까지 개정안을 낼 생각입니다.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란 정의를 원안과 같이 ‘성별에 기반한 폭력’으로 고치는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가장 눈 여겨 봐주셨으면 하는 점은 처음으로 국가가 여성폭력에 대한 기본 통계를 작성하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여성폭력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2차 피해를 ▶수사·재판·보호·진료 과정에서 입는 사후 피해 ▶집단 따돌림, 폭행·폭언 등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일으키는 행위 ▶폭력 피해 신고 등을 이유로 사용자로부터 입은 불이익 ▶언론 보도와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피해 등으로 처음 법제화한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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