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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사진 찍는 영국 작가 “달빛이 선생이다”

대런 아몬드는 ’사진을 찍을 때 항상 자연 풍경 그 너머를 생각한다. 풍경 너머 무한히 텅 빈 공간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풀문’ 사진 연작(Fullmoon@Baltic, 2015, 121.2x121.2㎝). [사진 PKM갤러리]

대런 아몬드는 ’사진을 찍을 때 항상 자연 풍경 그 너머를 생각한다. 풍경 너머 무한히 텅 빈 공간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풀문’ 사진 연작(Fullmoon@Baltic, 2015, 121.2x121.2㎝). [사진 PKM갤러리]

 
 

대런 아몬드 8년 만의 한국 개인전
보름달 빛 아래 풍경사진 20여년
렌즈 15~20분 열어놓고 기다려

낮에는 볼 수 없는 바다·나무·강물
“자연은 밤에 진정한 모습 드러내”
거울과 숫자 활용한 새 설치작품도

대런 아몬드, ‘풀문’ 사진 연작(Fullmoon@Baltic, 2015, 121.2x121.2㎝). [사진 PKM갤러리]

대런 아몬드, ‘풀문’ 사진 연작(Fullmoon@Baltic, 2015, 121.2x121.2㎝). [사진 PKM갤러리]

 
‘빛 공해’(light pollution). 필요 이상의 인공조명이 일으키는 공해를 말한다. 밤에도 대낮처럼 환한 도시에 살다가 문득 시골을 방문해 낯선 달빛과 별빛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동안 여기저기 차고 넘치는 빛 때문에 우리가 놓치고 보지 못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
 
영국 출신의 작가 대런 아몬드(Darren Almond, 47)는 지난 20년간 보름달을 쫓아다녔다. 달빛만으로 풍경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보름달 뜨는 날이면 카메라를 들고 밤바다를 찾았고, 자신의 발걸음 소리만 서걱서걱 들리는 숲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는 순간 포착에 매달리지 않았다. 카메라 렌즈를 15~20분 정도 열어놓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20년 전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 근처에 갔을 때 밤하늘의 보름달을 봤어요. 그때 문득 달빛만으로 풍경을 찍었는데 나중에 인화지를 뽑아보고 많이 놀랐죠. 사진이 마치 대낮에 찍은 것처럼 나왔거든요. ”
 
보름달이 어루만지고 간 밤의 풍경은 그에게 또 다른 세상을 드러내 주었다. 격렬했던 파도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폭포는 안개가 되고, 강물 표면은 비단처럼 매끄러웠다.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그는 “오래 기다리면 자연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밤의 풍경을 보여준다”며 “그것은 인공조명으로 오염된 모습보다 훨씬 흥미롭고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시간·빛·기억
한국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도 그의 풀문 연작은 빠지지 않았다. 그중 하나인 ‘안개 바다 위에(Above the Sea of Fog)’는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그림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에서 영감을 받았다. 아몬드는 “달의 움직임은 제가 자연 풍경을 탐구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했다”며 “작업 초반에 영국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1775~1851), 프리드리히, 네덜란드 화가 필립 코닝크(1619~1688)의 작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몬드는 이번 개인전에 ’풀문‘ 사진 작품과 더불어 최근 매달리고 있는 설치작품 ‘거울 회화(Reflection Within)’ 연작도 내놨다. 거울과 숫자로 구성한 이 작품들은 언뜻 보면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여겨질 정도로 이전 사진 작업과는 꽤 달라 보인다. 그러나 그는 “기차를 생각하면 제일 먼자 숫자가 떠오른다”며 “숫자는 새로운 시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가 준다”고 했다. 그에게 거울 회화 연작은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인류의 공통언어인 숫자로 표현하는 또 하나의 작업인 셈이다.
 
사진·설치·드로잉을 넘나들며 다채롭게 작업하는 영국 작가 대런 아몬드. [사진 PKM갤러리]

사진·설치·드로잉을 넘나들며 다채롭게 작업하는 영국 작가 대런 아몬드. [사진 PKM갤러리]

그는 “내 작업은 시간이란 개념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됐다”며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각 작품은 시간과 풍경,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달빛만으로 사진을 찍으면 어떻게 다른가.
“햇볕이 내리쬐는 낮엔 그림자가 생기므로 찰나의 순간만 포착할 수 있다. 하지만 달빛에만 의존해 촬영하면 풍경의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낼 수 있다. 달이 움직이면서 사진 속의 그림자를 부드럽게 지우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렌즈를 열어놓고 기다리는 것은 자연이 자기의 진정한 모습을 표현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달빛은 햇빛이 다 보여주지 못한 것을 보여 준다.”
 
이리저리 잘리고 뒤집어진 숫자가 보이는 거울 회화 연작은 무슨 수수께끼 같아 보인다.
“‘풀문’연작이 달이라는 시계(clock)를 통해서 하는 작업이라면, 거울 회화 연작은 기차역 시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관람객이 낯설게 보이는 숫자들과 그곳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여기‘ 시공간 너머의 세계를 체험했으면 좋겠다.”
 
‘시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대학 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에 부딪히는 큰 사고를 당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찰나에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다행히 생명을 건졌는데, 그 이후로 ‘시간이 굉장히 탄성적’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과거의 기억을 모두 떠올리기도 하고, 또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가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기차역 플립 시계에서 모티브를 얻은 '거울 회화' 연작. 4년 전 영국 철도공사 크로스레일의 의뢰를 받고 런던 본드스트리트 기차역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시작했다. [사진 PKM갤러리]

기차역 플립 시계에서 모티브를 얻은 '거울 회화' 연작. 4년 전 영국 철도공사 크로스레일의 의뢰를 받고 런던 본드스트리트 기차역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시작했다. [사진 PKM갤러리]

 
대런 아몬드의 브론즈 작품. 영국 근대사를 함축하고 있는 기차 표지판을 본 딴 것이다. [사진 PKM갤러리]

대런 아몬드의 브론즈 작품. 영국 근대사를 함축하고 있는 기차 표지판을 본 딴 것이다. [사진 PKM갤러리]

 “풍경 너머의 것을 보라”
이번 전시에서 그는 브론즈 작업도 선보였다.  ‘Sometimes’(썸타임) 글자만 쓰인 작품이다. 역시 ‘시간’ 얘기다. “관람객에게 내적인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단어를 고르고 싶었다”는 그는 “이 문구가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다른 문장으로 완성되는 것을 상상했다. 관람객이 이 단어를 통해 하나로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그에게 작업이란 하나의 명상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현재 영국 런던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을 열고 있는 그는 “빛과 정보 등 우리는 많은 것의 과잉으로 인해 오히려 다시 암흑시대로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달빛처럼 반사되는 빛은 어둠 속에 있을 때 더 멀리, 잘 볼 수 있게 해준다. 작은 순간들의 특별함과 그 시간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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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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