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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사우디 감산 이견 … ‘신성동맹’ 흔들리자 유가 요동

국제원유 시장의 ‘사우디아라바아-러시아 신성동맹’이 균열 조짐을 보였다. 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산유국의 실무자 회의에서 원유생산 감축(감산) 합의에 난항을 겪었다. 양쪽의 대표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감산 규모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예상 밖의 상황이다.  
 
일본 금융그룹 미쓰비시UFJ 등은 이날 오전 투자메모를 통해 “사우디와 러시아가 하루 100만 배럴 정도 감산에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감산 문제 때문에 사우디-러시아의 합의 난항이 전해진 순간 국제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1.12% 떨어져 배럴당 51.13달러에 거래됐다.
 
사우디-러시아의 갈등은 2016년 11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두 나라는 그때 떨어지는 국제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하루 100만 배럴 감산에 전격 합의했다. 미국 에너지시장 분석회사인 래피디언의 대표인 로버트 맥널리는 올 6월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2016년 감산 합의로 사우디-러시아 사이에 신성동맹이 시작됐다”며 “합의가 이뤄진 오스트리아 빈의 이름을 따 ‘빈(Wien) 체제’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맥널리는 “사우디-러시아 합의를 신성동맹이라 하든 아니면 빈체제라 하든 너무나 깨지기 쉬운 약속”이라고 전망했다.
 
맥널리의 예측은 반년 정도 만에 현실이 될 조짐이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 규모를 놓고 갈등을 빚어서다. 사우디는 하루 130만 배럴 감산을 추진했다. 사우디는 이날 빈회의에서 러시아에 하루 30만 배럴 감산을 요구했다. 감산목표의 23% 남짓 되는 규모다. 사우디 쪽은 “130만 배럴 정도는 줄여야 하루 공급 초과분 200만 배럴을 상당 부분 없애야 유가 급락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더욱이 올 6월 증산한 100만 배럴 이상을 감산해야 국제유가 추락 흐름을 돌릴 수 있다는 쪽이다. 반면 러시아는 재정 지출 급증 때문에 가격 하락을 어느 정도는 감수하며 원유 생산을 늘려야 하는 처지다. 톰슨로이터 등은 “러시아가 하루 15만 배럴 정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이란이 미국의 경제 제재가 풀릴 때까지 감산 예외를 요구해 회의 진행 자체를 어렵게 했다.  
 
세계 기름 공급은 올 8월 하루 1억 배럴을 넘어섰다. 세계 3대 원유 생산국(빅3)인 미국과 러시아, 사우디가 지난해 말보다 하루 330만 배럴 정도를 더 생산해서다. 아랍에미리트(UAE)의 하루 생산량과 맞먹는 규모다. 무엇보다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출 제한과 베네수엘라 생산 차질이 낳은 공급 감소를 벌충하고도 남는 규모다. 그 결과가 바로 국제유가 추락이다. 올 10월 이후 국제유가는 30% 정도 떨어졌다. 이미 시작된 공급 과잉이 1차 원인이다. 여기에다 무역전쟁 때문에 세계 경제가 둔화하면 원유 수요가 눈에 띄게 줄 것이란 전망이 가세했다.
 
사우디-러시아 신성동맹은 구조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2010년 이후 미국이 셰일 원유와 가스 생산을 본격화했다. 미국이 국제원유 시장의 최대 수요국에서 메이저 플레이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올해 8월부터는 미국이 하루 1130만 배럴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러시아(1120만 배럴)와 사우디(1090만 배럴)를 각각 2위와 3위 생산국으로 밀어냈다. 게다가 올 11월 말 기름 수출량이 수입을 넘어섰다. 1차 석유파동이 시작된 1973년 이후 45년만에 처음이다. 이처럼 미국이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면서 동시에 최대 소비국인 상황에서 국제원유 시장 넘버2(러시아)와 넘버3(사우디) 사이 동맹의 위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우디-러시아 동맹의 약점을 간파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감산합의에 반대하고 나섰다. 톰슨로이터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트럼프의 압박을 계기로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감산 합의가 쓸모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사우디-러시아가 감산하면 미국에 시장 점유율만 뺏길 수 있어서다.
 
이번 합의 난항은 또 다른 약점도 노출시켰다. 바로 OPEC의 영향력이 아주 미약하다는 사실이다. OPEC의 하루 생산량은 전체의 30% 남짓으로 줄었다. CNBC 경제 칼럼니스트인 짐 크레머는 “지금 OPEC은 과거 위세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다”며 “더 이상 국제원유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게 됐다”고 평했다. 사실 OPEC의 한계를 간파한 무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최근까지 푸틴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사우디-러시아의 갈등으로 인한 유가 약세가 한국 등 원유 수입국의 기대만큼 오래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1년 사이 유전개발 투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미 에너지정보국(IEA)에 따르면 원유를 즉시 채굴할 수 있는 생산 여력이 하루 150만 배럴 정도다. 원유 수요가 조금이라도 늘어날 기미만 보여도 국제 유가가 한 순간에 급등세로 돌아설 수 있는 상황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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