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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이재수 “60평생 잘 살다 갑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내일 아침 삼성병원에서 장례가 치러질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유서는 “60평생 잘 살다가 갑니다”로 마무리된다. 검찰 수사로 고통받다 투신한 사람의 참 반듯하고 여유감마저 묻어나는 언어 사용법이다. 유서의 언어는 절제됐지만 11월 27일 검찰 조사(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김성훈 부장검사·천재인 담당검사)에서 12월 7일 투신자살까지 이재수의 심장엔 억울함과 분노, 수치심과 미안함, 두려움과 희생정신이 교차했다.
 

“세월호 사찰” 돌팔매 죽음으로 항변
김관진 겨냥 검찰엔 “내가 안고 간다”

죽음 한두 시간 전까지 이재수와 대화를 나눴던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국군기무사가 세월호 희생자의 가족을 사찰했다”는 돌팔매를 가장 견디기 어려워했다. 억울함과 분노를 죽음으로 항변했다. 그래서일 것이다. 유서는 “세월호 사고 시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은 정말로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음. 5년이 지나 그때의 일을 사찰로 단죄하다니 안타깝다”로 시작된다.
 
2014년 봄 세월호 해난 구조엔 육·해·공군과 해병대 전 군(軍)이 동원됐다. 180일 수색 기간 동안 연병력 36만 명이 참여했고 투입된 크고 작은 군 장비가 1만2000대였다. 실제 상황 속에 진행된 거대한 군사 작전이다. 이런 규모의 작전에는 기무사가 해야 할 기본 임무가 있다. 실시간 현장 파악, 군과 민간 간에 이뤄지는 대화 청취, 민간의 심리와 불만·요구·제언 등을 수집해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런 정보가 있어야 국군 통수권자로서 군을 통제, 지휘할 수 있다. 사고 수습 뒤 투명하게 백서를 남겨 앞날을 대비케 한 것도 잘한 일이었다. 백서에 등장하는 ‘동향’ ‘동정’ 같은 정보기관 용어가 뒤에 사찰의 증거로 둔갑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세월호와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진보 정권이라는 이유로 기무사가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면 업무태만, 직무유기가 된다. 기무사설치령상 사령관이 청와대에 직보할 의무는 없지만 국가 대란이라면 기무사가 안보실장이나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재수는 기무사령관의 임무라고 굳게 믿었던 업무가 세상이 바뀌면서 어느 순간 사찰·적폐·반역으로 단죄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저 잔인한 정치보복으로만 느껴졌다.
 
이재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두 번째 심리는 수치심과 미안함이었다. 젊은 검사가 유죄 확정은커녕 구속도 안 된 자신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등 ‘대한민국 장군’에게 했던 모욕적인 언행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검찰은 유죄의 증거를 확보한다며 이재수의 아들 집과 그가 사외이사로 있는 친구 박지만씨 회사의 사무실까지 압수수색했다. 아들과 친구에게 미안했다. 이재수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한 점 부끄럼 없었다”면서도 “여러 사람에게 미안”하다거나 “가족, 친지, 성원해 준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하며 용서를 구한다” “군을 사랑했던 선후배 동료들께 누를 끼쳐 죄송하다”고 한 표현들이 저간의 사정을 담았다.
 
세 번째는 두려움과 희생정신이었다. 이재수는 검찰이 진상 규명보다 수사의 최종 타깃을 미리 정해 놓고 과녁에 맞을 때까지 끊임없이 괴롭힐 것 같다는 불안감을 토로했다. 지인들에게 검찰이 김관진 전 국방장관 겸 안보실장의 구속을 목표물로 삼는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살짝 한 발만 삐끗해도 애꿎은 사람 여럿 다칠 수 있겠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재수는 “내가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거로 하고 모두에게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고 검찰한테 간곡하게 부탁한다. 유서의 압권이다. 자기를 희생해 남을 살리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생각한 듯하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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