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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억원 버는 ‘가츠오 노다타키’ 비결은 남다른 포장

일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요즘 일본에서는 ‘고급’ 식빵이 유행이다. 얼마 전 일본에 갔을 때 식빵을 선물하는 것을 봤다. 일본 사람들은 누군가와 만날 때 과자를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놀러 오는 친구들은 한국에 사는 나한테도 거의 100% 일본 과자를 준다. 그런데 식빵을 선물하는 건 처음 봤다. 종이 가방에 들어 있고 뭔가 고급스럽게 보였다. 물어보니까 고급 식빵이라고 한다. 식빵이라고 하면 빵 중에도 가장 서민적인 저렴한 빵인 줄 알았는데. 궁금해서 나도 고급 식빵 전문점을 찾아갔다.
 
 
예쁜 포장에 ‘고급’ 수식어로 오사카 식빵 붐
 
도쿄의 ‘고급’ 식빵(아래사진) 가게 노가미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도쿄의 ‘고급’ 식빵(아래사진) 가게 노가미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도쿄 아자부주반은 고급 음식점이 많은 곳이다. 최근에 문을 열었다는 노가미(乃が美)라는 가게에 가 봤다. 평일 오전인데도 불구하고 수십 명이 줄을 서 있었다.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방송국에서도 취재하러 왔다. 기다리는 사이에 가게 주인한테 물어보니까 노가미는 오사카 우에혼마치(大阪 上本町)에서 5년 전에 시작해서 지금 전국에 점포가 110개까지 늘어났고, 모두 합쳐서 하루에 5만 개의 고급 식빵이 팔린다고 한다.
 
주사위형 하프 사이즈가 432엔(약 4300원), 그 두 배 레귤러 사이즈가 864엔(약 8600원). 생각보다 비싸지 않지만 붐을 타서 더 비싼 고급 식빵 전문점도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오사카 우에혼마치라고 하면 내가 5년 전에 살았던 동네다. 그런데 노가미의 존재는 전혀 몰랐다. 급격한 고급 식빵 붐으로 갑자기 점포가 늘어난 것이다. 먹어 보니까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확실히 맛있긴 했다. 좋은 재료를 쓴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식빵일 텐데 왜 붐까지 일어난 걸까. 혹시 식빵이라는 서민적인 이미지에 고급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의외의 조합을 만든 덕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포장까지 해 주니 선물하기에도 딱 좋아 보였다.
 
일본은 참 포장을 잘한다. 고급 식빵 붐은 오사카에서 시작해서 전국으로 퍼진 경우다. 일본의 ‘포장 문화’는 지방을 살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내가 한국에서 지방을 여행할 때 지역마다 고유의 매력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어딜 가나 비슷한 관광 상품이 많고 아파트 위주의 풍경도 닮은꼴이었다.
 
도쿄의 ‘고급’ 식빵. [사진 나리카와 아야]

도쿄의 ‘고급’ 식빵. [사진 나리카와 아야]

나는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코쿠 고치(四国 高知)현으로 이사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0년을 거기서 살았다. 아버지 전근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고치와 아무 인연이 없었다. 오사카에서 학원을 경영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하셨다. 몇몇 후보지를 가족 여행으로 돌아다닌 다음 고치를 정착지로 정했다. “바다와 강, 산도 있고 음식도 공기도 맛있다”는 게 이유였다. 덕분에 나는 여름엔 매일같이 바다나 강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등산이나 캠핑을 즐기며 자랐다. 그렇다. 고치의 매력은 ‘자연’이며 고치는 그 매력을 잘 살리는 곳이다.
 
고치에 맛있는 것은 엄청 많지만 그중 하나만 들자면 가츠오 노 다타키(가다랑어를 살짝 구운 요리)다. 다른 데서도 가츠오 노 다타키를 먹은 적은 있지만 고치에서의 맛은 느낄 수 없었다. 고치에서 먹는 것이 압도적으로 맛있다. 고치는 가츠오 잡이로 유명하다. 그래서 가츠오가 신선하기도 하지만 짚에서 살짝 구워내는 게 그 맛의 비결이다. 센 불로 표면만 구워 고소한 향기가 난다. 도시에서는 짚 자체가 구하기 힘들기도 하고 보관하는 공간 때문에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 고치처럼 농촌에서 짚이 많이 나오고 땅값도 싼 곳이어야 가능한 음식이다.
 
 
‘한 마리 한 마리 잡이’와 ‘짚에 구운’ 강조
 
시코쿠 고치의 한 식당에서 셰프가 가다랑어를 살짝 구운 ‘가츠오 노 다타키(아래 사진)’ 요리를 하고 있다. [사진 나리카와 쥰]

시코쿠 고치의 한 식당에서 셰프가 가다랑어를 살짝 구운 ‘가츠오 노 다타키(아래 사진)’ 요리를 하고 있다. [사진 나리카와 쥰]

그렇다고 짚에 구운 가츠오 노 다타키가가 처음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가츠오 어부와 디자이너의 만남이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한 가츠오 어부가 “가츠오 가격이 내려가서 폐업 위기를 겪고 있다”며 디자이너한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가츠오 잡이는 한 마리 한 마리를 낚시로 잡기 때문에 인건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디자이너는 ‘한 마리 한 마리 잡는 어법’과 ‘짚에 구운’을 전면에 내세운 디자인으로 가격대를 올려서 팔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와 8년 만에 20억 엔(약 200억원)을 버는 산업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는 고치성(高知城) 근처에 고치의 맛있는 음식들이 모인 히로메시장이 생겼다. 거기서 가츠오를 짚에 구워서 다타키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바로 앞이라 자주 가서 막 구운 다타키를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행복한 고등학생이었다. 눈앞에서 굽는 다타키는 볼거리로 소문이 나서 단숨에 인기 관광 상품이 됐다.
 
가다랑어를 살짝 구운 ‘가츠오 노 다타키’. [사진 나리카와 쥰]

가다랑어를 살짝 구운 ‘가츠오 노 다타키’. [사진 나리카와 쥰]

이런 고치의 매력을 살린 상품들이 어느 한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짚에 구운 가츠오 노 다타키를 전국적인 상품으로 만든 그 디자이너가 바로 그 사람, 우메바라 마코토(梅原真)라는 사람이다. ‘일본의 풍경을 다시 만들자/1차 산업×디자인=풍경’이라는 우메바라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우메바라의 아이디어로 즐기면서 살아왔는지를 알게 됐다.
 
그중 하나는 ‘모래사장 미술관’의 티셔츠 아트. 고치현 구로시오쵸(高知県 黒潮町)의 모래사장에 사진이나 그림 등을 프린트한 티셔츠를 빨래처럼 전시하는 것이다. 바다의 바람으로 나부끼는 티셔츠는 유명한 아티스트의 작품일 때도 있고 일반 공모로 모은 것일 때도 있다. 1989년에 시작해서 올해 30주년을 맞이했다. 그 해는 한참 버블 경제 때였다. 지방 곳곳에서 대형 리조트 시설들이 잇따라 만들어졌을 때 ‘모래사장 미술관’이 되는 바닷가에도 호텔이나 골프장 건설 계획이 있었다. 계획이 실현되기 전에 버블이 붕괴한 것이 다행이다. 티셔츠 아트는 돈이 안 들고 자연을 살린 관광 상품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모래사장 미술관’은 미술관이라고 해도 건물은 없다. 우메바라가 생각한 것은 ‘우리 마을에는 미술관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미술관입니다’라는 컨셉트다. 길이 4㎞의 모래사장 자체가 예술이다. 바람도 파도도 소나무도 ‘모래사장 미술관’의 전시품이며 관장은 바다에 있는 고래다.
 
우메바라는 이 지역의 특산품 락교(염교)에도 주목했다. 락교는 그냥 먹는 것으로만 생각했었지만 락교의 꽃을 ‘꽃구경’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벚꽃 구경을 아주 좋아하지만 락교도 핑크색의 예쁜 꽃을 피운다. ‘락교의 꽃구경’이라는 포스터를 만들자 그 전과 아무 변화도 없는 락교 밭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방송국 NHK의 전국 뉴스로 “락교 꽃구경의 계절이 왔습니다”라고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우메바라는 “모든 기본은 1차 산업에 있다. 1차 산업이 일본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전국의 디자인을 하는 그이지만 이런 생각은 그가 고치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도 기본적으로 그와 같은 생각이다.
 
 
경북 도청 건물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  
 
2년 전쯤 안동 하회마을로 간 김에 최근에 생겼다는 경북도청을 보러 갔다. 주변 환경과 전혀 안 어울리게 청와대 같은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버블 경제 땐 일본 지방에도 큰 건물들을 많이 지었지만 이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최근에 2025년 오사카 만박(만국박람회) 개최가 결정됐다. 사실 오사카에선 이를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성공을 거둔 1970년 오사카 만박은 급속도로 경제 발전했던 시기에 개최됐다. 이번 결정에 “세금이 아깝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버블 붕괴는 일본 지방을 디자인으로 살리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한국도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위기는 기회다. 지방에는 아직 많은 보물이 잠자고 있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엄청난 관광 상품이 될 수도 있다. 돈이 들지도 않고 자연을 파괴하지도 않는 지방 살리기는 일본 ‘포장’ 문화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과 한국(TV REPORT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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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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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