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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피곤하면 생각 유연해진다

책 속으로
유연한 사고의 힘

유연한 사고의 힘

유연한 사고의 힘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김정은 옮김, 까치
 
세상이 ‘빛의 속도’로 미친 듯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미치고 싶어도 미칠 시간적 여유조차 없는 시대다. 『유연한 사고의 힘』의 저자에 따르면 매년 쏟아지는 300만 건의 과학 논문을 소화하기 위해 5000개의 과학저널이 2004~2014년 기간에 창간됐다. 또 우리는 매일 10만 단어 분량의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유연한 사고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조금만 재편성하면, 여유를 다시 확보하는 가운데 인공지능(AI) 시대 개막이 전혀 두렵지 않은 창의적·혁신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다행히도 아직은 ‘유연한 사고(elastic thinking)’가 가능한 AI 시스템은 없다. AI가 유연한 사고마저 가능하기 전까지가 인류의 ‘골든타임’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64)는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13년까지 캘리포니아공과대(Caltech)에서 교수 생활을 한 이론물리학자다. 과학 대중서 베스트셀러 작가인 믈로디노프는 ‘맥가이버’ ‘스타트렉’ 대본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는 스티븐 호킹(1942~2018)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2005)·『위대한 설계』(2010)를 같이 썼다.
 
믈로디노프의 『유클리드의 창: 기하학 이야기』(2001)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호킹 교수가 책을 같이 쓰자고 제안한 것이다. 호킹 교수는 매년 캘텍에서 한 달 동안 믈로디노프와 협업했다. 믈로디노프는 인류의 개체 수가 단 600명으로 떨어졌던 13만5000년 전의 멸종 위기에서 인류를 구한 것은 유연한 사고라고 주장한다. 21세기 생존과 번영의 열쇠도 유연한 사고에 달렸단다. 저자가 말하는 유연한 사고의 반대말은 ‘경직된 사고’라기보다는 ‘분석적 사고(analytical thinking)’다. 『유연한 사고의 힘』의 영문판 원제는 ‘엘라스틱(Elastic)’이다. 엘라스틱의 사전적 의미는 ‘고무로 만든, 탄력 있는, 신축성 있는, 신축적인, 변통 가능한 것’이다.
 
고무 같은 유연한 사고란 무엇일까. 감성적·무의식적·비선형적(non-linear)인 상향식(bottom-up) 사고다. 모호함과 모순에 익숙한 사고다. 반면 분석적 사고는 논리적·의식적·선형적(linear)인 하향식(top-down) 사고다. 모호함과 모순을 못 견디는 사고다.
 
아인슈타인은 ’논리를 통해 지점 A에서 B로 갈 수 있지만, 상상력을 통하면 모든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믈로디노프는 고무가 상징하는 ‘유연한 사고’가 창의성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사진 빌 에베센]

아인슈타인은 ’논리를 통해 지점 A에서 B로 갈 수 있지만, 상상력을 통하면 모든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믈로디노프는 고무가 상징하는 ‘유연한 사고’가 창의성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사진 빌 에베센]

저자는 유연한 사고가 분석적 사고를 대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보완 관계인 양자 간의 균형, 콤비플레이가 필요하다는 것. 유연한 사고의 결과물에는 ‘보석’도 있지만, 대다수는 ‘쓰레기’다. 유연한 사고가 낳은 산더미 같은 아이디어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추려내고 보석으로 가공하는 것은 분석적 사고다.
 
믈로디노프에 따르면 유연한 사고는 비단 대학이나 회사에 필요한 사고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유연한 사고가 점점 더 절실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연한 사고는 21세기에 하늘에서 떨어진 새로운 능력이 아니다. 석기시대부터 인간이 이미 구비하고 있는 능력이다. 인류의 조상은 유연한 사고로 새로운 식량이나 물, 사냥 방법과 도구를 발견했다.
 
어떤 사람이 유연한 사고에 능한 사람일까. 여러 가지 징후가 있다. 예컨대 당신의 지능지수(IQ)가 높을수록 당신은 분석적 사고에 더 능하다. 당신이 남다르게 유머 감각이 풍부하다면 당신은 유연한 사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다.
 
저자에 따르면 나의 뇌를 유연한 사고에 맞게 전환하는 요령은 전혀 어렵지 않다. 분석적 사고에는 정신의 집중이, 유연한 사고에는 정신의 이완이 필요하다. 따라서 적당한 음주도 유연한 사고에 도움이 된다. 뇌를 백일몽(白日夢) 상태로 만드는 것도 좋다. 어두운 방에서 생각하는 것, 눈을 감고 생각하는 것, 행복하다고 느끼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도 유연한 사고로 이끈다. 반복적인 단순 작업으로 뇌를 피곤하게 하면 유연한 사고를 효과적으로 촉발할 수 있다. 머리가 맑을 때보다는, 지쳤을 때 유연한 사고 능력이 극대화된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사고방식까지 새롭게 바꿔야 할까’하는 생각이 드는 독자도 있으리라. 그런 반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사람이 변화를 싫어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네오필리아(neophilia, 새로운 것 좋아하는 성향)’가 강하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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