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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다수의 눈과 다르게 세상을 보라

자신의 ‘반사이론’ 확립하고 실천한 조지 소로스... 게임의 룰 변할 때 틈새에 베팅

 
자신만의 투자법으로 위기상황에서 고수익을 올린 조지 소로스는 투자의 신으로도, 악랄한 환투기꾼으로도 불린다.

자신만의 투자법으로 위기상황에서 고수익을 올린 조지 소로스는 투자의 신으로도, 악랄한 환투기꾼으로도 불린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낯선 이야기겠지만 ‘사랑에 울고 돈에 속았다’는 말을 하며 사랑을 잃은 자가 서럽게 묻는다. “그대여 그 남자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냐?” 물질만능주의라 하지만 그 역사는 이미 오래돼 이런 이야기는 이제 식상할 수 있다. 차라리 돈이 좋다고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사실 우리가 직장에 다니는 것은 자아실현의 목표도 있지만, 엄연히 생계를 꾸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요즘 시대로는 억만장자라고 해야겠지만 백만장자는 통상 부자로 통한다. [백만장자 아빠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짐 로저스는 사랑하는 딸에게 여러 조언을 한다. 주제어만 간추려 이야기를 해보자.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결정을 내려라 ▶무엇을 하든지 독창적이면서도 차별화된 사람이 되어라 ▶디테일이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상식이라고 다 상식적인 것은 아니다 ▶세계를 무대로 뛰어라 ▶철학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워라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실수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미래를 내다봐야 백만장자가 된다 등이다.
 
투자의 신이냐 악랄한 환투기꾼이냐
너무 가슴에 와 닿는 말인데 저걸 따라한다고 백만장자가 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좋은 말이니 금과옥조로 여기고 마음 속 깊이 새겨보자. 여기 짐 로저스보다 많이 회자되는 인물이 있다. 그를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누구에게나 양면성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추앙을 받는 인물은 드물다. 그는 돈을 사랑했다고 평가 받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그가 그렇다고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가면을 썼다고 말한다면 누구는 반대 의견을 내놓을 것이다. 그에 대한 세상의 평판이 두 가지로 갈리는 것은 사실이다. 좋게 보면 그는 국제금융 전문가이고 나쁘게 보면 국제적인 환투기꾼이다. 그의 이름은 조지 소로스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 회장. ‘투자의 신’이라고 그를 말한다면 좋게 보는 쪽이 아닐까? 하지만 그가 많은 나라를 부도의 공포로 몰고 갔다면 그는 정말 악의 화신인지도 모르겠다.
 
크든 작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사업을 접어야 하는 ‘부도의 공포’ 아닐까? 애플은 웬만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훨씬 넘는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고인(故人)이 된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겪은 트라우마 때문이다. 파산 직전의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현금을 조달해 위기를 모면했다. 이런 부도의 공포는 사업가뿐만 아니라 비(非)기축통화국가라면 언제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달러·파운드·유로·엔 등 주요국 통화를 외환보유액으로 넉넉히 보유하고자 한다. 국가 경제에서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처럼 무역의존도가 높고, 금융시장이 개방된 나라는 더욱 그렇다. 외환보유액은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외화 비상금이다. 믿을 만한 자산이 있는 사람에게는 선뜻 돈을 빌려주듯이, 국제금융시장의 외국인 투자자들도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면서 경제 펀더멘털이 좋은 나라에 자금을 우선 투자한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나라는 환투기나 급격한 자금 유출 위험이 줄어들고 자연히 위기발생 가능성이 작아진다. 반대로 외환보유액이 부족한 경우 작은 충격에도 시장이 흔들리고 위기가 쉽게 전염된다.
 
1997년 5월 어느 날. 조지 소로스는 대량의 자본으로 태국 바트화를 공격했다고 일각에서 주장한다. “그는 태국의 달러 보유액이 넉넉하지 않고 바트화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을 내립니다. 달러를 담보로 바트화를 빌린 다음 바트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행위를 반복해 태국 내 달러화 물량을 고갈시켜 국가 위기 사태로 몰아갔지요. 그는 인간의 탈을 쓴 악의 화신입니다.”
 
같은 운명도 다르게 받아들인다?
1998년 1월 4일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위원들이 한국을 찾은 세계적 투자가 조지 소로스(오른쪽 셋째)를 만나 위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1998년 1월 4일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위원들이 한국을 찾은 세계적 투자가 조지 소로스(오른쪽 셋째)를 만나 위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사람들이 치를 떨며 이야기를 한다. 1992년 발생한 영국의 파운드화 위기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사실이라면 소로스는 투자를 잘 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 나라마저 마비시킬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천인공노할 환투기꾼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영국인은 그를 악마라고 부른다. 1997년 태국의 바트화 하락으로 아시아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많은 아시아 국가가 연쇄적으로 쓰러지자 그 배후의 인물로 소로스가 지목됐다. 하지만 모든 이가 그를 비난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은 [불황의 경제학]에서 파운드화 위기가 소로스 때문에 촉발된 것이 아니고, 결과적으로 영국 경제 회복의 바탕이 됐다고 주장한다
 
소로스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며 질문을 해보는 상상을 해보자. 혹시 부자가 되는 비법을 들려 줄 수 있을까. 우선 그에게 이렇게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해보자. “어떻게 헝가리 출신 이민자가 금융인이 되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나요?” “대학 졸업 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어요. 여러 일을 했습니다. 웨일스의 휴양지 해변이나 선물가게에서 팬시용품을 팔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그런 일만 해서는 제대로 살 수가 없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죠.”
 
이런 부자도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시대 탓만 하는 것이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나치 점령 하에서는 숨어 지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민족주의를 시대의 악으로 생각하고 혐오한다. “런던에 있는 모든 상업은행의 책임자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답장은 겨우 한두 장 정도 받았죠. 그런데 운명은 소나기처럼 갑자기 올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자 부자는 동일한 운명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업은행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싱거앤프렌드랜더라는 은행입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투자은행 역할을 하는 회사였죠. 부유층을 대상으로 자산관리도 해주었습니다.” 소로스가 다닌 은행은 2005년 아이슬랜드 은행인 카우프트힝으로 넘어갔고, 2008년에는 ING그룹의 자회사인 ING다이렉트 소유가 됐다.
 
“말단 사원으로서 야망을 가지게 된 계기는요. 무슨 비밀이라도….” 그는 1954년 싱거앤프렌드랜더에 입사해 말단 행원으로 일하던 시절을 회상한다. “나는 차익거래 담당이 되면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내 장점을 여기서 발휘했죠. 이를 눈여겨본 동료 행원이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비법을 말하는데, 운명은 그렇게 그가 부자가 되는 길로 안내하고 있었다. 누구나 장점을 발휘하는 부분이 있고 그것을 알아주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후견인이 된다면 그보다 멋진 행운이 있겠나! “그의 이름은 로버트 메이어였습니다. 그는 내게 자기 아버지가 미국 뉴욕에서 운영하는 주식 중개 업체에서 일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나의 미국행이 그렇게 운명처럼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소로스는 195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는 1959년까지 주식중개 업체인 F.M. 마이어에서 유럽 주식 담당으로 일하며 상당한 실적을 올렸다.
 
“그런 우연이, 아니 인연이 당신을 부자로 만든 발단이었나요?”
 
“글쎄요, 그런 기회가 오더라도 내실 있는 철학을 가지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부자가 되기는 어렵죠.”
 
“무슨 말이죠?”
 
“1951년 프랑스·서독·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가 석탄과 철강 자원의 공동 관리를 위한 유럽석탄철 강공동체(ECSC)를 창설합니다. 이른바 유럽경제 통합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시기죠. 주가란 게 기대를 가지고 오르잖아요. 주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할아버지가 된 그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웃고 있다. “유럽 통합 분위기가 주가를 끌어올렸습니다. ECSC는 1957년 유럽 경제통합을 지향하는 유럽경제공동체(EEC, 공동시장으로도 불림)로 발전했죠. 드디어 1967년 영국·아일랜드·덴마크·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이 추가로 합류해 유럽공동체(EC)를 이뤘습니다.”
 
EC는 1993년 11월에 결성한 유럽연합(EU)의 모태가 됐다. 그의 말을 들으니 초창기 유럽 경제통합 분위기가 젊은 소로스에게 기회를 엿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날 때 누군가는 미래를 예측한다. 결과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지만 전문가적 식견을 가지고 예측을 하는 경우 이른바 감이란 게 작용할 수 있다. 누구는 그것을 단순히 운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이를 내공으로 말할 수 있다. 짐 로저스도, 조지 소로스도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5년 간 50만 달러 모으기
“인생을 살며 특별한 투자 목표를 세웠나요?”
 
“다시 1959년으로 돌아가 보죠, 나는 투자 업체인 워사임으로 옮겨 유럽 주식을 담당했습니다. 나는 그 회사에 다니면서 목표를 세웠습니다. 5년 간 50만 달러를 모을 계획이었죠. 그게 전부였습니다. 나는 그 이후에는 돈에 연연해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요? 돈이 당신에게는 무슨 의미였나요?”
 
“글쎄요, 돈이 너무 없으면 자유롭지 않잖아요. 그러니 돈은 자유죠.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독립적으로 살고 싶었어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돈이 다른 사람을 내게 의존하게 만드는 수단이라고요. 돈이 많으면 권력도 가질 수 있기는 해요.”
 
“그럼, 다른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했다는 것인가요?”
 
“네, 돈을 번 후에는 런던으로 돌아가 철학을 계속 공부해 교수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쉽게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돈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나는 자유로 가득 찬 열린사회를 꿈꾸었죠. 지금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요즘 횡행하는 자국우선주의는 경계할 대상입니다. 돈이 전부인 세상은 저 같은 돈 좀 있는 사람도 숨이 막히게 해요. 부자가 경멸의 대상으로 살해의 대상이 될 수도 있죠. 나는 민족주의의 개념을 떠나 많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인정받는 열린 사회에서 신뢰받는 가족, 오래가는 친구의 우정, 조건 없는 사랑을 꿈꾸고 있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스승인 칼 포퍼의 영향을 받은 자신의 ‘반사 이론(reflexive theory)’을 이론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어 했다. 그에 따르면 시장에서 일반 균형이란 것은 없고 거품 조성과 붕괴만이 있다. 어느 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진행되면 조정이 일어나고 극단적인 경우 패닉이 생긴다. 나중에 사업가로 성공한 이후 그는 자신을 케인스에 필적할 만한 경제철학자로서의 이미지로 남기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훗날 그는 고국이 있는 동구권에서는 아주 훌륭한 자선가로 활동했다. 그곳에 많은 대학을 세우고 수많은 재단을 만들었다. 질문을 듣고 있는 그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하지만, 학문을 하고자 하는 나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론을 실물 경제에 적용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시장 가치는 상황에 대한 경제학적인 기반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런 상황은 드물다. 시장 참여자의 잘못되기 쉬운 생각에 시장이 좌우되는 모습을 우리는 수없이 주식시장에서 목격한다. “어쨌든 나는 1963년부터 투자은행 안홀드 블라이크뢰더에서 부사장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1970년 소로스 펀드매니지먼트를 창업해 회장이 됐죠. 세계적인 투자가가 된 짐 로저스, 스탠리 드럭컨밀러 등과 함께 일했던 당시는 모험가적 기질이 다분했다고나 할까요.”
 
그는 1973년 조세피난처인 네덜란드령 안티과와 케이먼 군도에 퀀텀 펀드를 창립해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퀀텀은 핵물리학 용어인 양자에서 따온 것이다. “내게 정말 인상 깊은 날이 있어요. 소로스 펀드매니지먼트와 퀀텀 펀드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날이죠. 그 날이 1992년 9월 16일입니다. 이른바 ‘블랙 수요일’이라 불린 날이죠.” “저 잠깐만. 세계적인 투자가로서 명성과 ‘잉글랜드 은행을 부순 남자’라는 별명도 함께 얻었잖아요. 그 결과 헤지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게 되었는데 진실을 말해주시죠.”
 
그는 세간의 이야기를 회피하고 싶은 심정일까.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데 홀연히 사라진다. 많은 사람은 당시 소로스의 헤지펀드와 여러 다른 헤지펀드가 영국 파운드화를 대량 투매해 파운드화의 가치를 폭락하게 한 사건을 기억한다. 여하튼 바트화 사건도 그렇고 파운드 투매도 그렇고 그는 환율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공격했다. 당시 영국은 완전한 변동환율제를 운영하지 않았다. 영국은 1990년 10월 8일 유럽 환율메커니즘(ERM: Exchange Rate Mechanism)에 가입했다. ERM은 EC 회원국 중 그리스를 제외한 11개국의 통화가치를 일정한 범위 안에서 고정시켜 놓은 일종의 고정환율제이다. 이는 EC 통화 통합을 위해 각국의 통화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파운드화와 이탈리아의 리라화가 상하 6%로, 그 밖의 통화는 상하 2.25%의 변동폭으로 움직였다. ERM에는 독일 마르크화가 3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되자 독일 정부는 통일 비용을 마련하고자 동독의 화폐를 1대1의 가치로 교환해주는 무리수를 둔다. 그 결과 마르크화를 대량으로 풀게 되고 독일연방은행은 물가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실시한다. 다른 ERM 가입국들도 독일의 영향력을 최대한 억제하고자 기준 변동폭 안에서 금리를 최대한 올렸다. 그 결과 이들 국가에서 불황이 이어지고 실업률이 증가하는 한편, 화폐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이탈리아의 리라와 스페인의 페세타 가치가 폭락했다. 스웨덴은 화폐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단기 금리를 5배로 올렸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던 핀란드가 1992년 9월 8일 금리 연동을 포기했다. 영국은 상하 6%의 변동폭 안에서 환율 하락을 방어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간에는 소로스가 이 기회를 노렸다고 한다. 그는 영국이 ERM에서 나올 것이란 판단 하에 달러를 동원해 영국 파운드화를 투매하기 시작했고, 다른 헤지펀드도 돈을 들고 달려들었다. 영국 파운드화 환율이 하한선까지 떨어지자 영국 중앙은행은 환율 방어에 나섰다. 헤지펀드들이 투매한 파운드화를 영국 정부는 외환 보유액을 총동원해 사들였다. 하지만 하루에 두 차례나 단기 이자율을 올렸음에도 환율이 계속 떨어지자 영국 중앙은행은 환율 방어를 포기하고 그해 9월 16일 ERM에서 탈퇴했다. 영국 재무부는 검은 수요일에 34억 파운드를 날렸다. 이후 영국 파운드화는 재조정됐다. 이를 통해 소로스는 개인적으로 10억 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목표를 훨씬 상회한 그의 투자법은 일반인이 따라 하기에는 무리수다. 그는 게임의 룰이 변할 때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를 발달된 후각으로 터득하는 ‘감’이 있는 천부적인 돈 사냥꾼이다.
 
군중의 심리와 반대로 움직여
세계 금융시장의 거품을 불러왔다는 비판을 받는 미국 헤지펀드의 거물들이 2008년 11월 14일 미 하원 청문회에 불려 나왔다. 맨 왼쪽이 조지 소로스.

세계 금융시장의 거품을 불러왔다는 비판을 받는 미국 헤지펀드의 거물들이 2008년 11월 14일 미 하원 청문회에 불려 나왔다. 맨 왼쪽이 조지 소로스.

조지 소로스는 유대인이다. 많은 투자서에서 유대인은 나쁜 인물로 묘사된다. 누군가는 음모론으로 유대인의 경제활동을 설명한다. 소수민족으로 생존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 다수가 보는 방법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소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때를 기다리며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외환과 같은 위험한 상품에 과감히 베팅했다. 그냥 이것이 ‘우연’이었을까? 만약에 당신에게 조지 소로스 같은 투자의 왕이 곁에 있다면 당신은 그의 이야기를 따라할 것인가? 행여 그를 따라 주식을 샀다 해도 주식이 단기간에 안 오르고 내리면 화를 내지 않을까? 파는 타이밍은 누구도 모른다. 그가 어깨에서 팔라 했는데 욕심을 부려 꼭대기에서 팔려고 해서 매도 시기를 놓쳐 속절없이 하락하는 모습에 전 재산을 잃고 울지는 않을까? 본인 나름대로 투자관을 정립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귀신도 모르는 게 환율의 방향이고 주가의 방향이다. 소로스는 우연인지 다수가 잘 못되었을 때 오히려 떼돈을 모았다. 군중의 심리와 반대로 움직인 것이다. 그는 늘 조심했고 불확실성에 존재하는 흐름의 법칙을 이해하려 했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고 그만의 이론을 정립했다. 자신의 이론을 검증하고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버렸다. 그는 잃을 게 없다는 배짱으로 그만의 투자관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화학성분만으로 연금술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가능하지요. 가치가 없다고 시장에 평가 받은 주식이 황금알을 낳기도 합니다. 좋은 투자라는 것은 원래 지루한 것입니다. 만약 투자가 즐거움의 대상이라면 돈을 벌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어떻든 살아날 궁리를 해야 합니다. 시장에서는 언제나 살아남아야 돈을 벌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지 소로스가 주장하는 거품-붕괴 모델을 생각하며 경제상황을 진단해 보는 연습을 해보자. 그가 저술한 [금융의 연금술]에 나오는 조지 소로스의 거품-붕괴 모델은 8단계로 구성돼 있다. 이 이론은 처음에는 주식시장에서의 주가 변동을 설명하는데 이용됐지만, 일반적인 경제 상황에도 설명력을 가진다.
 
1단계: 추세가 시작되나, 추세를 인식하지 못한다.
 
2단계: 시장 참여자들이 추세를 알아차리고, 이것이 지배적인 편견이 되어 추세가 가속화된다. 이 때 적정 가격에서 벗어나 멀리 떨어진 지점까지 추세가 지속되어 거품이 형성된다.
 
3단계: 가격이 떨어지게 되면, 이를 한 차례 정도 의심하는 시험 과정이 진행된다.
 
4단계: 편견과 추세가 이러한 시험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면, 추세에 대한 강화가 이루어지면서 더 이상 정상적인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균형에서 벗어난 거품의 상태가 확고해진다.
 
5단계: 결국 진실의 순간이 찾아오고, 더 이상 가격이 과도한 기대에 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진다.
 
6단계: 투자자들이 더 이상 가격 상승을 믿지 않지만, 그동안의 관성과 기대에 의한 투자가 지속되어 가격이 다소 조정을 받지만 급격한 하락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7단계: 드디어 추세가 아래로 꺾이고, 편견은 완전히 뒤집히며 붕괴에 이른다.
 
8단계: 과도한 하락의 추세가 진정되며 정상적인 패턴으로 진입한다.
 
냉정하게 상황 이해하는 능력 키워야
우리네 삶에도 상승과 하락이 있듯이 경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냉정하게 상황을 이해하는 힘이다. 소로스의 8단계 모델은 전반적인 심리의 추세와 해당 추세의 붕괴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의 모델에서 상승과 하강의 속도에 차이가 있는데, 상승은 느리게 시작해 점차 빨라진다. 반면 내려갈 때는 상승할 때보다는 가파른 속도로 떨어진다. 시장 참여자들은 불완전한 이해를 근거로 행동한다. 거품은 시장 가격의 정확한 가치를 벗어난 편견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 하나의 편견이 자기 강화로 시작해 결국에는 자멸하는 거품-붕괴의 과정이 시장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이성적으로 삶을 바라보고 또한 시장을 예측할까. 고수의 길은 다수를 따르지 않기에 고독하지만, 많은 사람이 불꽃놀이를 하는 가운데서 고독을 즐기려 파티장을 떠난다. 누군가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린다면 그는 다수의 투자심리를 제대로 읽고 있는 인물이리라.
 
※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이다. 대한민국OECD 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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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