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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색] ‘섞인 피’는 옳지 않다는 순혈주의의 그늘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장안의 화제라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여러 번 “파키 보이(인도 녀석)”라는 놀림을 받는다. 영화의 배경인 영국, 한때 제국이었던 나라에서 파키 보이라는 경멸의 언어는 과거 식민지였던 인도 출신을 비하하는 말이다. 우리를 보고 ‘조센징’이라 하거나 일본인에게 ‘쪽바리’라고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심한 말이라고 한다. 파키 보이는 1970년대 영국 일반인의 유색 피부에 대한 인종주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근래 보기 드물게 관객의 향수를 자아낸다는 영화답게 관객들은 떼창을 부르거나, 속으로 흥얼거리며 프레디의 감정에 몰입한다. 주인공의 감정 기복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감정에 이입되어 때로는 모멸감에, 때로는 자괴감과 절망에 젖는다. 파키 보이 역시 마찬가지다. 뒤에 인도로 이주해 뭄바이에서 학교에 다니기는 했지만 본디 탄자니아(잔지바르)에서 태어난 페르시아계 혈통인 프레디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는 한국의 관객들은 인종주의적 경멸을 한 마디로 압축한 파키 보이라는 말에 같이 분개했다. 하지만 마치 면전에서 파키 보이라는 소릴 들은 듯한 불쾌감은 우리 스스로 프레디 머큐리와 동일시한 데서 온 것이다. 주인공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다.
 
얼마 전 인천의 한 건물에서 폭력에 쫓겨 떨어져 죽은 14살 아이는 평소 러시아계라고 놀림을 받았다. 파키 보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 죽음에 이르도록 폭력을 휘두른 14, 15살 동년배 아이들은 이미 ‘우리’와 ‘우리 아닌 이’를 구별 짓는 이분법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우리와 우리 아닌 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여기서 핏줄이었다. 아이들의 일이니 쉽게 재단할 수는 없지만 인종주의의 내면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순혈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부정하겠지만 우리는 혈통을 따진다. ‘순수한 피’는 옳은 것이고, ‘섞인 피’는 옳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피의 순결성에 따른 평가를 한다. 순수한 피가 어디 있고, 순수하지 않은 피가 어디 있으며, 피에, 혹은 핏줄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는가? 생물학적으로, 인종적으로, 아니 물질적으로도 피는 아무 잘못이 없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핏줄, 혈통만이 문제도 아니다. 생김새가 다르거나 피부 색깔이 달라도 주목을 받는다. 동남아시아, 남아시아에서 온 노동 이주민이나 결혼 이주민에게도 차별적인 언사가 쏟아진다. 프란츠 파농은 백인의 언어, 백인의 문화, 백인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검은 피부의 사람들을 들어 정신적, 물질적 탈식민을 주장하고, 하얀 가면은 스스로를 백인과 동일시하려는 유색인종의 열등의식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식민시대를 벗어난 지 70여년이나 지난 한국에서 여전히 혈통주의에 입각한 폭력적 인종주의를 목격한다. 심지어 제국이었던 적도 없는 나라에서 마치 황색 피부에 백색 가면을 쓴 것처럼 제국의 언어인 인종주의가 내면화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혈통과 피부색은 그렇다 치자. 단일문화, 문화순혈주의도 있다. 우리 모두가 단군의 자손, 단일민족이라는 이념이 뿌리 깊게 각인된 까닭에 한국인들은 문화순혈주의를 따르고 우리 것, 우리 문화를 “옳은 것”이라 여긴다. 사람들의 생활양식이자 규범으로서의 문화에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 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게 진실이냐 아니냐는 논쟁할 필요도 없다. 고려시대만 보더라도 거란, 여진, 몽골은 물론이고 위구르와 베트남에서까지 귀화했다. 사서에 나오는 인원만도 수천 명이 고려로 귀화해 정착했으니 우리가 단일민족이라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고려가요 가운데 하나인 ‘쌍화점’은 “쌍화점에 쌍화  사러갔더니  회회아비, 내 손목을 잡더라”며, 아랍계 색목인 회회아비를 말한다. 노래에 나올 만큼 예성강 하류 벽란도에 이슬람 상인들이 대거 들어와 살고 있었단 증거다. 이민족들의 귀화는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1910년대 민족주의자들은 단군의 배달민족을 여진과 거란, 몽골을 아우르는 큰 개념으로 쓰기도 했지만, 곧 단군신화는 단일민족을 강조하여 민족적 일체감과 동질성을 고양시켜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단일문화를 우월하게 여기는 민족주의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른 전후 복구와 경제성장의 국민동원에도 활용됐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세계화 물결 속에 국제결혼에 의한 다문화 가정과 이주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순혈주의는 타자와 더불어 살기를 방해하는 장애가 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병역 의무를 다하고 곳곳에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도, 순혈주의의 그늘은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다.    
 
다문화사회는 구호로 될 일이 아니다. 남과 나를 구별 짓는 배타성에서 벗어나 타자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노래를 따라 부르고 가사를 외운다고 해서 프레디 머큐리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물리적, 언어적 폭력에 시들어갈 수많은 프레디들을 구할 수 있다. 우리 사회 다문화 시민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경청할 시간이다.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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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