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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웨이산 “3·1운동 100년 기념 안중근·김구 동상 만들 것”

[박정호의 사람풍경] 한국 온 위인 조각의 대가
우웨이산 의 트레이드 마크는 휘날리는 머리칼이다. 어린 시절 잘 먹지 못해 머리가 작았는데,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을 늘이기 위해 머리카락을 길렀다고 한다. ’지금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바쁘게 지내서 그런지 영양분이 공급돼도 머리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우웨이산 의 트레이드 마크는 휘날리는 머리칼이다. 어린 시절 잘 먹지 못해 머리가 작았는데,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을 늘이기 위해 머리카락을 길렀다고 한다. ’지금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바쁘게 지내서 그런지 영양분이 공급돼도 머리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음식 얘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중국인인 그가 “된장과 김치, 특히 쌀밥을 좋아한다. 한국에 오니 즐겁다”고 말했다. “중국에도 다 있는 음식”이라 했더니 “물론 중국에도 한국식당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먹어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예술로 치면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는 셈”이라고 받아쳤다. 기자가 재차 물었다. “중국요리도 훌륭하지 않은가.” 대답이 재미있다. “스타일에 비유해보자. 예술가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게 되면 그것을 쭉 추구하듯이 음식도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전생에 한국인이 아닐까 싶다.”(웃음)
 
그는 우웨이산(吳爲山·56) 중국미술관장이다. 현대 중국조각을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다. 동양 문인화의 오랜 전통인 ‘사의’(寫意·사물의 형태보다 그 안의 정신을 드러냄)를 3차원 조각에 옮겨놓았다는 평가다. 특히 공자·노자·이백·두보·루쉰(魯迅) 등 중국사를 가로지른 위인들의 동상에 집중해왔다. 올해에는 탄생 200년을 맞은 마르크스 동상을 빚어 독일에 기증했다. 최근 타계한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여왕 등 외국 지도자도 종종 형상화했다.
 
그의 스타일은 매끈하지 않다. 거칠면서도 날카로운 손놀림으로 해당 인물의 개성을 단박에 알아채도록 이끈다. 흙·청동을 캔버스 삼아, 칼을 붓 삼아 역사 속 위인을 오늘로 불러낸다.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막한 ‘치바이스와의 대화’ 전시에 맞춰 방한한 그를 만났다. 그는 이번에 그가 ‘예술의 영감(靈感)’으로 삼아온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 조소 5점도 내놓았다.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는 전각(篆刻)·시서화(詩書畵)에 능통한 전천후 작가였다.
 
 
예술의전당서 ‘치바이스와의 대화’ 전시
 
이번 전시를 직접 기획했다.
“중국 미술의 혁신 노력을 엿보는 자리다. 전통을 지키되 그것에 반(反)하는 몸짓이 담겼다. 옛것을 좇되 또 이를 넘어서는 과정이다. 중국의 대가들이 한국에 어떻게 비칠지 궁금해 공항에 내리자마자 미술관으로 달려왔다. 전시 공간이 훌륭했다. 모든 작품이 살아있는 듯했다.”
 
전시 부제가 ‘같고도 다른’인데.
“한자로 ‘사여불사(似與不似)’다. 치바이스의 말이다. 그림을 그릴 때 대상과 너무 같으면 아부하는 것이고, 완전히 다르면 속이는 것이라고 했다. 치바이스는 ‘나를 배우는 사람은 살지만, 나를 닮은 사람은 죽는다’라고도 했다. 모방이 창작의 출발이지만 그곳에 그치면 예술이 될 수 없다. 동서양 위대한 작들은 그 점에서 통한다.”
 
한국판 작품·이론집도 출간됐다.
“14년 지기인 박종연 인제대 교수가 번역하고, 한국의 저명 북디자이너인 정병규 선생이 만들었다. 마치 제 작품이 한국에 시집온 느낌이다. 중국판보다 만듦새가 뛰어나다. 제가 작업하는 모습도 새로 넣었다. 감사하고 놀랍다.”
 
지난 20년간 인물상에 주력했다.
“모두 500명쯤 된다. 주로 노년의 문인·학자·예술가들이다. 문이재도(文以載道)라는 말이 있다. 글이란 도를 담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도는 무엇인가.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본다. 뛰어난 학자·사상가는 시대정신을 상징한다. 인물 자체가 예술일 뿐 아니라 역사가 된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면.
“모든 작품이 좋다. 다 각별한 배경과 인연이 있다. 그래도 꼽으라면 공자와 노자다. 중국 사상의 원류가 된 현인이다. 시공을 초월한 가치를 전파했다. 물론 그들의 사진은 구할 수 없었다. (웃음) 그들의 내면을 드러내야 했다. 공자에는 자상하고 해박한 노학자의 풍모를, 노자에는 물·하늘 같은 자연의 이미지를 담았다. 내 고향 장쑤성(江蘇省) 있는 ‘천인합일-노자’가 가장 마음에 든다. 높이 18m 대작인데, 작품 가운데를 텅 비워버렸다. ‘유(有)는 무(無)에서 생겨났다’는 도가사상을 표현했다.”
 
한국인 안창호·서재필도 있다.
“2009년 인제대 캠퍼스 조소공원에 조성했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기렸다. 평생 가난한 이를 도운 의학자 장기려 박사, 포항제철 신화를 일군 박태준 회장 동상도 만든 적이 있다. 내년 한국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 중국 5·4운동 100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 김구 주석 동상도 만들 생각이다. 그들은 세계가 기억해야 할 인류정신을 실천했다. 역사에 정의가 존재했고, 또 정의는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미인이나 사업가 조각은 없는데.
“미인도 하고 싶다. 그런데 찾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마음이 통해야 하니까. (웃음) 기업가들이 사회에 기여한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역사는 긴 시간에서 봐야 한다. 예컨대 서울의 큰 건물도 멀리서 보면 작은 점에 불과하다. 지금 위대하다고 10년, 100년이 지나서도 위대할지는 알 수 없다. 알리바바 마윈(馬雲) 회장 같은 인물은 후대 조각가의 숙제로 남겨놓았다.”
 
우웨이산은 고전문학에 밝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큰할아버지는 저명한 서예가이자 시인·학자였다.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많은 수난도 겪었다. 원래 의사를 꿈꿨으나 수학 실력이 달려 대입에 두 차례 떨어진 후 어려서부터 좋아한 그림·조각·글씨에 전념했다. 로댕·자코메티·헨리 무어 등 서양 조각가들도 부단히 공부하며 동서양 예술의 요체를 빨아들였다. 요즘에는 대외활동에도 적극적이다. 2014년 중국 근·현대 미술의 중심지인 중국미술관장에 올랐고, 2008년부터 정책자문기구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상임위원으로 있다. 동양인 최초의 영국왕립조소가협회 회원이기도 하다.
 
 
동양인 최초 영국왕립조소가협회 회원
 
왼쪽부터 공자, 노자, 안창호, 서재필 동상.

왼쪽부터 공자, 노자, 안창호, 서재필 동상.

공직과 창작, 충돌은 없나.
“사람에게 24시간은 모두 동일하다. 당연 창작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예술이 무엇인가.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의 보편적 가치를 전하는 것 아닌가. 예술의 현장은 어느 곳에나 있다. 전국 각지의 작가를 만나고, 또 예술정책을 수립하며 사회를 더욱 넓게 이해하게 됐다.”
 
행정가로서 성취한 것이라면.
“서예를 초·중·고 필수교과로 정했다. 컴퓨터 세상인지 붓을 다루지 못하는 대학원생도 많다. 서예는 단순한 글씨를 넘어 동양 예술의 뿌리다. 내 조각의 토대도 서예다. 지금은 중국 대학에 200여 개 서예과가 개설돼 있다. 한글도 조형감이 뛰어난 문자다. 문자·글씨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만약 의대에 합격했다면.
“훌륭한 외과의사가 되지 않았을까. (웃음) 의사나 조각가가 다 칼을 다룬다. 의사가 칼로 신체의 질병을 고친다면 조각가는 칼로 사람의 정신을 살려낸다.”
 
내년 5월 중국미술관에서 ‘추사 김정희와 청조(淸朝) 문인의 대화’ 전시를 열기로 했다. 치바이스 전시와 교환 성격이다.
“추사는 19세기를 대표하는 국제적 지식인이다. 문화는 물처럼 흘러야 한다. 고립이란 없다. 예컨대 피카소와 마티스도 동양미술에서 영감을 받았다. 요즘 젊은이들이 부자나 스타는 꿈꾸면서 뛰어난 문화 인물에 관심이 없어 안타깝다.”
 
중국의 문화패권에 대한 우려도 있다.
“문화란 한 나라의 것이 아니다.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서로 좋은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제가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고 걱정할 필요가 있나. 중국인이 영어를 배운다고 중국이 미국에 복속되나. 인류 공통의 유산은 나눠야 한다. 치바이스가 갈파했듯 문화의 기착지는 평화다.”
 
팔대산인 등 중국 거장들 명작 116점 첫 한국 나들이
치바이스

치바이스

지난해 여름 우리 미술계에 치바이스(사진) 바람이 불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그의 첫 대규모 전시에 5만여 관객이 다녀갔다. 서울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역대 서화전 가운데 최고 히트작으로 꼽혔다. 가난한 목수로 출발해 20세기 중국 미술 최고봉에 오른 치바이스의 끝없는 정진이 큰 울림을 주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얼어붙은 한·중 문화교류에 작은 숨통을 트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1년여 만에 다시 찾아온 이번 전시의 고갱이도 치바이스다. 그에게 영향을 준 선배 작가, 그에게 영감을 받은 후배 작가들을 앞뒤로 포진시켰다. 명나라 말기~청나라 초기의 팔대산인(八大山人), 청나라 말기의 오창석(吳昌碩), 현대의 우쭤런(吳作人) 등 이른바 거장들의 명작 116점이 나왔다. 작품 모두 한국 나들이는 처음이다. 중국 국가1급유물(국보급) 13점도 포함됐다.
 
우웨이산도 기대감을 갖추지 않았다. “팔대산인의 대표작 7점은 외국으로 나간 적이 없다. 중국에서도 60년대 이래 공개된 적이 거의 없다. 미술계 거장들이 서로 얘기하고, 미소 짓고, 경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국 서예박물관 큐레이터는 “중국미술관 소장전은 국내 처음이다. 한·중 예술교류의 중장기 채널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7일까지.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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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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