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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막은 장갑차 … 노란 조끼 “혁명정신 무너져 나왔다”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가판대에 붙어 있는 잡지 표지. 혁명의 상징인 마리안 상이 훼손된 사진이 걸려 있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가판대에 붙어 있는 잡지 표지. 혁명의 상징인 마리안 상이 훼손된 사진이 걸려 있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붉은 조명이 가로수에 내걸린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쳤다. 4주째로 접어든 노란 조끼 시위가 열리기 전날인 지난 7일(현지시간) 밤, 평소보다 적은 관광객들은 서둘러 귀갓길에 오르느라 종종 걸음을 쳤다.
 
 미리 문을 닫은 가판대 벽에 걸린 커다란 잡지 표지에는 '프랑스 상징의 마지막 날'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일주일 전 시위대가 개선문에서 얼굴 한쪽을 깨버린 마리안 상의 사진과 함께였다. 마리안은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 한 손에 장총, 다른 손에 삼색기를 들고 혁명의 선봉에 선 여신으로 묘사된, 프랑스의 상징이다.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훼손된 마리안은 웅변처럼 보여줬다. 
 
 8일 동틀 무렵부터 개선문 인근으로 노란 조끼를 입은 시위대가 모여들었다. 폭력 시위의 피해를 막으려고 새벽까지 명품 숍과 레스토랑 등이 유리창을 판자로 막는 공사를 벌인 샹젤리제 거리는 텅 빈 채였다. 지하철과 차량 통행이 전면 금지되고 루브르박물관과 에펠탑도 폐쇄된 ‘유령 도심’엔 경찰과 노란 조끼 시위대, 그리고 취재진뿐이었다.
 
 대통령 궁으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한 경찰은 개선문을 에워싸고 접근을 막았다. 2005년 이민자 폭동 시위 이후 파리에 처음 등장한 장갑차도 개선문 옆에 배치됐다. 마리안 상이 있는 그곳만은 내줄 수 없다는 결기 같았다.
노란 조끼 시위 [EPA=연합뉴스]

노란 조끼 시위 [EPA=연합뉴스]

 
 외곽 도로에서 일부 시위대는 이날도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차량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전국에 9만5000명 이상을 투입한 경찰이 시위대를 골목으로 흩어지게 하고 곳곳에서 검문검색을 실시해 폭력 시위 양상은 줄어들어 보였다. 
 
정부가 유류세 인상 철회와 부유세 부활 가능성을 밝혔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여전했다.  
 
 ‘존경하는 자본가들께,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우리도 존엄 있게 살면 안 될까요?’ 한 시위 참가자가 두 손 높이 쳐든 현수막에는 이런 글귀가 담겨있었다. 정부는 극좌ㆍ극우 세력이 시위를 주도한다고 했지만,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삶의 무게에 지친 평범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시위가 열린 9일(현지시간) 이른 아침, 도심 교통이 전면 통제되면서 샹젤리제 거리가 텅 비어 있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시위가 열린 9일(현지시간) 이른 아침, 도심 교통이 전면 통제되면서 샹젤리제 거리가 텅 비어 있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노란 조끼를 입지 않은 채 샹젤리제 거리에 나온 조르주(45)는 “이런 시위가 벌어진다는 게 놀랍겠지만 프랑스에는 빈곤이 존재한다"며 “많은 이들이 아파트 렌트비를 내려고 2~3개 직장을 갖고 있고 음식을 살 돈이 없다. 이게 바로 현재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이 시민들과 토의해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만 내세울 뿐 침묵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택시 운전을 하는 마디(40)는 “마크롱 대통령은 환경을 위해 유류세를 인상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준 공백을 메우는 데 썼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집세 보조가 낮아졌고 연금도 깎였는데 정부가 기업에는 대규모 예산을 지원하면서 세금도 제대로 걷지 않는다"며 “정의롭지 않고 이제 충분하니 그만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폭력 시위에는 반대하지만 왜 그러는지 이해는 간다"며 “마크롱이 잘한 것도 많으니 빨리 시정을 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리 시위 현장에서 장갑차가 불 붙은 구조물을 치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파리 시위 현장에서 장갑차가 불 붙은 구조물을 치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아모리(35)는 취재 중인 기자를 일부러 붙잡더니 “프랑스가 지켜온 혁명의 정신이 무너져내리는 게 느껴져 시위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마리안 상이 상징하는 혁명의 정신은 자유ㆍ평등ㆍ박애다. 아모리는 “프랑스가 잘 사는 나라 같겠지만 빈인빈 부익부가 심해지면서 일을 해도 생계를 꾸려가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며 “그러니 자유가 없고 평등의 가치도 손상됐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고 존엄한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늘면서 박애의 정신도 흔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기대가 컸지만 이전 대통령들처럼 권력을 과하게 써왔다"며 “샤를 드골 전 대통령처럼 자신에 대한 신임을 걸고 국민투표를 거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방에서 일부러 파리에 왔다는 줄리앙도 “우리의 적은 마크롱만이 아니다. 15년, 20년, 30년 전부터 누적돼온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며 “시위를 멈추려면 대통령의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로 전국에서 1400명가량이 체포됐다. 시위자 120명과 경찰 20명 등이 다쳤다. 마크롱 대통령이 조만간 사태 수습을 위한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필리프 총리가 밝혔다.  
노란 조끼 시위 전날 샹젤리제 거리에 경찰차가 배치돼 있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노란 조끼 시위 전날 샹젤리제 거리에 경찰차가 배치돼 있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세계 최대 관광지 중 하나인 파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매출 감소 등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더 깊은 충격은 양극화에 따른 소외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밤이 돼 귀갓길에 나선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들은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는 낙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골목으로 흩어지면서까지 외친 ‘마크롱 퇴진'은 “너무 힘들다"는 호소 같기도 했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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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