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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백색전화가 집 한채 값이던 70년대 … 인도에 가서 무릎을 탁 쳤다

1970년대 초 ‘과학기술 정책수단(STPI)’ 10개국 공동 연구 도중 관심이 갔던 것 중의 하나가 정보통신기술(ICT)이었다. 당시 열악하기 짝이 없던 한국의 통신 사정이 배경이었다. 당시 전화는 개인 소유인 백색전화와 우체국 소유의 임대 전화인 청색전화로 구분됐다. 백색전화만 사고팔고 할 수 있었는데 한 대 가격이 웬만한 서민 주택 한 채 값과 맞먹을 정도였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로 큰돈을 들여 백색전화를 사서 쓸 수밖에 없었다. 매매할 수 없는 청색전화는 우체국에 신청하면 설치해줬는데 보통 2~3년은 족히 기다려야 했다.  

2015년 9월 열린 대한민국 통신 130주년 특별 전시회에서 이용경 전 KT 사장이 1980년대 개발한 TDX-1 전자식 교환기를 살펴보고 있다. TDX 개발은 고질적인 전화 적체를 해소했을 뿐 아니라 정보통신(IT) 산업을 진흥했다. [중앙포토]

2015년 9월 열린 대한민국 통신 130주년 특별 전시회에서 이용경 전 KT 사장이 1980년대 개발한 TDX-1 전자식 교환기를 살펴보고 있다. TDX 개발은 고질적인 전화 적체를 해소했을 뿐 아니라 정보통신(IT) 산업을 진흥했다. [중앙포토]

이런 부족 현상이 생긴 가장 큰 이유는 전화 회선 수요보다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화 회선을 공급하려면 먼저 전화국에 교환기를 추가로 설치해야 했는데 당시 기술 부족으로 교환기를 국내에선 제조할 수 없었다. 당시 사용했던 크로스바식 교환기는 복잡한 기계 부품으로 이뤄져 국산화를 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전량 수입해야 했는데 보유 외화가 넉넉하지 않아 물량 확보가 어려웠다. 경제가 낙후하고 기술력도 빈약해 전화조차 맘대로 놓지 못했던 개발도상국의 설움이었다.  
그런데 STPI 10개국 공동 연구를 위해 다른 참가국을 상호 방문해 여러 기술을 살펴보다 인도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70년대 초반 뉴델리 STPI 회의에 참석했다가 현지 전자공학자들이 선진국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전자식 전자교환기를 자체 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뉴델리의 전자통신연구소를 찾아 가보니 반도체를 이용해 전자식 교환기를 제작하고 있었다. 이를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은 STPI 연구의 큰 수확이었다.  
그걸 보면서 “한국에서도 전자식 교환기 시스템을 개발하면 전화 적체 문제를 해결하고 통신 관련 산업도 키울 수 있겠구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으로 일하던 김재익 박사의 집으로 찾아가 “한국도 전자식 전화 교환기 개발팀을 육성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그날 밤 우리 두 사람은 기술 개발을 통해 한국 전자통신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미래 기술 강국으로 가는 방안을 놓고 밤새 대화를 나눴다.  
고 김재익 박사(오른쪽에서 둘째)의 1977년 가족 사진. 김 박사는 80년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일하면서 기술개발 투자를 통해 한국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의 초석을 놓았다. [중앙포토]

고 김재익 박사(오른쪽에서 둘째)의 1977년 가족 사진. 김 박사는 80년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일하면서 기술개발 투자를 통해 한국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의 초석을 놓았다. [중앙포토]

80년 9월 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에 임명된 김 박사는 취임하자마자 ‘시분할 전전자교환기(TDX)’ 개발 작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78년 한국통신기술연구소(85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로 개편)가 개발을 시작한 TDX는 80년대에 날개를 달았다. 81년부터 1500억원의 연구비를 투입해 82년 세계 다섯째로 전자 교환기 고유모델인 TDX를 개발하고 86년 실용화를 이뤘으며 98년까지 개량을 위한 연구개발이 계속됐다. TDX 도입 이후 전화기를 신청하면 1주일 안에 설치됐다. 이로써 백색·청색 전화라는 말이 사라지고 80년대 이후 한국의 통신과 정보기술(IT) 산업 발전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전기가 마련됐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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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