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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비핵화하는 척하고 트럼프는 믿는 척한다

미국 차세대 핵 전문가 비핀 나랑 교수의 분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고 있다. 이 동작은 ‘잘 됐어’ ‘좋아’란 의미를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내년 1월 또는 2월에 2차 정상회담이 열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고 있다. 이 동작은 ‘잘 됐어’ ‘좋아’란 의미를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내년 1월 또는 2월에 2차 정상회담이 열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비핀 나랑(39·사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미국의 차세대 핵 전문가다. 기존 핵 정치학은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순간 그 파괴력으로 인해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낮아진다’(핵 억지력)는 입장이었다. 나랑 교수는 그런 인식 틀을 비판하며 ‘중요한 건 핵무기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란 최적화 핵 태세 이론(posture optimization theory)을 정립해 학계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북핵 위기 이후 국내 언론에 자주 ‘북핵 전문가’로 인용되곤 한다. 그는 한국 언론과의 정식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자신은 한반도 전문가가 아니라 핵 전문가(nuclear person)라고 밝혔다. 그러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전략에 대해 “공식적으로 말할 순 없겠지만 북한의 핵무기를 묵인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라고 했다. 4일(현지시간) 오후 케임브리지 소재 MIT 연구실에서 나랑 교수와 만났다.
 
비판 나랑 MIT대 교수

비판 나랑 MIT대 교수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인가, 아니면 핵·미사일 실험 중단인가.
“트럼프 행정부는 단일체가 아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끄는 그룹은 CVID·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주장하고 최대 압박을 통해 비핵화를 원한다. 궁극적으론 무력도 쓸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구체적 합의가 없었다고 비판을 받았는데도 트럼프 자신은 ‘해결됐다’고 말했다. 당시 트럼프가 비핵화가 뭔지 모른다고들 추정했다.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 나는 트럼프의 목표가 비핵화(disarm)가 아니라 실험 중단이란 생각이 든다. 가설이지만 트럼프가 기본적으로 무력으로 비핵화할 수 없다고 인식, 북의 핵·미사일 실험에 따른 정치적 위협을 멈추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런 전략이라면 한동안 통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에겐 북한 비핵화가 목표가 아니란 의미인가.
“미국의 장기적 목표는 북한 비핵화다. 단기적으론 그러나 현실에선 핵보유국인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지 않겠지만 핵무기를 공격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보여주는 증거도 없다는 입장이다. 핵실험 직후 인도를 침공한 파키스탄과 달리 김 위원장은 핵무기를 보유한 첫 해 ‘매력 공세’를 시작했고 이게 한반도의 긴장을 크게 낮췄다. 외교적으로 군비통제(arms control)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북한이 인도처럼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 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 의미 있는 목표로 핵미사일(fissile missile)의 생산량 제한, 특정 미사일 기술 운용 제한 등이 가능할 것이다. 일방적인 비핵화에만 초점을 맞추면 전부 아니면 전무가 될 터여서 이런 기회를 잃는다.”
 
단기적으로 군비통제, 장기적으로 비핵화는 다소 상충된 목표 아닌가. 결국 인도·파키스탄도 핵보유국이 됐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선례를 만들면 다른 국가들도 핵 무장을 추구할 것이라고 비판하는데 이해한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다.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느냐다. 25년간 대단히 노력했지만 북한은 빗장을 풀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아닌 이란과의 핵협상(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집중했다. 트럼프가 물려받은 문제다. 나는 북한이 핵무기를 공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전쟁으로 갈 필요가 없다고 본다. 시험 중단을 통해 북한의 핵 능력과 장거리미사일 완성을 늦추려는 트럼프의 전략은 타당한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의미 있는 목표라고 본다.”
 
비핵화를 말해온 한국 정부에 현실적인 정책 목표가 있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에 집중하는 건 북한의 위협을 줄이는, 그가 가진 유일한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생각이 없으며 그걸 없애도록 하는 비용이 남한에 막대한 부담이 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고 본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footprint)이 긴장 요소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 남북 평화 공존으로 이어진다면 주한미군 규모를 줄일 수도 있다. 다만 한국이 평화를 우선하고 비핵화를 나중으로 미루는 데 비해 미국은 비핵화-평화 순이란 점에서 김 위원장이 (한·미를) 디커플링(decoupling·이탈)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현재 북·미 협상은 어떻게 평가하나. 실무 협상은 지연되고 있다.
“북한은 실무협상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이 진전될수록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다. 핵무기도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과 협상하게 되면 불필요한 위험에 맞닥뜨리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더더욱 실무회담을 할 이유가 없다.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것이 엄청난 행운이다. 북한은 비핵화를 하는 척하고 트럼프는 믿는 척을 한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협상해야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을 수 있다.”
 
북한의 핵 태세(nuclear posture)를 어떻게 보나.
“군사적 위기 상황에서 북한 핵무기의 목적은 미국 주도의 재래식 침공을 저지하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공격 속도를 더디게 하는 것에 성패가 달렸다. 이미 서울과 주한미군을 억제할 수 있는 재래식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한반도 내에서 핵무기의 효용가치가 크지 않다. 괌·오키나와·요코스카(미군기지)에 핵무기를 사용한 이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통해 미 본토를 인질로 잡아 미국의 핵 보복을 저지하는 것이다. 이게 유일하게 김 위원장이 살 수 있는 길일 것이다. 미 본토를 인질로 잡게 되면 미국의 계산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북한은 자신들의 장거리 핵무기의 생존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위기 초반에 핵무기를 전량 소모하려 할 것이다. 김 위원장으로선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 때 다 쓰려 한다는 의미다. 미국엔 대단한 위협이다.”
 
미국은 위기 상황에서 ‘레프트 오브 론치’(left of launch·발사 직전 교란작전)와 같은 사이버 작전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핵 지휘·통제권을 무력화하려 한다.
“레프트 오브 론치와 같은 사이버 작전은 핵 지휘·통제권이 불안정한 국가에 불필요한 자극을 준다. 실제 작전이건 심리 작전이건 위험한 불장난이다. 김 위원장이 만약 위기 초반부에 미국의 사이버 작전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초기에 핵 지휘·통제권을 예하 지휘관들에게 이양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고 이는 핵 지휘·통제권의 중앙집중화를 저해하고 의도하지 않은 핵 사용의 가능성을(inadvertent nuclear use) 높인다.”
 
보스턴=김동현 중앙SUNDAY 통신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구원)
Dong-Hyeon_Kim@hks.harva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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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